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간

80대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

by 한시을

20화 준비없는 영원한 이별


병실 창문 너머로 8월의 무더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2023년 8월 초, 7월 말까지 이어진 어머니의 회복 조짐에 우리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폭염주의보 발령, 온열질환 주의하세요"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중환자실 안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몸속에서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 것 같다"라고 안도의 말씀을 하시던 어머니가, 8월이 시작되면서 다시 깊은 고통의 바다로 빠져들고 계셨다. 그 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웠고,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2023년 한국 사회는 고령화 사회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8.4%를 차지하며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었고, 노인 의료비 증가와 함께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환자와 가족의 의료 결정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정작 그 순간에 직면한 가족들에게는 법적 절차보다 더 근본적인 고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과 생명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무엇이 진정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었다. 어머니 같은 80대 고령 환자들에게는 치료의 한계와 가족의 선택이라는 이중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8월 8일, 혈변으로 시작된 급변


8월 8일 오전, 여느 하루처럼 그날도 담당 의사의 회진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 어머님 상태가 이상해요. 혈변이 나오고 있어요. 양이 꽤 많은 것 같아요."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리 그날 오전 회진 결과는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7월 25일 "입원 이후 컨디션이 가장 좋다"던 간병인의 말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혈변이라니.


나는 7월 말까지의 희망적인 변화들을 떠올렸다. 손으로 직접 밥을 드시고, 식사량이 늘고, 간수치가 떨어지고, 재활의학과 상담까지 받았던 그 며칠이 꿈이었을까.


어머니가 "살 것 같다"라고 하시던 그 안도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의사: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합니다. 출혈 부위를 정확히 확인해야 해요."


"어머니 상태로 검사가 가능한가요?"


의사: "솔직히 말씀드리면 위험합니다. 고령이시고 현재 저혈압 상태라... 하지만 출혈이 계속되면 쇼크로 더 위험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사: "비수면 검사로 진행하겠습니다. 환자분께는 부담이 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시경 검사 결과는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이었다. 그동안 투여한 약물들이 위벽에 손상을 준 것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도 검사를 받으셨다. 검사 도중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아파... 배가 아파..."


어머니가 신음하시는 소리에 나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고통을 당신이 감내해야 하나. 82세의 나이에...


검사가 끝난 후 어머니는 더욱 지쳐 보이셨다. 출혈 부위에 대한 응급처치는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직 몰랐다.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희망과 절망 사이


8월 10일, 혈변은 멈췄지만 어머니의 전반적인 컨디션은 계속 나빠졌다. 식사량이 다시 줄어들었고, 말씀하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간병인: "환자분, 죽 좀 드셔보세요."


"못 먹겠어...입맛이... 없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7월 말에 보여주신 그 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8월 12일에는 소변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신장 기능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의사: "신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폐도 좋지 않습니다.모든 장기 기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가족들이 결정을 고려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정도로 급박한 상황입니까?"


의사: "솔직히 말씀드리면 82세 고령에다 현재 상태로는... 어떠한 치료 자체도 병세를 호전시키기엔 역부족입니다. 가족분들이 결정하셔야 해요."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현 상태로 지켜 불것인가 말 것인가. 연명 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뭘까. 이런 고통스러운 치료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실까.


8월 13일 저녁, 어머니는 간신히 눈을 뜨시며 말씀하셨다.


"고생이 많다... 너희들이..."


그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눈물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걱정하시는 어머니였다.


8월 14일 밤, 마지막 전환점


8월 14일 오후 4시경, 입원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발열이 시작되었다. 간병인이 체온을 재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간병인: "38.5도예요. 지금까지 열이 없었는데... 이상해요."


30분 후에 다시 재니 39도였다. 급격한 체온 상승이었다.


곧이어 부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과 손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다. 호흡도 가빠졌다.


간병인: "환자분, 숨쉬기 힘드세요?"


"숨이... 차..."


어머니는 간신히 대답하셨다. 의료진이 급하게 모여들었다.가족들도 급히 모였다.


