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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말의 전쟁 20화

말의 전쟁

에필로그

by 한시을

에필로그: 2,500년을 관통하는 중간국 생존의 지혜


▌2024년 12월 3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이 강대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7%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10년 전 같은 질문에서는 34%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었다. 국민들 스스로 한국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실제로 2024년 한국의 명목 GDP는 2조 1천억 달러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1인당 GDP는 3만 3천 달러로 G7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문화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방산 수출도 세계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혼란스럽다. "우리가 정말 강국인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강대국들 눈치를 봐야 하는가?"


18번의 질문, 18번의 깨달음


지난 9주 동안 우리는 함께 여행했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서 2025년 현재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중간국의 생존법을 탐구했다.


첫 번째 질문은 "정중한 거절의 기술"이었다. 강대국의 초청을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라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외교의 모든 비밀이 숨어있었다. 노나라 환공이 초나라의 사냥 초청을 거절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원칙 있는 유연성"이라는 답을 찾았다.


마지막 질문은 "주권의 기술"이었다. 독립과 고립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진나라의 절대 독립과 제나라의 네트워크 주권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연결을 통한 자립"이라는 21세기형 답을 발견했다.


그 사이 16개의 질문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립의 함정에서 동맹의 유연성까지, 자원 외교에서 기후 외교까지, 정보전에서 내부 통합까지.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해답이 서로를 보완했다.


전환기 이론의 완성


9주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통찰은 "전환기 이론"이었다.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발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전국시대를 "힘이 지배하던 시대"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존 권위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분권 질서가 만들어지는 전환기였다. 그리고 그 전환기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드파워가 아니라 적응력과 혁신력이었다.


이 패턴은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

권위 질서(주나라 봉건제) → 분권 질서(전국시대 경쟁체제)

승자: 적응력을 보인 진나라, 제나라, 초나라 등 신흥 세력


15-17세기: 근세 전환기

중세 질서(봉건제, 교회 권위) → 근대 질서(민족국가, 상업자본주의)

승자: 영국, 네덜란드 등 신흥 해양 세력


20-21세기: 현재 전환기

산업 시대 질서(하드파워 중심) → 정보 시대 질서(소프트파워 중심)

승자: 아직 결정되지 않음. 바로 지금이 그 순간.


한국은 세 번째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환기 승리자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이 가진 전환기 승리의 조건들


18주간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전환기 승리자들의 공통 패턴을 발견했다:


첫째, 기존 질서의 수혜자가 아니었다. 진나라는 중원 변방 국가였고, 영국은 유럽 변방 섬나라였다. 기존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서구 중심 질서에서는 변방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이 가능했다. K-팝이 서구 음악의 틀을 깨뜨린 것,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공식을 무시한 것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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