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그래서 발자국이 더 흐릿해져 가네
농인들은
청각장애인이 일반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당연히 나도 학교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친구와 대화
한마디 하는 것도
나에겐 사치였다.
그럼에도 나는 12년간 일반학교를 다니고,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을 통해
일반 대학을 갔다.
떨어졌지만 수시로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에
지원하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그 이전까지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었나?
여기에는 부모님의 헌신이 결정적이었다.
초등학교까지는 어찌 저찌
집에서 배우는 것으로 커버 가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일반 사회에서
적응시키고자는 욕심으로 나를
혹독히 키우려고 했다.
그렇게 비장애인 친구들 뿐인
일반 초등학교 때 평균점수 93점으로
반 1등도 해보는 등
학교 공부를 열심히 따라갔으나
중학교 때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고3시절까지 포기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계속 공부해서
최소한 성적으로 부끄러울 일은 없다.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수업을 들은 것은 전혀 없다.
수업시간에 나 홀로 참고서, 문제집을 펴고
수업진도와는 다른 공부를 했다.
내가 공부를 못 하지는 않았기에,
선생님들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나는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학창 시절을
견디고 버텨 냈지만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내 세대부터 인공와우 시대가 열리면서,
청각장애인이 일반 학교에서
친구와 대화하고 말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나 처럼 배려가 없으면
소통이불가능한데
일반학교를 다니는
청각장애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인공와우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듣지 못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의 대부분은
남들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청각장애가 듣지 못해서 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치명적인 결점인
청각장애를 대화해야 할 때마다
매번 드러내야 하는 수치감을
겪어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듣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인 것을 밝히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데,
대입이나 취업 등에서 혜택을 받으니까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려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청각장애 대기업이라고 네이버 검색을
해 보면 자기 사촌이 공기업 취직을 했다는
블로그 글이 나온다.
청각장애 5급이라고 하면서,
장애인도 노력하면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현실은
청각장애 2급 이상의
일반적인 음성 대화가 안 되는,
대화에 배려가 필요한
청각장애인은
공기업이 뽑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르거나,
알고도 부스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한다.
정말 들리지 않는 사람이
사회 어디선가 성공을 했다거나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 올랐다거나 하는
사실 자체도 없다.
못 믿겠다면 청각장애인으로 검색을 해보자.
청각장애인 국회의원 등 정계
청각장애인 대기업 직원 등 재계
청각장애인 검판사 등 전문직
사례가 전무.
다른 유형의 장애인은 있는데,
유독 청각장애인만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가능했던
청각장애인의 사례를
청각장애 극복을 했다는 식으로
기사 내고 보도 나오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이 현실.
청각장애인 아무도 '정말' 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