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가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난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받아줄 뿐이었다. 왜인지 안녕?, 이라고 구어로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물음표에 물음표로 답하는 게 돌연히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꼬마와의 만남을 통해 불현듯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이 부상했다. 난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다. 우린 왜 인사할 때 서로에게 질문으로서 묻고, 질문으로서 대답할까. 물음표로 묻는데, 돌아오는 답변도 물음표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친구와 만나도, 직장에 가도, 식당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마트에 가도, 우리는 안녕하냐는 질문을 받고, 안녕하냐는 질문으로 답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매우 보편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사이다. 그만큼 상투적인 성격으로 비치고, 그래서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있다. 안녕의 본래 의미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다. 그 의미로 보자면 괜찮으신가요,라는 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린 매일, 매번 그리고 매 순간 서로에게 괜찮은지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우린 매일, 매번 그리고 매 순간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형식적 인사이기에, 그 본질에는 주목하지 않고 버릇처럼 하는 인사말이지만 그래서 더욱이 우리는 환기해야 한다. 인사를 할 때마다 주체는 객체에게, 또 객체는 주체에게 '안부를 묻고 다정히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물을 때도, 안녕하세요,라고 답할 때도 매번 위의 사실을 상기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점철된 의문, '왜 질문으로 묻고, 질문으로 답하는가'에 대한 그 의문을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처럼 물음표로 끝맺음되는 게 아니라 '안녕하세요.'처럼 마침표로 끝맺음하는 것이다. 질문형이 아닌 지시형이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하신가요?'가 아닌 '아무 탈 없이 편안하세요.'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매일, 매번 그리고 매 순간 건넸던, 그리고 앞으로도 건넬 그 무수한 인사들은 상대에게 '무탈하고 편안하게 지내세요.'라고 말하는 기분 좋은 지시이다. 그 수많은 위무와 격려를 우리는 받았었고, 받을 것이고 또 건넸었고 그리고 건넬 것이다.
위에 전술하였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가 생각난다.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려, 수선할 수 없다. 다만, 내 의식 속에서라도 편집해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가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 또한 가볍게 주억거리며 답한다. "안녕." 그 꼬마는 나에게 무탈하게 지내기를 기원해 주었고, 나 또한 그 꼬마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부디 무탈하세요.
아니,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