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층간소음
아이를 따라 오랜만에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우연히 아이의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면서 얼떨결에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는 깔깔거리며 신나는 소리를 들려줬다. 나는 한숨 소리만 새어 나왔다. 그러나 평소에 눈썰미가 좋은 나는 어딘가 낯이 익은 그녀, 803호를 단박에 알아차리며 이유 모를 피로함을 극복했다.
“혹시 803호 아니세요?”
“어머! 어떻게 아세요?” 803호 수빈 엄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오며 가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번 뵀어요.”
“어머~ 그래요?”
그녀는 대뜸 1호 라인은 층간 소음이 없는지 물었다. 의도치 않았는데. 나는 일이 풀리려니 술술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801호와 802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
“저희 이사 가잖아요~ 다음 달에~!” 수빈 엄마는 예상치 못한 말을 전했다.
“네?! 803호 인테리어 공사 안내문 본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맞아요~ 저희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나가요~!” 그녀는 흥분하며 703호와의 이야기를 전했다. 층간 소음의 시기는 우리 집과 겹쳤다. 우리 1호 라인만 층간 소음이 심한 줄 알았던 나, 결국 구조가 문제였을까? 803호 수빈 엄마는 억울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703호에서 계속 찾아왔어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우리 집 아니라고 했는데도 우리가 이사를 온 이후부터 소음이 심했다며 매일 올라오더라고요? 정작 그 집 큰딸은 욕설 통화도 하면서요! 언급하려다 싸움 날까 봐 말을 아꼈더니 툭하면 찾아오더라고요? 참고 참다가 나중엔 올라오지 말라고 소리 질렀잖아요, 제가~!”
당황스러웠다. 703호가 803호를 내쫓은 격인가? 703호 여중생은 복도에서 욕설 통화는 기본, 사춘기라고 이웃들은 모두 말을 아꼈다. 그러나 복도나 엘리베이터, 계단 등 누군가 마주치면 인사보다 잽싸게 내뱉는 게 숫자 열여덟이었다. 803호 수빈 엄마의 눈에 띄었던 여중생, 왜 여태 801호와 802호 눈에는 띄지 않았을까? 아이러니. 밖에서도 이러는 걸 본인들은 정말 집에서 조용했을까 싶었다. 803호 수빈 엄마는 나에게 703호도 시끄럽게 하더니 모르는 척, 아닌 척, 딸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했단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놀이터에 나가며 수빈 엄마를 비롯해 다른 엄마들과 친분을 이어갔다. 한동안 층간 소음은 우리 동만이 아니었음을 인지했다. 비참했던 순간들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음을 느끼며 서서히 무언의 고통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동 1호 라인도 마찬가지예요. 위에서 싸우고 욕하고, 목청이 크다 보니 다 들리니까, 그래서 불편한 거죠. 본인들 감정이 그대로 내려오는 거잖아요.” 내 말에 엄마들이 공감하는 사이, 수빈 엄마는 눈도 몸도 커지며 뒤로 슬쩍 빠졌다. 곧이어 이전까지 컸던 볼륨을 줄인 듯 몸을 기울이며 예상치 못한 말을 내게 속삭였다.
“어.. 저기.. 저는 신랑과 동갑이고 중학생 때부터 사귀고 결혼했거든요~ 서로 욕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저희 소음이 거기까지 내려갔을까요~? 툭하면 지랄하네. 미친. 닥쳐. 하고 말하거든요. 저희는..”
듣자마자 당황스러웠지만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조차 그녀에게 실례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갑자기 이실직고의 분위기가 되어 그녀의 뽀얀 얼굴은 더 하얗게 질리고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녀에게 인간미를 느끼며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나와는 또 다른 느낌의 그녀에게 거부감도 거두었다.
“아니에요~ 목소리도 다르고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놀랍긴 하네요~ 동갑내기에 중학교 시절부터 사귀고 결혼했다니. 하하”
그리고 다음 날,
“802호 정훈 엄마가 저더러 집에 놀러 오라고~ 문 열고 있어서 현관이 보였는데 인테리어를 새로 했나 보더라고요~? 얼떨결에 들어가서 차 한잔했어요~ 그런데 저는 바로 앞 집인데 괜히 엮이면 골치 아플까 봐 한 10분? 짧게 얘기하고 밥 해야 한다고 나왔어요. 801호 아저씨는 프리랜서라고, 와이프는 무슨 직업인지 모르지만, 교대 근무자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드디어 나왔다. 내가 궁금했던 8층 사람들, 801호는 교대 근무를 하고 프리랜서였다. 그래서 밤낮이 없었던 거였다. 본인들이 잠드는 시간은 우리가 떠들어서도 안 되었던 것, 기가 막혀.
