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만식 Jul 11. 2023

길거리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에릭 호퍼

집 근처 늘벗근린공원에는 이웃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개는 포유류 중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거의 전 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다.

나는 공원에서 개를 볼 때,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생각나고 '개처럼 살아야 행복하다'라고 주장한 그리스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Deogenes)가 떠오른다. 그는 견유학파의 대표적 철학자로 고통을 견디며 사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인생 목표는 욕심 없이 살기,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기, 아무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기였다. 만약 인간이 이렇게 삶을 산다면 어떤 고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에게 "개처럼 살아라!"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는 실제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커다란 항아리에서 개처럼 살았으며, 자연을 거스르고 인간의 본능을 짓누르는 문화나 풍습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그는 디오게네스에게 공손히 대화를 청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내 무엇이든 다 해 드리겠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위대한 왕이시여! 지금 당신은 나의 따뜻한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한 발짝만 비켜서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정복자로서 승리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 앞에서는 그에게 행복해 보였던 디오게네스를 떠올리면서 "나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대신들에게 '나를 장례식장으로 옮길 때, 관 밖에 두 손이 나오게 하여 죽으면 왕마저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모든 시민들에게 보이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현대를 살았던 길거리 철학자 에릭 호퍼(Eric Hoffer)는 평생을 길 위에서 노동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 철학자다.


그는 1902년 뉴욕 브롱크스의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오렌지 행상, 시간제 웨이터, 사금채취공, 부두 노동자로 전전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아포리즘(aphorism) 식의 글을 써, 11권의 저서를 남겼다. 평생 동안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사색하면서 독자적인 사상을 수립한 것이다.


그는 'Truth Imagined(길 위의 철학자)'라는 책에 하루 4시간 이상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와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다.

그는 희망, 행복과 돈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希求)다.

이런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따른 인식을 저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방해하는 수단이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게 없다.'


한평생, 길 위에서 일하며 책을 읽고 사색한 에릭 호퍼는 그리스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살았다.

그는 자유롭게 떠돌고 노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리고 남을 기꺼이 돕는 지성인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디오게네스가 살았던 그리스와 비교해 보면 시대적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일치한다. 즉, 인간은 물질, 명예, 권력에 집착하지 말고 순수하게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에릭 호프처럼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개가 음식을 입으로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보고 동냥 바가지마저 강물에 던져버렸던 철학자였다. 반면에 에릭 호퍼는 떠돌이 노동자로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독서하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의 사상을 구축하고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욕심 없는 마음과 현실적인 사회 활동이 더욱 가슴에 와닿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행복이란 희망을 그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사실 일반인이 철학자처럼 행동하며 삶을 영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은 개가 아닌 인간의 눈으로 개를 보고 하는 말이다. 만일 제 3자가 반려견을 논한다면 비를 맞더라도 목줄에 매여 있지 않고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들개가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이웃과 소통하고 남을 적극 도왔던 길 위에 철학자, 에릭 호퍼가 그리스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보다 더욱 용기 있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늘벗근린공원을 나설 때, 한 이웃이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나갔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갈대와 파스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