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통과 무사유가 만든 결과

제1부 AJIM 모델의 탄생

by 한시을

3장. 기존 학계가 왜 두 사람을 통합하지 못했는가


2007년, 필립 짐바르도는 『루시퍼 이펙트』를 출간했다. 책 곳곳에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했다.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언급하며 아이히만 재판을 논의했다. 심지어 아렌트의 개념을 뒤집어 "영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heroism)"을 제안했다.¹ 짐바르도는 분명 아렌트를 알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아렌트의 통찰과 명백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두 이론을 체계적으로 통합하지 않았는가?


짐바르도가 아렌트를 인용한 방식

짐바르도는 2006년 미국심리학회(APS) 연례 학술대회에서 강연했다. 제목은 "루시퍼 이펙트: 선한 사람들이 어떻게 악해지는가". 그는 아부 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건을 분석하며 아렌트를 언급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으로 악행자가 우리와 똑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덧붙여야 했던 것은, 악행자가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만 변형된다는 점이다."²

이 발언은 중요하다. 짐바르도는 아렌트의 통찰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한계를 지적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평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짐바르도가 보기에 아렌트는 상황의 힘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왜" 평범한 사람이 악해지는가? 상황 때문이다. 시스템 때문이다. 나쁜 통 때문이다.

짐바르도는 아렌트를 보완하려 했다. 하지만 통합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황"을 강조했지만, 아렌트의 핵심 개념인 "무사유(thoughtlessness)"를 자신의 이론에 체계적으로 편입하지 않았다. 왜?


학문적 분과의 장벽

첫 번째 이유는 학문적 분과의 장벽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철학자였다. 그녀의 작업은 철학, 역사, 정치이론의 영역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재판 보고서였지만, 동시에 철학적 성찰이었다. 그녀는 실험을 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았다. 개념을 정의하고, 사유하고, 판단했다.

필립 짐바르도는 실험심리학자였다. 그의 작업은 실험 설계, 데이터 수집, 통계 분석의 영역이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통제된 조건 하에서 변수를 조작하고 행동을 관찰하는 전형적인 심리학 실험이었다. 그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두 학문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아렌트는 "사유", "판단", "행위", "전체주의" 같은 철학적 용어를 사용했다. 짐바르도는 "변수", "조건", "행동", "통제군" 같은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했다. 철학자들은 짐바르도의 실험을 "환원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심리학자들은 아렌트의 분석을 "검증 불가능"하다고 여겼다.³

이 장벽은 단순히 용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학문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렌트는 "악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짐바르도는 "사람들이 언제 악하게 행동하는가?"를 물었다. 아렌트는 본질을 탐구했다. 짐바르도는 조건을 분석했다. 두 질문은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아렌트 연구의 한계: 구조를 간과하다

아렌트 연구자들은 "무사유"에 집중했다. 2013년 Jacob Schiff는 「무사유의 다양성과 사유의 한계」라는 논문에서 아렌트의 무사유 개념을 정교화했다. 그는 무사유가 단순히 "생각하지 않음"이 아니라,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 양심의 실패로서의 무사유. 둘째, 이데올로기로서의 무사유. 셋째, 일상적 조건으로서의 무사유.⁴

2024년 한 비즈니스 윤리 저널 논문은 아렌트의 무사유 개념을 현대 조직의 부정행위 분석에 적용했다. 저자는 관료제, 사회화, 의미 부여 과정이 어떻게 무사유를 생산하는지 분석했다.⁵ 이런 연구들은 아렌트의 통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훌륭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구조"를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무사유가 "왜" 발생하는가? 개인의 성향 때문인가? 아니다. 아렌트 자신도 이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시스템이다. 조직이다. 나쁜 통이다. 하지만 아렌트 연구자들은 이 "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유의 복원"을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통의 개혁"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다.

아렌트 자신도 구조를 논의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그녀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구조적 조건을 분석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주로 아이히만 개인의 "무사유"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는 나치 체제가 무사유를 강제했다고 언급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독자들은 아렌트가 "개인의 사유 능력"만을 강조한다고 오해했다.


짐바르도 연구의 한계: 사유를 간과하다

짐바르도 연구자들은 "상황"에 집중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상황의 힘"을 증명하는 강력한 사례였다. 평범한 대학생들이 며칠 만에 가학적 교도관과 무기력한 죄수로 변했다. 이는 성향론(dispositionalism)에 대한 결정적 반박이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평범한 사람을 나쁘게 만든다.

