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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1. 2023

그 시절의 여름방학

어린 시절, 여름방학하는 날에는 할머니가 계시는 큰댁으로 달려갔다. 큰댁에는 사촌 4명이고 큰형은 나보다도 12살이 많은 띠동갑이라 서로 특별히 친하다고 생각했다. 

택호가 '길갓집'인 큰댁은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현 동해시) 송정리에 있었는데 조상 대대로 400여 년간 그곳에서 살아왔다. 송정(松亭)은 송림이 우거지고 경치 좋은 곳에 정자가 여럿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호수가 마을을 둘러싸고 호수에 떠 있는 부평(개구리밥) 형상이라 송호(松湖)라고도 했다.

추암촛대바위 (동해시)

무더운 여름밤, 사촌 형들과 가끔 바닷가에 있는 삼척비행장 활주로에서 잠을 잤다. 활주로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쳐다보며 밤이 깊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별이 빛나는 밤, 혜성이 떨어지면 모두 기하여 탄성을 질렀다. 은빛 시냇물 같은 은하수가 하늘에서 고요히 흐르, 파도 소리는 철썩철썩 구슬펐지만 우리 형제들은 이야기에 집중할 뿐, 파도 소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모기가 없고 시원하여 편안하게 잠을 잤다.


어느 날 밤, 바닷가에서 떠들고 놀아서 배가 고팠다. 장난기 많은 셋째 형이 참외 서리를 하자고 했다. 참외 밭은 활주로 잠자리에서 약 1km 떨어져 있는 앞섬(지명)에 있었다.

원두막에 있는 주인한테 들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여 웃통을 벗고 살금살금 기어서 참외 밭으로 들어갔다. 형들이 가르쳐 준 대로 딱딱하지 않고 큰 참외를 , 재빠르게 돌아왔다.

서리한 참외를 펼쳐 놓고 모두가 싱글벙글했다. 어느 참외는 맛이 달았지만 어떤 것은 설익어서 맛이 별로였다. 참외를 실컷 먹고,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하늘이 맑게 개인 , 형들과 조개를 잡으러 바다로 갔다. 갈퀴 모양의 기구로 바다 모래 바닥을 30분긁으면 한 바켓 정도는 거뜬히 잡았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에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잡은 조개는 민물에 담가두면 스스로 입을 열고 모래를 토해 놓았다. 그 조개로 탕을 끓여 먹었는데, 맛이 시원하고 구수했다.

어느 날은 전천강 부근 밭에서 감자를 캐고 무씨와 배추씨도 심었다. 일이 끝나면 바굴(지명) 다리로 달려가, 발가벗고 물놀이를 했다.


무더위가 절정일 때, 형들과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북평(송정)해수욕장으로 갔다. 바닷가에는 물놀이하는 서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으며, 호수에는 보트를 타는 청춘 남녀들이 가득했다. 특히, 서울에서 온 듯한 우리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큰댁에 더  머무르고 싶었으나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밀린 숙제와 어려운 곤충채집을 해보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늘 엉성했다. 일기장은 대충 소설처럼 억지로 꾸며 쓰고 날씨는 친구의 일기장을 베껴 적었다. 여름방학 숙제는 항상 항상 힘들었고 게다가 형들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울적했다.


그 옛날, 사촌 형들과 즐겁게 보냈던 여름방학 추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사촌 형들을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놀았던 옛 추억을 밤새도록 이야기하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사촌 형들은 전원 공무원이 되었고, 참외 서리를 주도한 셋째 형은 항만 건설 박사가 되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큰형은 올해 80세로 지금은 고향을 지키며 종중일을 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송정 마을은 1970년대 동해항 개발로 해수욕장, 호수, 비행장 등은 아쉽게 사라지고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동해항'이 건설되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큰 무역항이 되었다.

여름철 슈퍼마켓에서 참외를 보면 그 옛날, 송정리 앞섬(지명)에서 참외 서리하옛 추억이 떠오른다. 또한 여름방학 동안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생각난다. 힘들고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도 항상 미소를 지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생전에 보답을 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다.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즐겁고 행복한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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