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들어가며(낯섦과 익숙함)
30대 초반,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회사생활,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직장생활 절반 이상을 조직장 생활을 하였고 그 사이 결혼을 하고 2명의 남자아이를 키우며, 작지만 집도 장만하였고, 그야말로 평범한 중산층의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왔다. 반면에 2012년 6월부터 조직장이 되면서 경기도, 전라도, 충청도로 이어지는 타지 생활은 한 달에 2~3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며, 더구나 빨간 날(토요일, 일요일이나 공휴일을 나의 직장 동료들은 이렇게 불렀다)에는 근무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은 일반인들과는 또 다른 삶의 패턴을 요구하였다. 그 사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7살 큰 아이가 이제 20살 대학생이 되었다.
2024년 12월 초 어느 날,
24년을 넘게 다니던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선배, 후배들의 모습을 보았고, 오히려 선배들, 후배들에게 퇴직을 권유해야 하는 직책을 수행하기도 했었다. 선택의 시간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한 달 반의 휴가(?)가 생겼다. 그동안 조직장 생활하면서 1년에 한 번 하반기 휴가는 길어야 5일…..
근무지 관사(사택)의 짐을 이사하니, 12년 전 캐리어 가방 2개로 시작한 지방 생활은 이젠 중형 트럭 한 대 분량의 한 집 살림이 되어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이도 방학이라 집에 와있었고 고딩2 작은 아이도 집에 있었다. 오랜만에 4 가족이 함께함이 낯섦이다. 하하하
중년이 되어 새벽에 일찍 깨는데 방학이라 늦잠 자는 애들 방해하지 않는 것. 내가 쓰는 옷이나 필수품 찾는 것.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 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받아먹는 것. 애들과 나눌 대화거리 찾는 것. 어렵게 생각해 내어 이야기하고 있으면 끼어드는 애 엄마. 내가 무엇인가 하려 하면 궁금해하는 가족들…… 이러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도 내게는 모두 낯섦이다. 큰 일이다. 빨리 익숙해져야 하는데…..
겨울방학을 맞은 큰 아이가 10여 일 정도의 일정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한다. 난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 내 주변의 많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학 1~2학년 때 많이들 경험한다. 아이는 혼자서 이런저런 계획도 수립해보고 있는 중이었지만 선뜻 실행을 주저하는 느낌이다.
나에겐 절호의 기회다. 아빠와 함께 가자 제안했고 동의를 얻기까지 5일 이상이 소요되었다. 대신에 방문 예정 도시가 2~3개 늘었고, 체류기간도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나에게 가족과 함께한 여행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여름휴가 때면 2박 3일 정도 캠핑이나 3박 4일 정도 동남아 가족여행 경험 정도였는데 20여 일을 단둘이서 함께할 생각만으로 걱정, 두려움, 설렘, 기대가 함께 한다.
실무 담당자 시절부터 조직장까지..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꼰대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서울 본사 출장 일정이 잡히면 기차 및 숙박호텔 예약도 회사에서 다 해준다. 난 핸드폰으로 전해받은 기차표와 호텔 예약 번호만 가지고 간단히 내 서류와 옷가지만 챙긴다. 조직 내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도 아이디어링과 플래닝 단계에는 깊게 개입하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소위 위임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팀원, 직원들에게 대부문 맡긴다. 언제부터인가 실무 기안보다는 기안을 결재하는 위치에 와 있었다. 나름 실무형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그것은 그저 듣기 좋은 말이었을 것이다.
배낭여행에 대한 나의 작은 의견 하나가 이젠 꼰대의 간섭이 되고 있었다.
플래닝 단계에서 난 머릿속으로 갈 도시를 생각하고 그 해당 도시에서 가볼 곳들을 노트하고 그곳들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고 ….. 이런 식이었는데, 큰 애는 Mackbook(애플 노트북)을 열고 구글 지도를 펴고, 일정표에 업로드하며 방문할 곳과 체류시간 그리고 그곳을 이용한 기존 관광객들의 후기까지……
숙소나 식당 리써치도 마찬가지.. 꼰대 아빠는 그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정도만 제시하면 되는 행복한(?) 상황. 계획 첫 단계부터 삐그덕 거린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니? 큰 애도 이제 성인인데 내 의견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따르자. 정보나 지식이나 큰 애가 나보다 더 많을 거고 또 접근 스피드도 빠를 테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위로가 아니라 Fact이다
큰 아들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살해한 후 멀리 떠난 마음속 연인 그루센까를 추적(?)해 선술집에서 만나고 있는 장면….
읽고 있던 책 “까라마죠프의 형제들‘은 하권에서 잠시 멈춰두고 떠나보자.
* 이제 새로운 용어, 새로 만나는 사람이나 처음 먹어본 음식 이름 같은 것들이 외워지지 않는다. 스스로도 아쉽고 화나는 일이다. 그래서 핸드폰에 그때그때 느낌을 메모하고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여행을 맞히고 집에 돌아와 여행 중 작성한 짧은 메모와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며 여행을 되돌아 보다 시간의 흐름대로 하루하루를 에피소드로 정리해 본다. 방문지나 방문지와 연관된 예술가나 예술 작품 등에 대한 정보나 소개보다는 꼰대 중년남이 느꼈던 그 순간순간의 느낌 위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