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간

80대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

by 한시을

19화: 평범했던 2022년과 예상치 못한 시련의 시작


아침 햇살이 어머니 집 창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2022년 봄, 여든 살을 맞이한 어머니는 막내와 함께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계셨다. 라디오에서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어머니에게는 그런 거창한 변화보다 창가에서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고, 아침 7시 정각에 드시는 따뜻한 미숫가루 한 잔이 더 소중한 일상이었다.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의 긴 터널이 끝나가고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의 하루는 여전히 규칙적이고 정갈했다. 그 누구도 이듬해 여름에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2022년 한국 사회는 엔데믹 전환과 함께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단계적으로 완화되고,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특히 고령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고,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 생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대구의 한 동네에서 막내아들과 조용히 지내는 82세 어머니에게는 그런 사회적 변화보다 더 단순하고 소중한 가치들이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건강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식들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평범했던 2022년, 소중했던 일상


2022년 어머니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되었다. 평생 몸에 밴 습관으로 일찍 일어나 집 안을 정리하고, 막내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때처럼 바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있었다.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조금 더 주무셔도 되는데..."


막내가 걱정스럽게 말하면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습관이 되니까 일찍 일어나지는 일이야. 그리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루가 길어지고 좋더라."


봄이 되면 유하사에 다녀오시는 것이 어머니의 연례행사였다. 코로나19로 2년 가까이 외출을 자제하셨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다시 나들이를 시작하신 것이었다.


"오랜만에 절에 가니까 마음이 참 편해지더라. 부처님께 우리 식구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왔다."


어머니가 절에서 돌아오신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며 들었던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신다. 당신의 건강보다 우리의 평안이 더 소중하신 분...


여름이 되자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더위를 이겨내셨다. 에어컨보다는 선풍기를 선호하시고, 찬 음료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드시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름을 나셨다.


"에어컨 바람은 몸에 안 좋아. 선풍기만 틀어도 충분해."


어머니의 건강 비결은 항상 절제와 규칙이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피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계절을 받아들이셨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겨울 준비였다. 안동의 큰외삼촌과 전화를 걸어 올해 고추는 어떤지, 김장용 배추는 언제쯤 준비하면 좋을지 상의하는 것이 가을의 중요한 일과였다.


"누님, 올해 고추가 좀 비싸네요. 그래도 좋은 걸로 골라서 마련해 놓을게요."


"고마워. 너무 비싼 건 말고 적당한 걸로... 우리가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니까."


어머니는 언제나 검소하셨다. 좋은 것보다는 적당한 것, 많은 것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준비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철학이었다.


겨울 준비를 마친 어머니는 만족스럽게 말씀하셨다.


"이제 겨울이 와도 걱정 없다. 배추도 구했고, 고춧가루도 준비했고..."


건강했던 82세, 예상할 수 없었던 미래


2022년 말, 어머니는 정말 건강하셨다. 82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셨고,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으셨다. 지병이 없어 어떤 약물도 복용하지 않으셨고, 정기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괜찮다. 건강해.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몸 잘 챙겨."


"어머니, 요즘 몸은 어떠세요?"


"좋다. 뭘 그런 걸 물어보니. 내가 아프기라도 하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힘차고 확신에 찬 것이었다. 정말로 건강하셨고, 당신 스스로도 그것을 자신하고 계셨다.


그때 우리는 몰랐다. 건강이라는 것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것인지를. 82년을 건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에게도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2022년 연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년에도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면 좋겠다. 우리 식구들 아무도 아프지 말고..."


그 소망은 반만 이루어졌다. 2023년 상반기까지는 정말 평온했지만, 7월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23년 7월 9일, 예상치 못한 시작


2023년 7월 9일 오전, 평범한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맞이하셨지만, 뭔가 몸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셨다.


"몸이 좀 이상해... 피부가 따갑고 물집이 생겨..."


처음에는 단순한 피부트러블로 생각했다. 여름철 습한 날씨 때문일 거라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막내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형, 엄마 상태가 이상해요.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열도 나는 것 같아요."


그날 오후, 우리는 어머니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의료진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의사: "독성표피괴사, 즉 TEN(Toxic Epidermal Necrolysis)으로 보입니다. 스티븐 존슨 증후군의 확대형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게... 어떤 병인가요?"


의사: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해 피부 박리가 체표면적의 30% 이상에 이르는 질환입니다. 즉시 집중치료가 필요합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이런 상태가 되다니...


그날부터 어머니의 38일간 투병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무도 준비할 수 없었던 마지막 여정의 시작이었다.


첫 번째 희망의 빛


입원 초기,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희망을 품었다. 7월 18일, 작은 변화가 있었다.


간병인: "환자분, 어떠세요? 컨디션이 좀 나아지신 것 같은데..."


"속이... 속이 편해졌어..."


병원 정수기 물 대신 생수로 바꾼 후 설사와 복통이 사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조금씩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알부민 투여 후에는 호흡이 안정되고 밤새 숙면을 취하셨다.


7월 19일은 더욱 희망적이었다. 처음으로 밤새 패드 교체가 없을 정도로 피부 진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오곡... 꿀... 어디 있니..."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셋째를... 셋째를 만났어..."


다가오는 7월 21일이 세상 떠난 셋째의 기일이었다. 섬망이었다.어머니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도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계셨다.


현실과 기억이 뒤섞인 상태였지만, 그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애정이 어머니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회복의 기쁨, 짧았던 안도


7월 말경, 어머니는 상당한 호전을 보이셨다. 7월 25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간병인: "어머니,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이세요. 입원 이후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어머니는 입원 후 처음으로 손으로 직접 밥을 맛있게 드셨다. 작은 일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팔의 통증이 심해 삽관 시술을 받으신 후에는 더욱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살 것 같다..."


어머니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하신 말씀이었다. 그 순간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희망을 품었다.


어머니가 이겨내실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의지가 강하신 분인데...


피부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엉덩이 부분이 살색으로 돌아왔고, 드레싱이 필요한 부위도 줄어들었다.


의사: "간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좋은 신호입니다."


"정말요? 그럼 회복되고 있는 건가요?"


의사: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희망적이에요."


어머니의 식사량도 늘어 일반식으로 바뀌었다. 재활의학과 컨설팅까지 요청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우리는 정말로 어머니가 회복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 희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평온했던 일상과 갑작스러운 폭풍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사회 전체가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던 2022년, 국가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었다. K-방역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며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구 작은 집에서 막내와 함께 지내는 82세 어머니에게는 그런 거대한 변화보다 더 소중한 일상의 리듬이 있었다.


매일 아침 창가에서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며, 자식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평범한 일상. 국가가 디지털 혁신을 논할 때, 어머니는 가정의 평안만을 그리고 있었다. 사회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때, 어머니는 가족 간의 사랑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가치라고 여겼다.


어머니의 2022년과 2023년 7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시던 어머니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련 앞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가족들. 국가 전체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동안, 한 가정에서는 더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7월의 작은 회복 징조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희망은 참으로 소중했다. 그 희망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이전 19화어머니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