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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05. 2023

세상에 공짜는 없다

며칠 전, 입행 동기 모임에 참석차 경복궁 부근에 있는 '곰솔' 식당으로 향했다. 아파트 정원에는 붉은 장미가 만발하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신록의 계절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렸는데, 최근 청와대를 개방하여 여러 관광객이 북적거렸고,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곰솔' 식당을 찾아가 카운터 직원에게 팔공회 모임에 왔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매달 첫째 화요일이 정기모임 하는 날인데, 이번달은 곰솔이 약속 장소라고 자세하게 말하자, 그 직원은 웃음을 억지로 참고 "오늘이 5월 마지막 화요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뿔싸! 내가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참 난감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한 생각에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아직 고희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정신도 육신처럼 쇠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점심  해결해야 일이라 생각하여, "혼자 식사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종업원이 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된장국에 한번 차려볼게요."라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식당은 한정식 음식점이라 1인 주문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실수로 말미암아 당황하는 나에게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것 같다.

혼자 식사를 할 때, 훤칠한 여사장님이 나타났다. 오늘은 기이한 손님이 왔다고 카운터 종업원으로부터  이미 귀띔을 받은 듯했다. 그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 은근히 친근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주방에서  추가로 가져온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우리 고향에는 밥때가 되면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는 않아요. 많이 드셔요."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김제라고 대답했다. 나는 군복무 시절, 부안에서 무하여 근처에 있는 김제에 가본 적이 있다. 끝없는 지평선이 보이고 만경강과 동진강 흐르는 곡창지대로 주민들 성격이 온순하다고 기억한다.

식사를 마치고 식사 값을 지불하려고 했으나 완강히 거절하여 고맙다는 인사로 대신했다. 여사장님은 나에게 명함을 주면서 "자주 오셔요."라고 살갑게 말하면서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


오늘은 참 난감한 일을 겪었지만 난생처음 식당에서 공짜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공짜 점심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이 세상에는 공짜 점심은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공짜 정신은 없다."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이 1975년 책의 제목을 통해 이 용어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경제학 문헌에서는 기회비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시간, 돈, 능력 등 주어진 자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다양한 기회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은 곧 나머지 기회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옛말에도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 멧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놓친다. 달아나는 사슴 보고 얻은 토끼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경제학은 물론 대인관계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성경 마태오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사도 먼저 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대도 나에게 덕을 베풀고 축복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에게 덕을 보고자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떳떳할 수 있는 자기 자리를 위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 양재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개찰구 밖으로 나올 때, 한 노신사가 지하철표 자동판매기 앞에 서서 지나가는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 청년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오늘 공짜 점심이 슬며시 생각나, 그 노신사를 돕고 싶었다. 노신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슨 애로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지금 압구정역으로 가는데, 지하철표 구입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 노신사는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포로, 오랜만에 한국에 입국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지하철표 구입이 익숙하지 않지만 함께 몇 차례 시도하여 지하철표를 구입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한 후, 급히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나는 평생  은행에서 근무하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기회비용이란 용어도 직장에서  수도 없이 말했다. 단기간으로 어느 결과를 평가해 보면, 공짜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긴 세월을 놓고 볼 때, 공짜 점심은 존재할 수 없는 세상 이치가 존재한다.

예컨대,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 천국에 가기를 갈망한다든지, 불교 신자가 아닌데, 극락세계로 가기를 원하는 것은 세상 기본 이치에도 맞지 않다. 인생에서 성공을 원한다면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면서, 상대방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하철 양재역 입구로 나올 때, 하늘에 높이 떠있는 해님이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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