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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ea Jul 31. 2021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두번째. 내 엄마의 장례식


비가 엄청 많이 내렸던 그날.


엄마의 장례식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날 내린 비만큼이나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로 장례식은 처음이었는데  그게 나의 엄마의 장례식이라니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전날 엄마와 연락을 했던 기억이 , 엄마와 내가 마지막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이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하늘에 대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삼 남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쉽사리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나에겐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도착한 언니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군대에 있던 동생까지 와서야 우리는 엄마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장례식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엄마를 마음에서 보내주기도 전에, 아니 엄마의 죽음이 사실인지를 알기도 전에 너무도 많은 것들을 정해야 했다. 그것들은 정말 엄마와의 작별을 말하는 것들이었지만 우리는 당연하듯 그것들을 해냈다.

엄마 말대로 우리는 정말 다 커버렸다.





엄마.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장례식 첫째 날.


나는 그날 엄마의 영정사진 앞을 지날 때마다 엄마를 째려봤다. 사실 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음에도 혼자 세상을 등진 여자의 딸이 그녀의 영정사진을 째려보며 미워했던 그 감정은 생생히 기억난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헤아려보려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이해해야 했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으면, 엄마의 죽음이 손가락질받을 것만 같았다. 엄마의 삶을 그저 불쌍하게 왔다가 간 허망함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자살'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쉽게 말할까 두려웠고, 그 말에 우리 가족이 상처 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으며, 우리가 상처 받는 모습을 보고 죽어서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할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장례식 둘째 날.


입관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사랑하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과 엄마의 죽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처럼 돌고 돌았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음이 훨씬 컸다.

가족은 멀리 있어도, 서로 잘 지내는 것만으로 고맙고 소중한 것이니까.

엄마를 평생  본다고 해도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편이  낫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엄마가 너무도 보고 싶었지만, 죽어있는 엄마는 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그 마음으로는 앉아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잠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데 입관 시간이 다되어 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안돼!!"라는 비명과 함께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어찌어찌 몸을 일으켜 미리 써온 편지를 들고 엄마를 보러 향했다.


우리 삼 남매는 천천히 걸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주해야 했다. 그 모든 게 현실이면 안되는데 현실이었다. 우리 언니랑 내 동생 , 우리 셋은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삼 남매를 다 함께 만난 건 꽤나 오랜만이 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들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손편지를 펼쳐 엄마의 앞에서 읽어 내려갔다. 빨리 말해줘야 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 다음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많이 사랑해줄게요"


엄마가 내 앞에 있는 동안에 어서 말해줘야만 했다.

밖으로 나가려던 차에 엄마가 또 한 번 보고 싶어 뒤로 돌아보려는 순간 언니가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미련 남기면 죽은 사람이 편히 못 간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엄마가 나 때문에 못 갈까 봐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엄마를 보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죽어있는 엄마는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은데, 참 이상도 하지.




장례식 셋째 날.


발인날. 죽어있는 엄마의 육신이지만, 그 마저 와도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섭섭했다.

엄마가 있었다가 죽었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100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게 허망했다.


그날 새벽 내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밝아 곧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꼭 이제 갈 시간이라고 말하는 듯하게 들렸다.

아주 잠깐 분향소에 나 혼자 있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느닷없이 엄마의 영정사진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너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흔들리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 자신이 제정신인 건지, 지금 이게 엄마를 위한 건지 날 위한 건지도 알 수가 없었지만 부르고 싶었다. 아마도 엄마가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렀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를 두고 가는 엄마에게 나 괜찮다고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나는 엄마를 잘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울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괜찮아, 나 정말 괜찮아요 편히 가세요



발인하러 가는 길 , 엄마를 태운 차량에 동생이 영정사진을 들고 탔다. 나는 그 뒤를 쫓았고 내 뒤로 언니 그리고 아빠의 차가 줄지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엄마를 보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감사했던 것 같다. 엄마의 마지막 길은 그나마 외롭지 않지 않았을까 ,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인하는 곳은 칸칸이 나뉘어 있었고, 칸별로 여러 가족들이 헤어진 사람과의 슬픈 이별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얀 천에 감싸진 엄마의 육신이 화장되기 전 모습을 보는 동안 나는 울음을 꾹 참았다.

화장 굴 속으로 엄마가 들어가고,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유리벽의 셔터가 내려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며 나는 벽을 쳐댔다. 그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엄마 괜찮아. 나 괜찮아.. 울어서 미안해요. 엄마 조심히 가요.. 엄마 조심히 가.."

나는 허공에 대고 계속 말했다. 아니, 엄마에게 말했다.


손바닥만 한 함에 들어갈 만큼 작아진 엄마를 들고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 밖으로 나와보니 장례식 내내 비를 쏟아내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그 하늘이 내 마음 하나의 위로로 다가왔다.



내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시를 쓰고,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럴 정신이 내게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랬던 것은 기억이 난다.

이성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이성적이려고 노력했던 것일지도.



사람이 죽으면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엄마를 보내주는 내내 너무도 힘이 들었지만,
엄마를 보내주었다.
죽음으로 헤어짐에 있어 보낸다는 것은
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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