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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Apr 23. 2023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말복이 지나갔다. 저녁 무렵, 양재천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는데 날씨가 제법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로 접어들었다고 느꼈다.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언제나 확실했다. 사계절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절대자인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장마가 고통스러웠지만 오늘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양재천 산책길에는 요란한 매미 소리가 수그러들고 대신 이름 모를 풀벌레가 가을이 왔다고 힘차게 다. 이 작은 풀벌레도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바람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가 많다. 70년대 캔자스 그룹의 '바람 속에 먼지(Dust in the Wind)'라는 팝송이 유행하였으며 가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란 대중가요도 인기가 좋았다.

최근,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대중가요 유행하였다. 이 노래 가사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라는 미국 프라이의 시를 번안했다고 한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날 때, 원을 그리다 비상하는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포근한 별들 중에도 내가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게 아니랍니다.


이 시는 1932년 미국 볼티모어의 주부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가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플라이는 모친을 잃고 상심해 있던 한 이웃을 위로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전승되던 작자 미상의 시를 기원으로 본다.


이 시가 유명해지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9년 IRA(아일래드 공화국군)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24살의 영국군 병사, 스티븐 커밍스의 일화로 스티븐은 생전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라며 부모에게 한 통을 남겨두었고, 그의 사후 개봉된 편지는 이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시를 스티븐의 아버지가 스티븐의 장례식 날, 아들이 남긴 편지와 시를 낭독했고, 그 장면을 영국 BBC가 방송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조선 시대 고승, 서산대사의 '인생'이란 해탈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을 기쁨이건 다 한순간 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오 외로움이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에 고요하듯 아무리


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이 시는 서산대사가 85세에 열반하면서 지은 해탈시다.

바람은 본질적으로 실체도 없고 한번 스쳐가는 것이라 허무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라는 시는 죽어서 바람이 되어 넓은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꿈이 있기에 슬퍼하지 말라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시다. 서산대사의 해탈시는 인간은 바람과 같이 허무한 존재이므로 너무 집착하지 말고 덤덤하게 어우러져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인간의 생활 속에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존재하므로 한번 왔다가 떠나가야만 이 세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삶을 즐기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인생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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