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저녁 무렵, 양재천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는데 날씨가 제법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로 접어들었다고 느꼈다.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언제나 확실하다. 오묘한 사계절의변화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절대자인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장마가 고통스러웠지만 오늘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양재천공원에는 요란한 매미 소리가 수그러들고 대신, 이름 모를 풀벌레가 가을이 왔다고 힘차게 운다. 이 작은 풀벌레도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바람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가 여럿 있다. 70년대 캔자스 그룹의 '바람 속에 먼지(Dust in the Wind)'라는 팝송이 유행하였으며 가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란 대중가요도 인기 좋았다.
최근에유행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대중가요는미국 프라이 시,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를 번안했다고 한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이 시는 1932년 미국 볼티모어의 주부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가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플라이는 모친을 잃고 상심해 있던 한 이웃을 위로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전승되던 작자 미상의 시를 기원으로 본다.
이 시가 유명해지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89년 IRA(아일래드 공화국군)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24살의 영국군 병사, 스티븐 커밍스의 일화로 스티븐은 생전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라며 부모에게 한 통을 남겨두었는데, 그의 사후 개봉된 편지는 이 시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스티븐의 아버지가 장례식 날, 아들이 남긴 편지와 시를 낭독했고, 그 장면을 영국 BBC가 방송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조선 시대 고승, 서산대사의 '인생'이란 해탈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이 시는 서산대사가 85세에 열반하면서 지은 해탈시다. 바람은 본질적으로 실체도 없고 한번 스쳐가는 것이라 허무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라는 시는 죽어서 바람이 되어 넓은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꿈이 있기에 슬퍼하지 말라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시다.
서산대사의 해탈시는 인간은 바람과 같이 허무한 존재이므로 너무 집착하지 말고 덤덤하게 어우러져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인간의 생활 속에는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존재하므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삶을 즐길수 있는 지혜가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인생 명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