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해체되는 질서, 남는 것은 주권뿐
▌2024년 김정은이 "대한민국은 완전한 적대국"이라고 선언하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헌법에서 "통일" 조항을 삭제했고, 남북연결도로를 폭파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6년, 남북 교역량은 2018년 2억 7천만 달러에서 2024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일부가 매년 발표하는 분단비용은 GDP의 1.2%에 달한다. 연간 25조 원이 넘는 돈이 분단 때문에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연 분단이 한국에게 짐이기만 할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이 오히려 외교적 자산이 될 수는 없을까.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도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나뉜 사례가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생존했을까.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분단국가라는 점에서는 과거 동서독, 남북베트남과 비슷하다. 하지만 독일은 1990년 통일됐고, 베트남은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흡수 통일했다. 70년 넘게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더 특별한 것은 분단선의 성격이다. 휴전선은 단순한 국경이 아니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념으로 나뉜 경계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상황이다.
이런 특수성은 엄청난 외교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4강이 모두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한다. 한반도가 곧 동아시아 지정학의 중심인 셈이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북한과 수교한 나라는 164개국이다. 한국과 수교한 나라는 191개국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남북한과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한국 외교의 특별한 레버리지가 여기에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당사자이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면 반드시 한국을 거쳐야 한다.
춘추전국시대에도 하나였던 나라가 여럿으로 나뉜 사례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나라의 분열이다.
기원전 453년, 진나라는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로 분열됐다. 이른바 "삼가분진"(三家分晉)" 사건이다. 원래 하나였던 진나라 안에서 세 집안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면서 아예 나라가 쪼개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뿌리를 가진 세 나라의 서로 다른 선택이었다.
한나라는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을 택했다.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었지만, 뛰어난 외교술로 버텼다. 큰 나라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생존을 도모했다. 《전국책》에는 "한나라는 약하지만 지혜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나라는 군사 강국 노선을 택했다. 북방 기마민족과 접경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사력이 강해졌다. 무령왕의 기병 도입으로 동아시아 최강의 기마군단을 만들었다. "호복기사"(胡服騎射)라고 불리는 기병 전술의 혁신이었다.
위나라는 경제 발전 전략을 택했다. 중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켰다. 한때 가장 부유한 나라로 평가받았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나라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의 목소리] "진나라가 셋으로 나뉘었지만, 각각이 하나일 때보다 더 강해졌다. 분열이 반드시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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