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소통이 막힌 청각장애인은 아무도 없다.
나와 같은 청력 수준(100dB)의
청각장애인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수어를 배워서 비장애인 사회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거나,
이미 인공와우 수술을
어린 시절에 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수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언어습득기(영아~유아시기)에 수술을 했을 경우
본인이 장애인인 것을 밝히지 않고도
일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일반 비장애인 수준은 아니며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소통 자체가 아예 막힌
청각장애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나는 두 갈래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미련하게도 나는
소통 자체가 막힌 채
아무하고도 진심을 나누지 못하고
12년 학창시절을 일반학교에서 보냈다.
그러나, 반드시 안정적인 고소득 직장을
가지겠다는 목표가 있어
남들이 놀 때 공부에 집중했고
인-서울을 하여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수능을 치렀다.
목표를 이뤄서
서울의 대학에 갔지만
나만큼 안 들리는데도 일반학교에 다닌
청각장애인은 아무도 없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일반학교에 다닌 청각장애학생은
보청기나 인공와우 보정을 통해
불편함이 있더라도
전화통화 정도는 가능하고
친구와의 대화도
학교에 적응할 만큼 되는
청각장애인 뿐 이었다.
어음변별력이 없어
소통 자체가 안되는
청각장애인은 일찌감치
특수학교를 다녀서
수어를 배워서
일반 비장애인 사회와의
교류는 없어지고
그들만의 ‘농 사회’를 구축하며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살고 있었다.
청각장애인 사이에서의 나는
‘듣지 못해서’ 어울리지 못하여,
비장애인 사회에서의 나와
다를 것이 없다.
농인 사이에서의 나는
‘수어를 할 줄 몰라서’ 배제되고
결국 어느 쪽에도
나는 완전히 속할 수 없다.
청각장애인은 크게
수어를 쓰는 농인과
음성언어를 쓰는 보청기/인공와우
사용자로 나눌 수 있지만,
청력 정도에 따라
특수학교와 일반학교로
무 자르듯 정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음성 대화가 안되는데
일반 비장애인 학교를 다닌
나와 같은 사례가 있고,
전화 통화가 가능할 정도라도
특수학교를 택한 경우도 있다.
나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결국 청각장애인의 삶은
큰 틀에서는 둘로 나눌 수는 있으나
그것이 뚜렷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며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