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선배가자신이 발간한 수필집을 보내왔다. 이 수필집의 제목은 '시간의 징검다리'로, 인생을 회상하며 쓴 자전적 수필집이다. 인간은 누구나 보고 들은 수많은 기억들이 삶의 고단함 때문에 잊혀 있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자랑하고 싶은 일도 부끄러운 일도,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밝은 햇볕을 쬐고 싶었을 것이다.
다리는 강이나 내를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이다. 문학에도 이 말을 인용하여, 마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서정(抒情)이 널리 펴져 있다. 예로, 민속 설화에 나오는 오작교는 칠월 칠석에 견우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지상과 천상을 연결시켜 주는 상상의 다리다.
예술세계에서 다리를 소재로 한 작품은 여럿 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의 작품, '수련'에는 수련이 피어난 연못과 일본식 나무다리가 그려져 있다. 1969년, 폴 사이먼이 작사, 작곡하고 사이먼 앤 가펑클 레코드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he The Troubled Water)'팝송은 1970년대, 청춘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인간은 다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생활한다. 그리고 다리에 대한 추억은 각자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양하다. 내 고향에는 오십천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른다. 그래서 인근 마을로 건너 다니던 외나무다리가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죽서루 건너편 가람 광장으로 소풍을 갈 때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넜던 추억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 다리에서 시냇물을 내려다보면 귀여운 물고기와 둥글고 하얀 조약돌이 선명하게 보이고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추석 무렵, 준경묘(이성계 5대조 이양무 장군묘) 근처에 있는 증조부 산소에 성묘를 갈 때, 오십천의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어느 해엔 홍수로 다리가 떠내려가 친척들과 손을 잡고 시냇물을 건넜던 추억도 생각난다.몇 년 전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할 때, 금문교를 걸으며 60~70년대에 유행하던 팝송, <San Francisco>를 불러보았다.
세상의 다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멋지고 세련되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마음의 다리'라고 한다. 가슴과 가슴을 잇닿는 거리가 멀어지면 삶은 상처가 되고 지쳐간다.
나는 양재천 공원을 산책하면서 수시로 징검다리를 건너 다닌다.시냇물에 놓여있는 돌다리는 언제 보아도 친구처럼 다정하고 믿음직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눈발이 휘날려도 양재천을 건너는 사람을 위해 늘 그 자리를 굳세게 지키고 서 있다. 나는 사람들이 양재천 돌다리를 딛고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타심이 생각나고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새봄 소식이 전해온다. 매섭게 추웠던 올겨울, 추위에 떨었던 돌다리도 지금은 새봄이 왔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현대인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벽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여성 정치가 안젤라 데이비스는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라는 인생 명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