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햄릿인가

극단 성북동비둘기 <호러이쇼(Horror Is Whow)>(2025)

by 아리타



KakaoTalk_20250907_171249265.jpg 출처: 극단 성북동비둘기


"복수하라."


아버지 유령의 명령 앞에서 햄릿은 죽은 자가 되었다. 산 자의 시간이 죽은 자의 망집에 사로잡히는 순간,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이 되고 미래는 이미 정해진 운명의 되풀이가 된다. 햄릿을 단순한 복수극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놓치게 된다. 아버지 유령이 아들에게 진정 요구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바로 '복종'이다. 과거의 질서에 대한 복종, 죽은 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절대적 복종. 이렇게 읽을 때 비로소 햄릿은 400년 전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5년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과거가 현재를 집어삼킬 때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에서 역사가 생명을 질식시키는 두 가지 방식을 진단했다. 첫 번째는 '기념비적 역사'의 폭력이다. 과거의 위대한 순간들을 신격화해 현재에 강요하는 태도는 한국사회 곳곳에서 목격된다. 한국전쟁의 영웅서사, 산업화의 신화는 청춘들에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아버지의 법으로 군림한다. 두 번째는 '골동품적 역사'의 마비다. 과거를 박제하고 경외하려는 충동은 현재의 변화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전통과 정통성이라는 가면을 쓴 보수적 역사의식은 세대 간 '다름'을 '틀림'으로 둔갑시키며 현재를 끊임없이 부정한다. 오필리어의 광기가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폭력의 귀결인 것처럼, 오늘 청춘들의 고립과 절망 역시 이러한 역사의식이 빚어낸 병리현상이다. "비역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은 한 개인이나 민족, 그리고 한 문화에 똑같이 필요하다"고 니체는 말한다. 과거는 때로 현재를 잠식하는 맹독이 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요함으로써 현재의 생명력을 서서히 고갈시키는 것이다.


심판대에 선 과거

<호러이쇼>는 니체가 제시한 세 번째 길, '비판적 역사'의 날선 힘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이로써 과거를 법정에 세우고, 고통스럽게 심문하며, 마침내 유죄를 선고한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유관순의 절규, 오필리어의 저항, 거리로 나선 청춘들의 분노는 과거를 신성불가침의 성역에서 끌어내려 현재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과거 부정이 아니라 삶을 위한 역사의 복원이다. <호러이쇼>의 청춘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더 이상 수동적 희생자로 머물지 않고 질문하는 주체로 거듭나려는, 과거의 무게를 떨쳐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


복수를 넘어선 해방의 길

햄릿의 진정한 갈등은 복수의 칼날을 들 것인가가 아니라, 아버지의 질서에 순응할 것인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2025년 한국을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의 실존적 딜레마와 정확히 공명한다. <호러이쇼>에서 구시대의 망령은 현재에도 실시간으로 재생산되는 권력과 폭력의 구조로 제시된다.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에서 오늘날의 각종 재난 현장까지 한국사회 곳곳에 깃든 망령들이 어떻게 청춘을 희생양으로 삼아왔는지 예리하게 폭로한다. 누가 감히 이 땅의 청년들을 대표한다고 참칭하는가. 이 땅의 청년들은 지금 여기에 있다. 죽은 자의 망상에 갇힌 기성세대의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주체로서. 그들의 목소리는 무대를 넘어 현실로 터져 나온다.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며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오는 청춘들의 목소리는 과거의 상처를 비극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창조의 힘으로 전환한다. 이들이 외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해방이고,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도 과거를 완전히 망각하지는 않는, 그 아슬아슬한 균형점에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것. <호러이쇼>는 아버지의 망령을 넘어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해가는 주체들의 선언이며,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청춘들의 항거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2025년에도 여전히 햄릿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문헌

니체, 프리드리히.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이진우 옮김. 서울: 책세상, 2005.



연극 <호러이쇼 Horror Is Show>(2025) 프로그램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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