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고, 주제도 넘고

남 걱정 하는 거 아닙니다만.

by 민시

학교 앞에서 엄마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저 멀리 802호 정훈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는 게 보였다. 오른손으로 숄더백을 고쳐 매는가 싶더니 마음까지 고쳐먹은 듯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며 지나갔다. 본인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에 대한 소문을 어떻게 부풀렸을까,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안절부절못할까? 나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는 듯 엄마들과 소리 내어 웃었다.


한 달쯤 흘렀을까,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도 신나고 엄마들도 신이 나 즐거운 한창이었다. 영희 언니가 지나가다 보았는지 가까이 다가오며 나를 따로 불러내는 듯한 손짓을 보였다.

“저기 하성이 엄마 조심해~ 그리고 여기 앞에서 수다 떨면 가까운 동 1층 사람들은 다 들려~ 조심해야 해~”

놀이터 앞 1층은 본인이 마주치기 싫어하는 엄마가 살고 있으니, 혹시나 자신의 이야기가 들리길 원하지 않는 눈치로 받아들였다.


입주 초기 11층 하성이 엄마는 정훈 엄마와 몇 날 며칠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던 하성이 아빠는 결국 폭발했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하성이 엄마와 부부 싸움까지 했다. 나중엔 이웃의 신고로 경찰까지 왔었다며 영희 언니는 내게 소문을 전했다. 물론, 나는 이미 하성이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몇 번 함께하지 않은 자리여도, 하성이 엄마는 802호 정훈 엄마와 어울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거절을 못 하고 한 번쯤 일탈도 하고 싶은 착한 콤플렉스를 가진 순진한 엄마로서가 내가 본 인물이었다. 그녀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굳이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영희 언니보다야 신뢰가 갔다.


누군가의 흠을 잡지 못하면 근질근질한 그녀들이다. 한동안 801호 그녀를 끊어내며 몸을 사리던 802호 정훈 엄마의 다음 타깃이 정해졌다. 영희 언니에게 이번엔 어떤 고급 연료를 넣어줬을까? 영희 언니는 몸에 탑승한 정훈 엄마를 대신해 움직이는 로봇처럼, 정훈 엄마의 입력값만으로 소문을 흘렸다. 802호 정훈 엄마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했다. 어른도 아니고, 그 집 하성이라는 큰아들을 상대로 견제하기 시작하며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아들 정훈이가 하성이와 싸운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영희 언니의 가벼운 입, 결국 내 귀에까지 들려온 하성이네의 소문, 설마 나도 이런 식으로 소문을 퍼뜨렸을까? 기가 차지만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건 늘 같은 사람들이라 그러려니.

“하성이 걔 입에 걸레 물었잖아~!! 정훈 엄마가 되게 싫어해. 정훈이가 물들까 봐~! 싸가지도 그렇게 없다네~!”


그렇게 상처받으면서도, 왜 그렇게 정훈 엄마의 말을 신뢰할까?

‘짠하게 보고 싶다가도, 참 멀었다. 내가 조심할 사람은 하성이네가 아니라 당신들이야.’

그동안 하성이라는 남자아이를 같은 동에 살며 영희 언니보다 더 잘 안다. 나의 눈에는 그냥 아이, 1학년 여동생을 챙기며 손을 꼭 붙잡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이다. 오히려 내가 직접 목격한 건, 802호 정훈이가 11층 하성이와 동생을 쏘아보던 것,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서 정훈이에게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여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성이 엄마와 대화를 해본 적 없다는 영희 언니,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아닌데? 말도 예쁘게 하던데요? 내가 본 하성이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어요. 여동생 손잡고 챙기는 모습만 봤지.”

영희 언니는 내 말에 잠시 리셋된 듯 정신이 번뜩, 그러나 여전히 정훈 엄마의 입력값만 가득 차 있었다. 출력 버튼만 누른 채 재활용도 할 수 없는 새까만 속마음을 토해냈다. 믿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이었다. 901호 아주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여간 지들은 멀쩡한 줄 알아.” 맞네, 맞는 말씀 하셨네. 영희 언니가 왜 정훈 엄마에게 쩔쩔매는지도 알 것 같았다. 왜 벼르고 있는지도 알겠고. 덤으로 왜 붙어 다니는 지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댔는데, 이 정도로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들인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걸, 남의 집 걱정은 대체 왜 하는지, 자신들의 아이는 흠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래도 어른이 아니다.


더 이상 그녀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802호 정훈 엄마와 영희 언니는 보는 시각이 다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대체, 그녀들은 이웃을 뭘로 보는 걸까? 선을 넘기 시작하면 주제넘는 것도 한순간이다. 본인들이 우스워지는 걸 모르는 게 더 신기할 따름. 나도, 나만 멀쩡한 줄 아는 걸까? 이왕이면, 내 똥은 구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절대 남의 일엔 참견하지 말아야겠다.


참, 803호 수빈이네가 이사 갔다. 덩달아 703호, 날카롭게 생긴 아저씨와 욕설 통화의 주범인 중학생 딸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남겨진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막내딸까지 애초에 세 식구였을까? 엄마들에게 들어보니 한두 집이 아니었다. 집마다 각각 사정이 있겠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기저기 세입자들이 많은 게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며칠 후, 지하 1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켜기도 전에 문자부터 확인했다. 그 사이 802호 정훈 엄마의 차가 들어와 내 차 맞은편에 주차했다. 그녀가 얼른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며 잠시 기다렸다.

‘이상하네. 왜 안 내리지?’


곧이어 그녀의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운전석과 조수석이 동시에 문이 열렸다. 802호 정훈이와 그녀가 내렸다.

‘정훈이 울었네? 아니, 울린 거야?’

평소 정훈이와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겁먹어 기죽은 표정이었다. 부어오른 눈두덩이는 빨갛게 물이 들어 뽀얀 얼굴을 점점 덮어가고 있었다. 이어 오랜만에 보인 날카로워진 정훈 엄마의 파란 눈매가 보였다. 검고 짙은 눈썹은 이사 오기 직전에 변기로 흘려보내던 지긋지긋한 두려움, 꼭 사정없이 꿈틀대는 벌레를 연상케 하는 게, 습한 주차장의 어두운 환경과 그녀가 묘하게 어울렸다.


이때다. 나는 또 무슨 심리였을까. 아니, 무슨 심보였을까? 그녀가 사라지길 바랄 땐 언제고. 나는 시동을 켜고 차를 빼며 그녀의 옆을 쓰윽, 사이드미러를 통해 힐끗. 들키면 안 될 걸 들킨 듯 당황한 그녀의 얼빠진 표정, 점점 작아지는 백미러 속 그녀의 모습은 내 차가 사라질 때까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소문을 흘려볼까? 아니? 네 똥은 유독 더 구리니 외면해야지. 내 똥은 구리면 안 돼. 황금이고 싶으니 나만 알기로 했다.

‘이제 남의 집 자식 걱정 말고, 너나 잘하면 좋겠네?’


그녀는 내게 약점이라도 잡혔다고 생각했을까? 무엇이 두려울까? 잔뜩 긴장한 채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공손하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랑 마주치는 게 불편할까? 나는 그녀를 마주할 때면 표정관리를 더욱 열심히 하며 말없이 인사했다. 짧은 정적은 그녀에게 꽤 길어 보였다. 숨은 제대로 쉬고 있을까? 이제는 엘리베이터 속 공기가 다 내 거인 양, 그녀 주변에 일렁이는 공기는 내가 다 뺏어오는 상상을 하며 즐겼다. 보이지 않는 선, 이렇게 마음껏 넘나들어도 되는 걸까?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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