의사: "혈전방지용 항고제와 스테로이드를 중단한 결과로 보입니다.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의사: "간수치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염증 수치도 정상치의 몇 배를 넘었습니다. 다중장기부전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의사: "중환자실 이송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가족들이 모였다. 이 상태로 계속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중환자실로 이송해서 차도를 지켜볼 것인지.결국 중환자실 이송으로 결정하였다. 그날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 하셨다. 의식도 급격히 떨어져 말씀하기 어려워 하셨고,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데 숨이 차서 제대로 말씀을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8월 15일, 광복절의 마지막 하루


8월 15일 오전 8시, 담당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오늘 넘기기 힘들 것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화였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기도삽관과 산소호흡기가 부착되었고, 면회는 10분으로 제한하였지만, 보고 싶은 가족들은 마지막 면회를 하라고 하였다.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다. 면회 시간마다 10분씩 들어가 어머니를 볼 수 있었지만,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평생 강인하게 살아오신 그분과는 너무나 달랐다. 수많은 선과 기계들에 둘러싸인 채,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숨을 쉬고 계셨다.


이게 정말 우리 어머니인가. 평생 누구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


오전 10시 면회 때,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차가워진 손이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손이었다.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인공호흡기만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후 2시 면회, 오후 4시 면회, 오후 6시 면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생명 징후는 약해졌다.


의사: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각종 수치도 좋지 않아요."


"어떤 뜻인가요?"


의사: "언제든지...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후 9시 면회 시간, 마지막 10분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엄마,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그동안 가족과 자식들에 위해 보여주신 헌신과 봉사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아버지와 셋째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만나보여야지요.. 아버지께 자랑하셔야지요.. 혼자서 험난한 세월을 잘 버티고 자식들 아주 잘 키웠다고...그리고 셋째에게도 손자들 걱정말라고...얘기하셔야지요...흐흐흑."


오후 9시 31분, 어머니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광복절, 해방의 날이었다.


7월 9일 입원부터 8월 15일 운명까지, 정확히 38일간의 투병이었다.


무엇을 해드릴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지난 38일을 돌이켜보며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병상에서 어머니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해드릴 수 있었을까. 어떤 말씀을 드려야 했을까.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내시경 검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투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머니가 생전에 연명치료거부 의향서를 제출하였다고 하나 실제로 이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무거운 결정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의학 지식도 없고, 어머니의 진짜 마음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내린 선택들이 과연 옳았을까.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는데.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면서도 살기를 원하셨을까, 아니면 편안한 마지막을 원하셨을까.


어머니는 끝내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셨다. 평생 강인하게 살아오신 분이 기계에 의존해 숨을 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의료진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조차 10분씩만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전하지 못한 마지막 말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하셨다는 것이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 마지막에는 정작 자신의 마음을 전할 기회도 갖지 못하셨다.


"모처에 8억이 있다"는 섬망 상태의 말씀 외에는, 어머니의 진짜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정말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고맙다"는 말씀이었을까. "사랑한다"는 말씀이었을까. 아니면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였을까.


어머니는 평생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으셨다. 자식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직접적으로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 대신 행동으로, 희생으로, 묵묵한 헌신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그런 말씀이라도 하고 싶으셨을 텐데. 80년을 살아오시면서 그토록 많은 것을 참고 견디셨던 어머니가, 정작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셨다는 것.


자식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지 못하셨다는 것. 그 무엇보다 평생 표현하지 못하셨던 사랑의 말씀을 끝내 하지 못하셨다는 것.


기계와 함께한 마지막 시간들


병실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은 평생 강인했던 그분과는 너무나 달랐다. 의료진과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


인공호흡기가 어머니 대신 숨을 쉬어주고, 각종 장치가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모니터가 생명 징후를 감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기계들 사이에서 조용히 누워 계셨다.


그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우셨을까. 평생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


어머니가 그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을까.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씀이 있으셨을 텐데.


홀로 떠나신 길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후회스럽고, 가장 미안한 일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홀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무런 유언도, 아무런 당부도 남기지 못한 채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어드리는 것뿐이었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시작된 마지막 일주일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7월의 희망이 8월의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어머니는 우리를 걱정하셨다. 섬망 상태에서조차 자식들에게 뭔가 남겨주려 하셨던 그 마음만은 진실했다.


"너희들 고생이 많다"라고 하셨던 8월 13일의 그 한 마디가 어머니의 진짜 마지막 말씀이었다. 자신이 가장 힘든 순간에도 자식들을 걱정하시는, 그것이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고령화 사회의 의료 현실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시대에, 어머니의 마지막 38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준비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무게를. 어머니는 광복절에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셨지만, 남겨진 우리에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그리움과 함께 어머니가 보여주신 마지막 사랑이 깊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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