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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1. 2023

푸르른 날과 그리운 사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이 글은 서정주 시인이 쓴 '푸르른 날'이란 시로, 송창식 가수가  곡을 붙이고 노래하여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이 노래 가사에서 말하듯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이 떠오른다.


며칠 전, 직장 동료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부고를 환은 동우회에서 보내왔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고인은 퇴직 동기 모임, 오상회 회장으로 퇴직 후 8년 동안 곁에서 가깝게 지냈다. 그는 남들은 쉽게 넘는 고희 언덕을 넘지 못하고 68세를 일기로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유택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고인의 발인을 오상회 전임 회장들과 동료들이 지켜보았으며 정 총무가 다음과 같은 글을 회원들에게 보내왔다.


   [표 회장님 영전에]


상제(上帝)께서는 68년을 세월의 한 토막으로 정하시어 표 ㅇㅇ라는 한 사람의 일생으로 삼았습니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자식을 낳아 길러 한 세대를 이었으니 그동안의 맵고 쓰라린 세월 가운데 더러는 살 떨리는 기쁨도 있었는데, 몹쓸 병마로 마지막 언덕을 넘으셨습니다.

지금껏 고통스럽던 살과 뼈를 벗고, 이제 이승에서의 마지막 수레를 타셨으니 그간의 영욕을 버리시고 언제든 또 어디든 훨훨 날으소서.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짐작은 하되 확실히 모르는 그곳에서 영원히 쉬시옵기를 비나이다.

              2022년 8월 29일

                 정ㅇㅇ  사배(四拜)


고인은 경기도 고양군 원당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성장했다. 큰 키에 미남으로 성격도 밝고 명랑하여 주변에는 늘 친구와 선후배가 많았다.

외환은행에 입행하여 근 40년 근속했다. 배우자도 외환은행에서 함께 근무하던 환은가족이기에 외환은행과의 인연이 더욱 소중했다.


나는 정년퇴직을 계기로 표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수시로 양재천을 함께 산책하며 인생과 행복논했다. 가끔씩 도곡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렸는데. 아마도 우리가 이승을 떠나면 천국에서 평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강원도를 함께 여러 차례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단풍이 곱게 물든 두타산 무릉계곡과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진지하게 논의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에도 속초를 찾아 파도가 치는 외옹치 해변길을 걸으며 서울에서 시달린 스트레스를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던져 버렸다.

필자, 정흥식, 류병후, 표윤석 동우 (좌로 부터)

표 회장은 나라 걱정을 많이 한 애국시민이었다. 특히 법을 전공한 사람답게 한국은 공정한 사회가 실현되어야 하고 자유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내려야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또한 매사에 경우가 밝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표 회장님!

하늘이 눈이 부시게 푸른 날입니다. 회장님이 하느님 곁으로 떠나신 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회장님이 영구차를 타시며 이승과 이별하던 날, 하늘도 슬픈지 비가 내리고 풀과 나무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양재천의 도 슬픈 표정으로 오랫동안 서 있었지요.


회장님이 머물었던 이곳은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새털구름이 새파란 하늘에 높게 떠 있습니다. 매미 소리도 멈추고 저녁이면 귀뚜라미가 가을이 왔다고 힘차게 웁니다. 회장님이 계시는 그곳에도 하늘이 푸르고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지요? 아침에는 둥근 해가 떠오르고 밤하늘엔 별이 반짝거리는지 궁금합니다.


표 회장님과 함께 마음의 정을 나누던 카톡방을 하루에도 여러 번  쳐다봅니다. 혹시 회장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소식을 전해 왔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도 회장님이 늘 걸었던 양재천을 산책하며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 중에 어느 별이 회장님의 별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회갑이 지났고 고희가 얼마 남지 않았었지요. 길고 짧은 인생은 있을 수 있지만 때가 되면 보름달이 기울고 흐르는 강물도 바다에서 멈추듯이 인간도 바람 속에 먼지처럼 하늘나라로 갑니다.

떠날 시간이 언제 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인생이란 죽음을 향하는 존재라 했으며, 어느 소설가는 인생이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무덤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지요.


표 회장님!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바람이 불어옵니다. 초록에 지쳐 단풍도 곧 울긋불긋 물들 것입니다. 양재천에 단풍이 곱게 물들면 사진을 찍어서 회장님이 있는 카톡방에  보내드리겠으니 하늘나라에서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하늘나라에서 반갑게 만나 계속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회장님이 좋아하실 가수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에'를 보내드립니다.


표 회장님!

천국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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