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이제 나가 태워요.
문득, 아래층 601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집에서 들려왔던 층간 소음의 여러 목소리 중 601호는 어떤 목소리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실내 흡연도 묻고 싶었다. 이사 와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다가도 들어오는 담배 냄새는 늘 불쾌했으니까.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도 작은방의 창문을 열지 못한다.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 그동안 우리 집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불편하셨다면 죄송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특정 소음들과 복도에서의 소음은 우리 집이 아니라고, 오해하지 마시라고 적었다. 늦은 밤 뛰는 아이는 우리 아이가 아니며 8시 이후엔 안방을 제외한 모든 방은 소등이라고, 얼떨결에 소통을 가장한 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메시지와 함께 샤인 머스캣 한 송이와 박카스 두 병이 든 종이 가방을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그날 밤, 아이가 자는 시간 8시가 넘어서 내가 건넨 포스트잇을 들고 찾아왔다. 캄캄해진 복도, 현관문을 열었다가 나는 웬 곰이 나타난 줄 알았다. 어디서 샀는지 하얀색 샤워 가운을 걸친 듯한 잠옷 차림에 빨간색 머리띠로 앞머리를 넘긴 채 나타났다. 나는 잠시 흠칫 놀랐다가도 어쩐 일인지 무섭지는 않았다. 덩치는 곰만 한데, 내가 건넨 메시지를 들고 올라왔으면 떨지나 말던가. 주먹을 쥐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몸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모르는 듯 뒤뚱거렸다. 쥐고 있던 주먹은 반질반질 통통하게 살이 올라 크기만 큰 아기 손 같았고, 그의 몸도 통통하게 몸집만 큰 아기곰 같았다. 무섭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운이 좋았다. 그날은 남편이 일찍 퇴근한 상황으로 나와 함께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대뜸, 601호 곰의 동문서답이 시작되었다.
“이.. 이.. 거는 제.. 제가 신고한 게 아닙니다!”
‘이건 또 뭐야.. 난독증이 틀림없다.’
내가 건넨 메시지엔 신고했다는 내용이 없었다. 곰은 몹시 불안한 듯 몸과 눈동자는 이미 지진 5.5 강도의 떨림이다.
“아, 네. 아닙니다. 저희도 민원 신고는 받은 적이 없습니다.”
“도.. 도.. 돌려주러 왔습니다! 제.. 제.. 제가 신고한 적도 없고 과.. 관.. 관심도 없습니다! 저는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하.. 귀까지 어두운 게 틀림없다.’
“아, 네. 아닙니다. 편지는 돌려받을게요. 그냥 내려가세요. 죄송합니다.”
어딘가 모르게 잔뜩 흥분한 남자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층간 소음으로 우리 집인 줄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담배로 인한 보복 소음이라고, 나는 제 발 저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관심도 없는 사람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쿵쿵거릴까?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601호 곰의 눈은 그새 우리 집 안을, 바닥을 향해 빠르게 훑고 있었다. 다시 눈을 마주쳤다. 몸과 눈동자는 더욱 강도 높은 지진을 만난 듯, 그의 모습에 내가 오히려 현기증을 느꼈다. 늦은 밤 8층에서 두드리는 소리나 아이가 뛰는 소리 등 601호는 보복심리로 함께 두드리며 경고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바닥은 현관부터 안방까지 모두 층간 소음 매트로 시공한 상태다. 당장 현관에만 켜진 불, 아이는 꿈나라, 나는 그동안 601호가 층간 소음으로 우리 집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그나저나, 돌려준다더니 왜 포스트잇만 들고 올라왔을까?
어쩔 줄 모르는 601호 곰을 보니 어르고 달래서 빨리 내려보내고 싶었을 만큼, 601호 곰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며 동시에 짠해 보이기도 했다. 할 말은 없어 보이는데 불안한 듯 서성거렸다.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 최소한의 배려랍시고 먼저 굽히고 들어갔는데, 정작 올라와서 동문서답이라니. 남자의 곰만 한 덩치보다 어렵게 쓰지 않았음에도 글의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함에 나야말로 마음에 지진이 강했다. 단 몇 분의 대화지만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쯤은 나도 눈치껏 알 수 있었다.
