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
오늘도 어김없이, 매번 그랬듯이 정해져 있는 방향에서 둥글고 붉은빛이 솟아올라 검은색 휘장을 걷어낸다. 그 광휘는 어둠 속에서 날 끄집어냈지만 막상 그 바깥도 밝지만은 않다. 오늘의 하늘은 꽤나 흐려 하얗고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얀색 자체가 '밝은' 색상이고, 어느 객체에게 대응하든 조화롭고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는 감이 있는데, 그게 내 머리 위를 뒤덮을 때는 왜인지 '어둡고' 처연해 보인다. 이렇게 흐린 날은 낮도, 밤도 무채색의 창백한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난 하늘이 파란빛으로 잠식되어 그 전체가 파란색으로 물들었을 때, 그제서야 내 마음도 무채색에서 천연색으로 바뀌어 활력을 갖게 된다. 그냥 멀거니 지켜만 보고 있어도 내 안에서 생명력의 맹아가 느껴진다.
그렇게 언제든, 어디서든, 항상 볼 수 있고, 늘 나의 주변에 있지만, 또 내 손으로는 만질 수는 없으며, 결코 가 닿을 수는 없는 그런 하늘을 난 동경 한다. 그렇기에 그 실체와 실재가 더욱 궁금하다. 어디까지가 지상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주인가. 그 경계선도 모호하고,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실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돈도 실재하지 않고, 국가도 실재하지 않는다. 화폐도 돈의 가치만 대변할 뿐 실제 존재하지는 않으며, 국가도 관념으로서만 존재하고 실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관념을 우리는 단지 믿을 뿐이다.
하늘과 산등성이의 경계선, 하늘과 지상이 맞닿는 지평선,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너머에는 더 드넓은 하늘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믿는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늘, 돈, 국가를 만질 수 있다거나, 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없더라도, 관념으로서 실존한다고 믿는 것처럼, 나 자신의 가치도 분명 실재한다. 나의 가치가 만져지거나 피부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부재한 것은 아니다. 분명 실재하지만, 내가 스스로 믿어야 내 눈에 보일 수 있을 뿐이다. 하늘이 실재한다는 믿음처럼, 나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 또한 스스로 견지해야 한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파장이 짧은 파란빛이 '작은 입자'들에 의해 산란되어 하늘이 파랗고, 흐린 날은 '큰 입자'들에 의해 모든 색의 빛이 산란되어 하늘이 하얗게 보인다고 한다.
내 안의 하늘이 흐린 날들이 있다. 보통 안 좋은 일은 더 크게 느껴지고, 좋은 일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 안의 부정적 요소들이 거대한 모습을 하여 '큰 입자'를 자처하고 있다. 긍정적 요소들은 대개 작은 모습을 하여 '작은 입자'로서 존재한다. 나의 심연에도 햇빛은 항상 비춰지고 있으므로, 그중 파란빛이 작은 입자들과 부딪혀 산란되어 맑고 청명한 하늘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큰 입자로서 존재하는 부정적 요소들을 과감히 내 마음에서 밀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