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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말의 전쟁 17화

말의 전쟁

제4부 해체되는 질서, 남는 것은 주권뿐

by 한시을

16화 기후위기와 생존외교: 환경이 바꾼 외교 지형


▌2024년 1월 1일,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본격 시행됐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사실상 관세를 매기는 제도였다. 한국 철강업체들은 즉시 타격을 받았다. 포스코는 유럽 수출용 제품의 탄소 배출량 인증서를 새로 준비해야 했고, 현대제철은 생산 공정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데 수천억 원을 투자했다. 환경 규제가 무역 장벽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25년 미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친환경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새로운 외교 전쟁터가 된 것이다.


환경이 만든 새로운 권력 지도


21세기 외교에서 가장 급속하게 부상하는 의제가 기후변화다.


과거에는 환경 문제가 '부차적인' 이슈였다. 경제 성장이 우선이고, 안보가 중요하고, 환경은 여유가 있을 때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의 문제가 됐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48도 상승했다. 1.5도 목표까지 0.02도밖에 남지 않았다. 티핑포인트가 코앞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파급효과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청정에너지 투자가 1조 8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화석연료 투자의 2배 규모다. 돈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가 새로운 권력 지도를 만들고 있다. 석유가 20세기 지정학을 지배했다면, 21세기는 리튬, 코발트, 희토류가 새로운 석유가 되고 있다. 배터리 소재를 장악한 나라가 미래 패권을 쥘 수 있다.


한국도 이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합계 3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철강, 석유화학 같은 전통 주력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2,500년 전에도 있었던 기후 혁명


기후변화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경, 중국 북부에 소빙기가 찾아왔다. 기온이 2-3도 떨어지면서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다. 《춘추》에는 이 시기 각국에서 기근과 재해가 연달아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똑같이 피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적응력이 뛰어난 나라들은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초나라가 대표적이다. 초나라는 남방에 위치해 기후변화의 직접적 타격이 적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농업 기술을 적극 도입한 것이다. 논농사를 확대하고, 새로운 품종의 벼를 들여와 생산량을 늘렸다.


반면 제나라는 전통적 방식에 안주했다. "우리는 수천 년간 밭농사를 해왔다"며 변화를 거부했다. 결과는? 기근이 닥치면서 국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더 흥미로운 것은 기후 변화가 만든 새로운 동맹이다. 가뭄이 심했던 북방 국가들은 남방 국가들과 식량 교역을 위한 협력을 강화했다. 기존의 정치적 적대관계를 넘어선 생존 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관자》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천재지변이 닥치면 원수도 친구가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철기 혁명과 에너지 전환의 유사성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철기 혁명이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철기 기술이 중원에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문명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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