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웃음, 저런 웃음.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올라온 엘리베이터, 어떤 여자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올라왔다. 그녀는 나보다 작지만 얼추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7층을 누르려는 순간 8층에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맞아, 이 사람 이사 올 때 한 번 봤던 사람이야.’
그러나, 얼마 전 수빈이네가 이사 가고 다시 이사 온 803호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 802호 정훈이네도 아니다. 그렇다면, 801호? 7층을 누르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나를 등졌다. 여자 목소리가 한 명이 아니었는데, 이 사람인가? 당당하게 보복 소음도 일으키더니, 혼자 있으니 기를 못 펴는 걸까?
며칠 후,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온 나는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서 멈추고 익숙한 801호 비속어의 주인공, 그의 목소리가 울리며 아이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지하 1층, 주차장으로 가는 방향 반대편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801호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이를 챙기며 어린이집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며칠 전 보았던 그 아이가 맞았다. 그러나 그는 밤마다 들려오던 801호의 목소리는 맞지만, 그동안 내가 보아온 801호의 그가 아니었다.
‘이 사람이 803호 수빈 엄마가 자주 봤다던 남자겠구나?’
그는 나보다 몇 살 차이 안나 보이는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소심하게 생긴 남자로, 비속어나 욕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내가 801호라고 믿었던 부부가 오히려 내게 보이던 행위들로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영희 언니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그렇게 보복 소음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두 번 마주친 부부만이 801호에서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801호에서 가구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매시간 드나들던 현관문 소리도 완전히 줄었다. 하루 걸러 하루 마주쳤던 801호라 믿었던 부부가 사라졌으니, 결국 그 부부는 801호의 누나 부부가 맞는 셈인가?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 없이 지독하게 쏘아보며 고약함을 풍기더니, 영희 언니를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 이후엔 소리만 요란하고, 왜 사라졌을까? 오전에도 오후에도 조용하다. 새벽에 들리던 층간 소음 역시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동안 한 집에 두 가정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는 왜 이리 낯설까?
젊은 그(동생)의 비속어와 욕설, 쏘아보던 그녀(누나)의 샤우팅은 친남매라 가능했을까? 함께 살며 맞지 않은 부분에서 큰 소란을 벌이며 싸웠던 것이 아닐까? 갑자기 커진 듯한 아이가 뛰는 소리도 801호 누나 부부의 아이, 아이가 뛰는 소리에 601호에서 뛰지 말라고 경고하며 우리 집을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801호 그들은 본인들이 자야 할 오후 시간에 나와 아이가 놀거나 혼내는 소리로 못 잤다고, 더구나 나를 7층 욕설 통화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소통 없는 망상은 겁이 나 아무 말도 못 하던 나를 기피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멋대로 확신하고 싶지만, 더 정확한 건 그들만이 알겠지? 하지만 나는 물을 생각조차 없다. 이제 와서? 다시 추위와 싸우며 벌레 소굴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
며칠 후, 지하 2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나는 드디어 801호 비속어의 주인공인 그를 일대일로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모자를 만지며 바닥을 향해 시선을 떨궜다. 나는 태연하게 뒤돌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척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는 방심하다 쇼크 먹고 기절한 듯 굳었다가, 서서히 눈동자부터 풀리며 좌우로 굴리더니, 이내 자세를 고쳐 벽에 시선을 돌렸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당당하게 그의 누나처럼 쏘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웃은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보든 말든 고개를 반쯤 돌리고 가볍게 숙여 인사하고 내렸다.
‘그동안 누나 뒤에 있었던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거야. 다른 엄마들 같았어 봐.’
고개도 못 드는 그는 같은 층에 가까운 이웃 802호 부부를 통해 개인적으로 어떤 모멸감을 감당하며 지낼까? 그리고,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엄마였다면, 8층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의문인 건,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시끄럽다고 쫓아 내려올 땐 언제고, 703호 여중생의 욕설 통화는 왜 쫓아 내려와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소리가 두려웠을까? 그러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왜 그렇게 쏘아봤을까? 이웃을 우습게 보다가 본인들이 우스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웃 무서운 줄 모르던 801호 누나 부부는 802호 부부에게 꼬리가 잘리는 게 당연하고, 더구나 802호 정훈 엄마가 만만하게 보던 영희 언니에게 약점을 잡혔으니, 802호 체면도 말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남은 동생 부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게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나는 이렇게 그들과 마찬가지로 추측만 난무하는 망상으로 소문내야 할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영희 언니의 입은 자유로우니 맡긴다. 그토록 두려웠던 존재 801호 누나 부부는 사라졌다. 802호 부부의 태도 역시 180도 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면 경이로운 지경이다. 802호 정훈 엄마는 아들 정훈이에게 오해였다고 했을까? 이모라 웃으며 인사하는 정훈이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초기 입주민들 단체방에 802호 정훈 엄마가 한 말을 영희 언니가 보여주었다. 나와 정훈 엄마가 친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슬쩍 내비치며.
장서연(정훈 엄마): “등신이지. 그동안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여태 말도 없다가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는 건 그동안 욕먹을 걸 자초한 일이나 마찬가지 아니야?”
‘가만히 있으면 욕먹어도 된다는 논리구나?’
부글부글 끓을 것 같던 마음은 의외로 냉정했다. 또 한 번 2차 소문을 퍼뜨리는 자신들이 가해자인 걸 모르니, 나는 그녀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른다.
소문은 퍼뜨리고 내 앞에서는 쏘아보던 눈을 거두며 웃는 정훈 엄마, 뒷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어울리는 영희 언니, 내가 정훈 엄마와 친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 또한 알겠으니, 개판이다. 온갖 추측과 망상, 들리는 소리만으로 소문만 난무하는 게 누구나 층간 소음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에겐 들려오는 욕설만큼이나 소통이 두려웠다. 아이가 울고 남편도 목소리 내어 혼내는데, 욕은 왜 나만 먹어야 했을까? 여전히 속에서는 풀리지 않는 편협함이 나를 비열하게 만든다.
퇴근한 남편은 오자마자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앞으로 관리비를 지로 대신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이 쏟아지고, 뒤이어 데워진 물 사이로 몸을 맡긴 듯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왜 평소엔 보지도 않는 남편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을까?
‘이 달 관리비는 얼마나 나왔을까..’
몇 년 만에 열어본 남편의 핸드폰, 나는 앱을 열어 관리비부터 조회하려다 눈에 띈 [민원 관리_내 민원]을 본능적으로 선택했다. 풉,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씻어내는 소리 못지않게, 내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소리처럼 혼자 히죽거리며 웃었다. 남편은 그동안 남편의 방식대로 조용히, 상세히 기록하며 신고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당당하게 소리 낼 수 있도록. 8층에 매복한 적군에게 알리는 듯 “나에겐 열세 개의 기록물이 남아있다!”라고 외치는 남편을 상상했다.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듯이,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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