601호도 소통의 부재로 인해 상상도 아닌 망상의 나래를 펼쳤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작에 601호에게 해명했어야 할까?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둘 이상일 거라 의심되었던 801호의 목소리를 확인받은 것 같았다. 단순 해프닝, 이 환경은 배려 없는 이웃과 층간 소음의 피해자만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고도 재밌게 느껴졌다.
어느 날, 예상치도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8시가 다 되어 아이를 재우기 위해 전부 소등하고 누웠다. 평소에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재우는데, 그날은 유독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이번엔 순대 트럭이 왔다고 했다. 해가 길어 아직은 어둡다고 하기엔 애매했던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오른편엔 순대 트럭, 왼편엔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의 남자가 우리 동 위층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촉이 601호 곰을 떠올렸으나 에이 설마, 아니겠거니.
다음날 역시 불을 끄고 아이를 재우려 누웠다. 또다시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곱창볶음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그날도 누군가 우리 동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났다. 차를 세워놓고 담배를 태우며 누군가의 집을 30분 이상 올려다본다고 생각하니 소름은 돋지만, 올려다본다고 보이나 어디. 아이를 재우고 나와 안방 불을 켰다. 늘 그래왔듯이. 혹시나 창밖을 바라보니 이제야 차를 빼며 정문으로 들어왔다. 주방 창가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우리 아파트 사람도 확실했다. 우리 동 지상 주차장에 주차했다. 설마, 이번엔 인터폰으로 확인한 엘리베이터는 정확히 6층에서 머물렀다.
‘우연 치고 진짜 재밌네.’
그 이후 밤마다 유심히 보게 되는 심리, 나는 점점 601호의 곰이 맞다고 추측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는데, 저 곰이 고생하는 걸까, 내가 고생하는 걸까, 난 대체 왜 보고 있는 걸까?
남편은 한동안 퇴근이 빨랐다. 그래봐야 일주일도 못 넘겼지만. 하루는 남편에게 털어놓으며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일찍 들어온 날이면 어김없이 밖에서 올려다보는 곰의 모습을 나는 기어이 확인시켰다.
“저 차 뭐야?”
“소나타?”
“저 머리띠 한 남자가 위를 올려다보는 게 거의 한 달째야.”
“사실 알고 보면 탐정 아니야?”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남편, 망상 놀이가 시작됐다.
“머리띠 하는 남자가 흔해? 6층에 1호밖에 없어. 2호는 노부부고 3호는 젊은 부부, 키 크고 호리호리, 머리띠는 안 해.”
“의뢰인 부탁으로 불륜 조사차 나와 있는 걸 거야.”
확T.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망상 놀이에 가담한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 한심하긴 한가 보다.
“내가 소통하자고 남긴 메시지에 아이가 자는 시간, 소등시간을 적었으니 그걸 601호 남자가 확인하려 올려다본다고 가정한다면?”
“아니야 아니야. 미스터리긴 한데, 아닐 거야. 내가 볼 땐 탐정이야.”
“오빠 여기 잠깐 기다려봐.”
내가 답답하듯 남편도 내가 답답할지도. 나는 내 추측이 단순 망상이 아니길 바랐다. 안방 불을 켜고 작은방으로 돌아와 남편과 확인했다.
“자 불 켜졌고 601호는 갈 거야 이제.”
601호라 추정한 남자는 차를 타고 정문을 통해 들어왔다. 우리 동 지상 주차장에 주차하고, 인터폰을 통해 6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위치를 남편에게 확인시켰다. 그제야 얕게 숨을 내뱉는 남편은 동공 지진, 잠시 정적.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봐, 내 말 맞지?”
“... 이상하긴 하네..”
찜찜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두 달 가까이 601호 곰이라 추정되는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30분 이상 올려다보았다. 우리 아이가 잠든 후 안방 불을 켜면, 수신호라도 받은 듯이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우연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601호의 담배 냄새도 완전히 사라졌다. 더 이상 밖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도 사라졌다. 마음 어딘가에서 쿡쿡 찌르는 듯한 불편함, 나는 이웃의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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