그러나 나는 803호 수빈 엄마의 이야기에 의아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내가 기억하는 801호 부부가 803호 수빈 엄마가 기억하는 부부와 다르다는 점이었다. 801호 아저씨만 자주 봤다고, 젊은 남자라고 했다. 내가 본 남자는 50대였다. 내가 본 그 부부는 누구일까?
다음 주,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엄마들을 집으로 불렀다. 여전히도 801호의 보복 소음은 밤낮 가리지 않을 때였다. 나는 그마저도 적응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그들의 행태에 나보다 더 분노했다.
“왜 저래요..? 이건 민시씨니까 참지. 난 못 참아. 내가 대신 싸워주고 싶다!”
“미쳤다..”
“진짜.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요?!”
엄마들은 당장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어미 새를 바라보듯 내 입이 열리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한 5개월쯤은 된 것 같네요. 집에 있는 것 같으면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잠깐 멈추게 해 볼까요??”
나는 모두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보였다. 원두 그라인더 소리를 “윙” 들려주었다. 801호의 보복 소음 잠시 멈췄다. 한 번 더 10초 정도 “윙” 들려주고 멈췄다. 그제야 주방 환풍기를 통해 801호의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여기서 소리 나잖아~!! 여기서~!!”
“됐어!! 그만해!!”
그녀의 목청은 언제 들어도 섬뜩했다. 그런데, 왜 내려오지 않을까?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내려와 아이를 울리지 말라고 했던 그녀 아닌가? 엄마들 모두가 눈과 입이 떡 벌어지며 숨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801호 그녀의 나를 향한 막무가내 흠잡기는 이렇게 꼬리를 잡힌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또 의문인 건, 그만하라는 말을 한 사람이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남자가 여태 나와 마주쳤던 50대 남자라면, 밤마다 싸우는 비속어의 젊은 남자는 누굴까?’
“뭐라는 거야~? 지금 곧 점심시간이야, 이 시간에 그라인더 소리로도 지랄하면 그동안 대체 어떻게 살았어? 이거 좀 심한데?” 함께 있던 엄마 중 나이가 제일 많은 큰언니가 말을 보탰다. 그리고, 뒤이어 수빈 엄마가 말을 이었다.
“난 지금 소름 돋았어요~ 나는 살면서 아저씨만 몇 번 봤거든요~! 누나가 가끔 애를 봐준다고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왔으면 나 완전히 미쳤을 거야~ 소름 돋아~!”
나야말로 소름이 돋았다. 누나? 목소리가 둘 이상일 거라 예상은 했었다. 그토록 자주 마주쳤던 그녀와 그는 결국, 누나 부부라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25평, 한 집에 두 가정은 생각도 못 했다.
“무섭다 정말. 쥐 죽은 듯이 있으라는 거예요, 뭐예요? 저 집도 애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같은 동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다는 젊은 엄마가 잔뜩 겁을 먹은 채 말을 보탰다.
“괜찮아요. 나도 결국 똑같은 사람 됐어요. 질러줬거든요. 아침 6시 넘어 망치질하는 바람에 애도 나도 놀라서.”
“하.. 6시에 망치질은 괜찮고, 점심시간에 원두 그라인더 소리는 안 된다는 거야? 가만있어 봐, 이건 심각해. 관리실에 전화할 거야.” 큰 언니는 관리실에 한두 번 전화해 본 게 아닌 듯 익숙해 보였다.
이후, 엄마들은 우리 집을 몇 차례 방문하며 801호의 보복 소음에 용기를 주었다. 나는 관리소장님께 그동안의 층간 소음 사실을 전달했다. 그러나 관리소장님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나마 확실하게 안내하겠다며 이야기가 전해진 당일 밤 12시쯤, 801호 그녀는 악을 질러대며 바닥을 향해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그려지는 소리였다.
“제정신이 아니야..” 남편은 포기한 듯 중얼거렸다.
“정상이 아니니까..”
나 역시도 엄마들과 함께하며 사실 확인을 핑계로 소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만들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가십거리의 주인공을 탈퇴한 듯 마음은 후련했다. 그날 이후 그 부부는 많은 소리, 소문을 남겨놓고 완전히 사라졌다. 무책임하게.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층간 소음 #이웃갈등 #이사 #착한 콤플렉스 #현실밀착형 #생활밀착형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