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해체되는 질서, 남는 것은 주권뿐
▌2016년 7월 8일 사드(THAAD) 배치가 결정됐을 때, 중국의 보복은 즉각적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사업이 차례로 막혔다. 롯데마트 99개 매장이 '소방점검'을 이유로 영업정지됐고, 현대차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64% 급감했다. 한한령(限韓令)으로 한류 콘텐츠도 전면 금지됐다. 반면 미국은 "동맹국의 당연한 선택"이라며 환영했다. 한국이 안보를 위해 미국을 택하자,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징벌을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강대국들 사이에서 진정한 독립적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현대 국제정치에서 "주권"만큼 남용되는 개념도 드물다.
유엔헌장 제2조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평등"을 명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면 다른 나라 은행들도 따라야 한다. 중국이 경제 보복을 하면 해당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난다. 법적 주권과 실질적 주권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완전한 주권국가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미동맹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에 제약이 있고, 대중 경제의존도 때문에 미국과의 협력에도 한계가 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5%에 달한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다. 반면 한미 교역 규모는 전체의 14.8%다.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이중 구조가 고착화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주권에 대한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권을 "남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한다. 하지만 진짜 주권은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도 똑같은 고민이 있었다. 주왕실의 권위가 무너진 후 각 제후국들은 모두 독립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진정한 주권을 확립했고, 일부는 겉만 독립적인 허상에 빠졌다.
춘추전국시대에서 가장 완벽한 주권을 구현한 나라는 진나라였다.
진나라는 처음부터 독자적 길을 걸었다. 중원의 예법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한비자》에 따르면 진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상앙의 변법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356년 시작된 이 개혁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엎었다. 혈연 중심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능력 중심의 관료제를 도입했다. 토지를 사유화하고 상업을 장려했다.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맹렬한 비판이었다. 제나라는 "야만적"이라고 했고, 초나라는 "예의를 모른다"라고 했다. 심지어 같은 진나라 내부에서도 "조상의 법을 버리는 것"이라며 반발이 컸다.
하지만 진나라는 결과로 답했다. 변법 실시 20년 만에 진나라는 중원 최강국이 됐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비판해도 진나라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었다. 진나라는 150년간 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왕이 바뀌어도, 신하가 바뀌어도, 외부 압력이 있어도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의 목소리] "진나라는 천하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결과 천하를 얻었다. 이것이 진정한 주권이다." - 《사기》
반대로 겉으로만 독립적이었던 나라들도 있었다.
송나라가 대표적이다. 송나라는 춘추시대 내내 "우리는 주나라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들의 간섭을 거부하며 독자 노선을 고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송나라의 문제는 현실 인식 부족이었다. 자신들의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권위만 주장했다. 군사력도 약하고 경제력도 부족한데 "우리는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결국 송나라는 끊임없는 침입을 당했다. 진나라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초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고, 제나라에게 외교적으로 무시당했다. 주권은 외쳤지만 실제로는 가장 종속적인 나라가 됐다.
정나라도 비슷했다. 정나라는 "중원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내세우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우리는 중립국"이라며 모든 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시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강대국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진나라가 압박하면 진나라 편에 서고, 초나라가 위협하면 초나라에 붙었다. 주체적 판단 없이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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