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옛적, 이탈리아를 여행한 추억이 떠오른다. 2003년 겨울, 그곳에서 난생처음 건축, 조각과 그림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행 일정이 공교롭게 성탄절 시즌이라 기독교와 르네상스 미술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여행을 마치고 몇 년이 흐른 2008년에 그곳을 한 번 더 다녀왔다.
이탈리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로마시대의 유물을 포함하여 다양한 예술품을 감상하였다. 특히, 미켈란젤로(1475~1564년)의 '피에타' 조각상을 보고, 천재 조각가의 아름다운 예술성,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애절함과 거룩함이 온몸에 느껴졌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뜻한다. 이 피에타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 25세에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 조각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은 고딕 조각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흔히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 뻗어 나와 조각 작품으로는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된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면서 옷을 사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하여 부자연스러움을 조형적으로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조형적인 해결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옷이라는 것은 미켈란젤로에게 중요한 사상적 의미를 가지며, 옷으로 감싼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수호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채색된 조각을 좋아하지 않았던 미켈란젤로는 푸른색이었을 마리아의 옷을 대리석에 의한 형태로만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는 대리석으로 구겨진 옷자락에 주름을 만들어서 그것을 그리스도를 지키는 하나님의 옷으로 표현하였고 후광이나 가시와 같은 상징도 마리아의 청순하고 경건한 얼굴과 육체의 표현 속에 담았다.”
이 '피에타'상은 미켈란젤로인 작품 가운데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마리아가 두른 어깨 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MICHAEL. AN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피렌체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으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 같은 위대한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경탄할 수밖에 없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피에타'와 같은 조각 작품들과 바티칸시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자신을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화가가 되어 고개를 위로 쳐들고 천장을 그리고 불멸의 명작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올려다보면 이 천재 예술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 평전 저자,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고 하면서 그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빵과 포도주를 들고나면 일에 파묻혀 잠도 몇 시간밖에 잠 자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런던의 피에타를 제작하고 있었다. 한때 병치레를 하면서도 식사할 시간도 없이 일에 몰두하여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고통의 삶 속에서도 그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초인적인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예술가의 울타리인 고독에 머물러 예술 이외에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슬픔 그 자체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미켈란젤로는 망치와 끌로 대리석을 조각해 물질 안에 속박되어 있는 개념을 보여 주었다. 그는 조각 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자연에서 얻어온 대리석 덩어리를 응시하고 있는 미켈란젤로는 돌에 가두어져 있는 위대한 형태를 보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돌을 조금씩 뜯어낸 것이다.”
그는 조각과 건축,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고 시인이기도 했다.
(시인 미켈란젤로의 마음)
하루라도 당신을 만나지 못하면
어디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당신을 만날 때, 당신은 마치 굶주린 자의 맛있는 음식과도 같습니다.
당신이 웃음 지을 때, 길에서 인사할 때, 나는 용광로처럼 불타오릅니다.
당신이 말을 걸어 주면 나는 얼굴을 붉히지만 모든 괴로움은 일시에 가라앉지요.
사랑에 빠진 사내의 절절한 심경이 잘 보이는 시다. 그가 구애를 한 대상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는 않았다. 평생을 슬픔과 친구하면서 살아간 이 고독한 사람의 연약한 마음이 잘 보이지만 그의 조각이나 그림에는 비장한 사상만이 들어 있다.
그는 500여 편의 편지를 써서 조각이나 그림으로는 담아내지 못했던 마음도 담았고 미켈란젤로의 만년의 시들은 종교적인 경건함과 성스러운 믿음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 카프리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여섯 살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어느 석공의 아내에게 맡겨졌다. 그는 탁월한 재능으로 그림과 조각을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 가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며 성장했다.
그는 어릴 때 조각하는 작업 현장에서 끌과 망치로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명문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그의 천재성이 확인되었으며, 조각 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가 생전에 작업을 완성한 유일한 이 피에타 작품은 그가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영혼이 세계적인 위대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그의 나이 25세에 만들어졌으며 성모 마리아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지만 그 이후에는 이름을 조각상에 새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도를 깨우쳤고 그가 추구하는 욕망은 세속적인 것을 초월하여 자아를 실현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천재성과 작품에 몰입하는 소탈하면서도 순수한 그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한편,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잔하다.
"영혼은 신에게 보내고, 육체는 대지로 보내라. 그리운 피렌체로 죽어서나마 돌아가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는 로마에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미켈란젤로의 90년 세월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의 세월이었지만, 그의 작품으로 우리는 환희와 희망을 보며 감동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질을 마음속에 품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우리들 대부분에게 아주 큰 위험은 목표가 너무 높아서 달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너무 낮아서 그 목표를 성취한다는 사실이다.'라는 인생 명언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