독서록 179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by 인상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최근에야 비로소 완독하게 되었다.

은둔자나 자연 속에서 사유를 쌓아온 사람의 글과는

다를 것이라 여겼다.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의 기록이니

지배의 논리가 더 앞설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니

그 안에는 명령이나 확신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한 인간의 고뇌가

더 많이 담겨 있었다.

마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자신에게 되풀이해 건네는 말들처럼,

그 문장들은 밖을 향하기보다

끊임없이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삶은 길게 펼쳐진 시간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한 점 위에 서 있다.

그 점의 이름은 지금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이미 지나간 것들을 끌어오고,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앞당겨

지금보다 더 큰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흔든다.

나의 바깥이 분명 나를 흔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의 말,

지나간 일,

다가오지 않은 미래.

그러나 그 흔들림이

어디까지 나를 무너뜨릴지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불안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말을 붙이고,

의미를 덧붙이며

점점 커져간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하나인데

그 위에 생각이 겹겹이 쌓이며

고통은 길어지고 깊어진다.

그래서 말한다.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고.

세상은 계속 변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순간에 달라지고,

붙잡고 싶은 것들조차

이미 흘러가고 있다.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그 변화 위에 얹힌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먼저 떠나는 사람과

나중에 남는 사람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다.

그저

떨어지는 시점의 차이일 뿐이다.

기억도 오래 남지 않는다.

사람은 잊히고,

이름은 사라지고,

남는 것처럼 보이던 것들도

결국 흐려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

아름다움은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하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꽃은 꽃이고,

빛은 빛이다.

그러니

평가에 기대지 말 것.

존재는

이미 충분하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곁에서 조용히 서성인다.

그래서 더 이상

1만 년을 살 것처럼

미루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지 않게 된다.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지금이 더 선명하다.

붙잡을 것이 줄어들수록

보이는 것은

점점 또렷해진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시간을 쓰는 일은

그 시간이 아깝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것에

조금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무엇을 놓고,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세상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쪽이고,

삶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쪽이다.

그래서 먼저 다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인생』에서 위화가 말했던

‘인생과 운명의 우정’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흘러가는 물 같은 것이 삶인데

거기에 무슨 어깃장을 놓을 수 있을까.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

굳이 어떤 목표를 붙들지 않아도

삶은 저절로 흘러간다고.


그러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렇게 담담하게 흘려보내기만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태도라기보다,

부질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이라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다잡으라는 것에 가깝다.

흘러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지는

여전히

나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인생과 운명의 우정’이라는 말보다는,

평온 기도의 문장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


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도

어쩌면 그 세 가지일 것이다.

흘러가는 것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평온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혼동하지 않는 지혜.


그래서 결국

삶은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그 삶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건은 외부의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삶은,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붙일 것인가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삶을 거스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하지 말 것.

그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명상록』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평온 기도의 문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오래 곱씹고 있으면

불안하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조금은 다른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 마음을 붙잡고 흔들리던 나로부터

아주 조금 떨어져 나오는 느낌.

그래서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이 달라지기를 바라기보다,

내 마음이 무엇을 더 보태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이것은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인가.

혹은

그저 놓아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조금은 가볍게,

그러나 분명하게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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