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성외(城外)〉
백석의 〈성외(城外)〉
어두어오는 성문(城門) 밖의 거리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 끝에서 강원도(江原道)로 간다는 길로 든다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
성밖의 거리에서
어두어오는 성문 밖 거리에는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과 양철통을 실은 달구지를 끄는 사람이 보인다. 그들이 지나는 근처에 엿방과 술집이 있는 모양이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저녁 무렵이라 장사가 끝난 것일까, 아니면 엿방을 그만둔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엿궤가 없다는 것이 곧 사람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 자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와는 반대로, 술집 문창에는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는 듯 머리를 얹은 여자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이처럼 이 시는 저녁 무렵 성 밖에서 떠나고, 사라지고, 버티는 것들이 겹쳐지는 가운데 가는 사람, 없는 사람, 남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하루의 끝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는 삶을 보여준다.
이 시의 쓸쓸함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서 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사라진 것, 떠나는 것, 버티는 것들이 겹쳐지며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시에 드러난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저녁이라는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무게이며, 성 밖이라는 가장자리에서 버텨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다.
성문 밖의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
그는 도야지를 장에서 산 것일까, 아니면 팔지 못하고 데리고 돌아가는 것일까.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어두어오는 거리에는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의 고단함이 보인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화자의 시선은 가는 사람에게서 빈 가게로 옮겨온다. 그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엿궤가 사라진 자리다. 엿장수의 부재보다 엿궤의 부재가 그 빈자리를 더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무슨 연유이든,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은 그 없음으로 엿방의 공기를 헐겁게 만든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 끝으로 간다.
텅 빈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인지, 무언가를 담고 흔들리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소리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양철이라는 낯선 재료와 달구지라는 오래된 방식이 한 장면 안에 겹쳐진다. 시대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곳의 시간은 어딘가에 걸려 있는 듯하다. 그 소리는 전진의 소리라기보다 어긋난 채 이어지는 삶의 소리로 들린다. 그 달구지는 결국 강원도로 간다는 길로 들어선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더 바깥으로 이어지는 길.
이 시의 사람들은 중심을 향하지 않는다. 하루를 마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흘러간다.
그렇게 원경에서 사람들을 따라가던 시선은 문득 가까이 멈춘다. 술집 문창에 머리를 얹은 그림자 하나. 화자의 시선이 그곳에 머문 것은 술 한 잔이 생각나서일까. 아니면 이제 시작될 저녁 장사를 위해 머리를 단정히 얹은 사람에게로 향한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의 쓸쓸함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엿궤가 사라진 자리와, 더 먼 곳으로 향하는 달구지와, 머리를 얹고 저녁을 맞이하는 사람. 그 모든 것이 같은 시간 속에 있다.
성문 밖이라는 말은 바깥을 뜻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나면 그 바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대에서 조금씩 밀려난 삶들이 모여 있는 자리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이 시는 어두워오는 성문 밖의 거리에서 하루를 끝내고도 더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과,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던 사람을 함께 놓아두며, 저녁이라는 시간 속에 겹쳐진 삶의 결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