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81

백석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by 인상파

백석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다정한 외면


이 시는 거리를 ‘외면’하고 걷게 된 ‘탓’을 나열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탓’—무언가 책임을 전가할 때 붙이는 부정의 말—에서 조금 비켜 서 있다. 여기서 ‘탓’은 책임을 돌리는 말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한 말에 가깝다.


시에서 화자는 무슨 대단한 이유로 거리를 외면하고 걷는 것이 아니다. 그 탓인 이유가 선뜻 잡히는 것도 아니다. 거리를 외면하고 걷는 까닭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지지 않는다고 할까.


날씨가 좋아서,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가서,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어서, 월급이 많지 않아서, 코밑수염을 길러서, 생선이 맛있다는 말이 들려와서. 이 모든 것이 외면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들은 이유가 아니라 마음을 스치는 순간들이다. 설명으로 묶이지 않는 것들,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


그래서 이 시는 무엇 때문에 외면하는지를 말하기보다, 그런 순간들 앞에서 결국 외면하게 되는 한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면은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이 솟아나는 데서 비롯되는 태도에 가깝다.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 구두가 그에게 얼마나 큰 일이었을지 알기에, 그 마음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 기쁨의 표현이 오히려 서로를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쩍 시선을 거둔다. 그것은 외면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덜 무안하게 하려는 다정함이다.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것은 늘 같은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궁핍한 생활의 자리다.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을 선뜻 드러내기보다, 자꾸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다. 한 발 비켜 서게 만드는 마음. 그래서 그는 사랑을 드러내기보다 거리를 외면하고 걷게 되었을 것이다.


많지 못한 월급이 고마운 것도 그 고마움이 온전히 기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래 바라보고 있기가 어렵다.


젊은 나이에 기른 코밑수염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 쑥스러운 자리다. 사람들의 시선이 괜히 의식되고, 그 시선 속에 서 있는 자신이 낯설어진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마지막에 들려오는 생선 이야기는 남의 부엌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가난한’이라는 수식은 그것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음식임을 드러낸다. 그 말은 미각을 넘어 삶의 결을 건드린다. 더는 그 자리에 머물러 듣고 있을 수 없어, 그는 한 걸음 물러나듯 거리를 외면하고 걸어간다.


이렇게 보면, 이 시의 외면은 하나의 방식으로 모인다. 들이밀지 않고, 건드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다가감이 아니라,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거리. 그 거리 속에서 마음은 덜 다치고, 관계는 더 오래 머문다.


상이한 소재들을 통해 백석은 하나의 일관된 태도를 드러낸다. 들이밀기보다 물러서고, 말하기보다 삼키며,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방식. 이 시는 그렇게 백석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아주 내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주 보면 더 진실해질까, 아니면 외면해도 다정해질까. 그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날의 우리는 그저 고개를 조금 돌린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거리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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