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아름다운 이별

- 한국과 일본의 장례 문화

by 홍만식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삶의 끝에 이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문턱 앞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디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가.”

가까운 이웃이자 닮은 듯, 다른 길을 걸어온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면서 두 나라의 장례 풍경에도 낯선 변화가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마치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 떠나는 방식 또한 조용히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적 명절이면 가족들은 늘 산등성이로 향했다. 봉긋하게 이어진 봉분들, 그 앞에 놓인 과일과 정성스레 다듬은 나물들. 그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뿌리가 쉬고 있는 자리’였고, 흐르는 시간을 붙들어 세우는 작은 문중의 공간이었다.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은 조상과 이어지는 마음의 의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산길을 함께 오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멀어진 가족, 바쁜 일상, 흩어진 삶. 묘를 돌보고 산소를 지키는 일은 추억이라기보다 부담이 되고, 남겨진 이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서서히 공동된 감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자연, 그것도 ‘돌봄을 요구하지 않는 자연’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수목장이 있다. 나무 아래 흙 속에 유골을 맡기고, 시간이 흐르면 고인은 서서히 숲의 일부가 된다. 묘비 대신 나무가 이름을 대신하고, 방치된 봉분의 걱정 대신 조용한 숲의 숨결만이 남는다. 어떤 이는 이것을 실용적인 선택이라 하지만, 그 안에는 더 다정한 마음이 있다. 나의 이별이 누군가의 책임이 되지 않기를, 내 흔적이 자연 속에서 편안히 사라지기를.

한국의 장례는 그렇게 옛 뿌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뿌리가 품었던 ‘연결의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기 시작한 셈이다.

한편 일본은 오래전부터 화장이 보편적 방식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좁은 국토, 빠른 도시화, 작아진 가족의 형태 속에서 전통적인 가족 묘는 점점 모습을 잃었다. 대신 어두운 복도 끝에 자동화된 서랍식 납골함이 들어섰고, 작은 수목장지와 도시형 콜롬바리움이 늘어났다. 장례는 작아졌고, 조용해졌고, 울음조차 한 줌의 공간에 담겨 흘러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이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마지막 흔적을 더 멀리 보내고자 했다. 하늘로, 혹은 우주로. 유골의 일부를 작은 캡슐에 담아 인공위성과 함께 우주로 띄우는 우주장은 새로운 형태의 추모가 되었다. 남겨진 이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멈춰 선다. ‘저기 어딘가에서 당신이 흐르고 있겠구나.’

땅에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이별, 남은 이들에게 관리의 부담을 주지 않는 최후의 여행. 그것은 죽음을 배웅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이에게 ‘가벼운 기억’만을 남겨주는 선택이다.

또 누군가는 유골을 풍선에 실어 성층권까지 띄운다. 하늘 끝에서 풍선이 터지는 순간, 마지막 가루는 바람에 섞여 흩어진다. 땅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하늘로 흩어지는 떠남. 그 속에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조용한 정서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간소한 가족장, 더 나아가 의식을 생략한 직장(直葬)이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남기는 것은 최소한으로, 짊어지는 슬픔도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나는 이는 적게 남기고, 남는 이는 적게 떠안는다.


한국의 숲과 일본의 하늘. 서로 다른 경로를 따라 변화해 왔지만, 두 장례의 흐름은 묘하게 닮아 있다. 오늘의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마 같은 바람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연이나 우주 속에서 가볍게 흩어지고 싶은 바람,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이별에 대한 소망.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개인의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 나는 나의 마지막을 떠올려 본다. 숲길을 걷다 나무 아래에 멈춰 서면, 흙으로 사라지는 이별이 어쩐지 따뜻해 보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흐르는 작은 빛 하나가 마음을 붙든다. 어쩌면 언젠가 내 이름과 내 흔적도 그렇게 자연이나 하늘의 작은 조각으로 흩어질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부담이 아니라, 그저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는 작은 풍경으로만 남는다면—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이별일까.

한국의 숲도, 일본의 우주도 조용히 속삭인다.

“짐을 남기지 말고, 편안히 돌아오라." 그래서 이별은 단순한 떠남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존재가 남기는 마지막 고백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백 앞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떤 별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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