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인생
강릉, 이곳은 단순히 바다 도시가 아니다. 수려한 태백산맥을 등에 지고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푸르르며 깊고, 곁에는 남대천이 유유히 흐른다. 솔향이 가득한 경포호와 해변에 부는 바람은 시간을 천천히 걷게 만든다. 예로부터 강릉은 선비가 많고 예(禮)를 중요시하였다. 상징하는 꽃과 나무는 목백일홍과 소나무이다. 도시 브랜드는 소나무와 관광의 도시 이미지를 합쳐 '솔향 강릉'이라 한다.
옛적, 선비들은 전망이 뛰어난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와 명사십리 해변을 시로 노래하였고, 멀리 바라보이는 초당마을의 저녁연기를 풍요로움이라고 읊었다. 초당마을은 경포호와 경포 해변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뒤뜰엔 오곡 물결이 파도치고 동해의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곳이다.
솔향기가 그윽한 초당마을의 허난설헌 기념공원에는 허난설헌 생가와 허균 · 허난설헌 기념관, 그리고 허난설헌 조각상과 가족들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매년 벚꽃이 활짝 피는 4월에는 '난설헌 문화제'가 열리며 허난설헌을 기린다.
감우(感愚)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기롭더니
가을바람 잎새 한 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맘이 아파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여성 시인, 허난설헌의 '감우(感遇)'라는 시다. 감우란 느낀 대로 노래한다는 뜻이다.
허난설헌은 1563년, 당시 동인 세력의 영수였던 허엽(호 초당)의 딸로 강릉 초당마을에서 태어났다. 양천 허 씨고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호 난설헌)였다. 당시 여성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했던 시절에 비해 허 씨 가문은 다른 사대부 가문보다 일찍 깨였다고 한다. 허엽의 학문에 대한 열린 가풍은 딸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 기회를 주었으며, 아들에게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당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는 허성, 허봉이 허난설헌의 오빠이며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남동생이다. 난설헌은 어렸을 때부터 시에 대해 천재성을 보였고 상상 속의 궁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여덟 살 때 지어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열다섯 살 되던 해, 명문 가문의 자제인 안동김씨 김성립과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부인 허난설헌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으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허난설헌은 아들과 딸을 질병으로 잃고 난 후, 곡자(哭子)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의 시린 가슴과 비통함이 잘 나타나 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서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마주 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백양나무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 비치네
지전(紙錢)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 얼려 놀 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黃坮詞)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멘다
허난설헌은 두 아이를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였고, 뱃속에 있는 아이마저 유산했다. 부친인 허엽과 믿고 따랐던 오빠, 허봉마저 객사하여 친정집은 몰락으로 기울었다.
그는 건강이 쇠약해져 마침내 죽음을 미리 예견하였던지 아래의 시를 짓고 이 세상을 떴으며 향년 27세였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허난설헌은 유언으로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동생, 교산 허균은 그녀가 친정에 남긴 시와 자신이 암송하는 시를 모았고, 중국 사신 주지번은 이 시에 감탄하여 중국으로 가져가 '난설헌집'을 발간하였으며, 일본에도 전해져 격찬이 쏟아졌다고 한다.
조선 중기, 여성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허난설헌은 천재 시인이었다. 그는 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났고,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슬픈 운명을 비켜가질 못했다. 허난설헌 생가 옆, 경포 호수 건너편에는 슬픈 천재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이 있다. 깊은 밤, 경포호를 비추는 저 하늘의 큰 별 두 개는 이 천재 문인들의 별이라고 생각한다.
일찍 조선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행복할 수 없었으며, 27세에 일찍 삶을 마감한 허난설헌의 인생을 생각하면 애잔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시로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여성으로서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겪은 허난설헌이 가엾고 안타깝기만 하다.
강릉은 언제나 한줄기 달빛을 타고 다가오는 허난설헌의 고향으로 그의 슬픔을 품어주는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