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만식 Jul 11. 2023

할아버지 그립습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조선말 1,875년(고종 12년)에 태어나셨고, 내가 출생하기도 전, 1938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할아버지(홍정현, 자 우팔, 호 강암)는 경학에 밝고 성품이 맑은 분으로 일제강점기, 삼척군 북평(현 동해시)의 마지막 유학자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구한말 1894년, 유학자들의 등용문이던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갖가지 학교가 설립되었다. 할아버지는 개화 시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학을 고수하신 선비로 한평생 제자를 가르치고 문집을 쓰시며 이웃과 고향을 보살핀 분이다.


나는 동해문화포럼이 2006년에 출판한 '전천강은 흐른다(저자 原 김영기)'를 읽고 할아버지 행적을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조선말, 문신 송병선의 제자로 스승의 문집 발간을 위해 서울과 충청도 등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다는 사실도 네이버 지식백과를 검색하여 알게 되었다.

한말, 삼척군 북평이란 마을에는 유학을 하는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한말 수난기를 극복할 목적으로 강회계와 금란계 등 몇 개의 사림계를 조직하였다. 당시 선비들은 "시국이 어수선한데, 학문의 뜻이 무엇이던가? 나라가 망해 가는데, 그대로 있을 건가?"분개했.


1905년 4월, 할아버지는 영동 지방에서 학식이 높고 존경받는 홍락섭, 홍재환 선비와 뜻을 같이 하고, 서울로 올라가 송병선(송시열의 9대손, 대사헌)을 직접 만나 시국에 대한 논의를 한 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그해 11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스승, 송병선은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해 왕실이 있는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고 음독 분사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영동 지방 선비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통탄했다고 한다.

그다음 해, 1906년 9월, 할아버지와 홍락섭, 재환 3인의 선비가 주도하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각오로 강회계(講會契)조직하였다. 청계 동지 33인의 명단은 두타산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다.

강회계 창계원 명단

이 계는 창계 서문, 강회 규약, 계약, 계사(경계하는 말)를 규정하고 있는데, 학문을 닦는 것이 중심이지만 선비가 지켜야 할 생활 규칙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심지어 모임을 할 때 마실 수 있는 술의 양도 정확하게 명시했다.

이 계가 조직되고 3년이 지난 1909년, 할아버지는 청계 동지들과 함께 33일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셨는데, 그때 쓴 유람기가 '홍정현 문집'과 '강암유고'에 수록되어 있다.


2006년도, 강회계는 강회계 조직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강회문유백년사'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제3장에는 '강암 선생 금강산 유람기'가 한문 원본 사진과 함께 번역문이 실려 있다. 이 책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이 글은 100년 전의 유산기임을 고찰할 때 창계원들의 탁월한 식견과 넘치는 역량에 대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선경을 만끽하고 그 감회와 심금을 글과 시로 써, 읊으니 참으로 선비 다운 심상이요, 풍월도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옛적, 교통이 불편하고 필기도구는 붓과 벼루가 고작이었을 텐데, 꼼꼼히 기록하신 할아버지의 인품과 마음의 여유를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하다.

할아버지는 삼척군 북평 마을(현 동해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셨다. 북평이란 곳은 수려한 두타산과 청옥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동해의 넓고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더욱이 솔숲이 우거지고 아늑한 호수와 비옥한 토지가 있어, 농경을 하면서도 선조의 뜻을 이어 학문을 정진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태어난 여러 사람들이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여 나라에 충성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했다.

북평의 송정(松亭)이란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송림이 우거지고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가 세워졌으며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동해시 송정동에는 송림계에서 화랑포 북쪽 언덕의 우거진 송림 가운데에 세운 '영호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1936년에 지으신 상량문을 읽어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시대의 격랑 속에서 벼슬 없이 유학자로 평생을 올곧게 생활하신 할아버지가 존경스럽다. 나는 가끔 두타산 아래, 넓게 펼쳐진 무릉반석에 들러 그곳에 기개 있게 새겨진 할아버지 함자 洪政鉉(홍정현)을 바라보면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애틋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크게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그립습니다."라고 외쳐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시절의 여름방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