하지만 짐바르도의 이론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었다. 같은 나쁜 통 속에서도 왜 어떤 사람은 저항하는가? 스탠퍼드 실험에서도 모든 교도관이 가학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학대에 가담하지 않았다. 일부는 심지어 죄수들을 도왔다.⁶ 나치 독일에서도 모두가 아이히만이 된 것은 아니다. 오스카 쉰들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짐바르도는 이를 인정했다. 그래서 2006년 "영웅의 평범성"을 제안했다.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다.⁷ 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는가? 짐바르도는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상황 저항 훈련"을 제안했지만, 이는 실용적 해법이지 이론적 설명이 아니었다.

답은 명백하다. "사유"다. 쉰들러는 나쁜 통 속에서도 사유했다. 그는 유대인을 "수송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봤다. 그는 나치의 명령이 정당한지 질문했다. 그는 생각했다. 바로 이 "사유"가 그를 BT(나쁜 통 × 사유) 유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짐바르도는 "사유"를 자신의 이론에 체계적으로 통합하지 않았다. 그는 아렌트를 인용했지만, 아렌트의 핵심 개념인 "무사유"를 변수로 포함하지 않았다.


통합 시도의 부재

그렇다면 다른 학자들은 어땠는가? 아렌트와 짐바르도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는가? 아니다.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체계적 통합은 없었다.

2020년 Richard Morehouse는 「한나 아렌트를 읽으며 사회심리학을 성찰하다」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아렌트의 철학과 밀그램, 짐바르도의 실험을 함께 논의했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아이히만이 자동기계처럼 정보를 전달했고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⁸ 그는 아렌트와 사회심리학을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접근은 "병렬적"이었다.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짐바르도는 저렇게 말했다. 둘은 비슷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악 = 구조 × 무사유" 같은 공식이 있는가? BN, BT, GN, GT 같은 유형론이 있는가? 없었다. 단지 두 이론을 나란히 놓았을 뿐이다.

2020년 Stephen Scott-Bottoms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재해석하며 아렌트를 인용했다. "에버렛 휴즈(Everett Hughes)는 1964년 논문에서 '선한 사람과 더러운 일'을 다루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다. 휴즈는 SS의 행위를 '세계가 아는 가장 거대하고 극적인 사회적 더러운 일'이라고 불렀다."⁹

이 역시 "언급" 수준이었다. 아렌트와 짐바르도가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는 지적. 하지만 두 이론을 "하나의 모델"로 통합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통합의 열쇠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합의 열쇠: 무사유를 변수로

왜 통합이 안 됐는가? 핵심 이유는 "무사유"를 변수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바르도는 "상황"을 변수로 다뤘다. 좋은 상황 vs 나쁜 상황. 이것이 그의 독립변수였다. 종속변수는 "행동"이었다. 선한 행동 vs 악한 행동. 간단한 인과 모델이었다. 나쁜 상황 → 악한 행동.

하지만 이 모델은 불완전했다. 왜냐하면 같은 나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악해지고, 어떤 이는 저항했다. 짐바르도는 이를 "개인차"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개인차가 뭔가? 성향인가? 그렇다면 성향론으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답은 "사유"다. 사유를 두 번째 변수로 추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2×2 매트릭스가 만들어진다.

이 매트릭스는 짐바르도의 한계를 해결한다. 왜 쉰들러는 나쁜 통 속에서도 영웅이 됐는가? 사유했기 때문이다(BT). 왜 아이히만은 악이 됐는가?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BN). 이 매트릭스는 동시에 아렌트의 한계도 해결한다. 왜 무사유가 발생하는가? 나쁜 통 때문이다. 무사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하지만 기존 학계는 이 통합을 하지 못했다. 왜? 첫째, 아렌트 연구자들은 심리학 실험에 관심이 없었다. 둘째, 짐바르도 연구자들은 철학적 개념을 변수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셋째, 학문적 분과가 너무 견고했다. 철학자는 철학 저널에, 심리학자는 심리학 저널에 발표했다. 두 세계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왜 이제야 통합이 가능한가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계엄이 선포됐다. 이 사건은 아렌트와 짐바르도의 통합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설명하려면 두 이론이 모두 필요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왜 계엄을 선포했는가? 짐바르도로만 설명하면 검찰이라는 "나쁜 통" 때문이다. 상명하복, 절차주의, 효율 중심. 이 시스템이 그를 만들었다. 맞다. 하지만 불충분하다. 같은 검찰 출신 중에도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 내부 고발자가 있다. 왜?

아렌트로만 설명하면 윤석열의 "무사유" 때문이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절차만 따랐다. "법과 원칙"만 반복했다. 맞다. 하지만 불충분하다. 왜 그는 무사유하게 됐는가? 단지 개인의 결함인가?

둘을 통합해야 설명이 완성된다. 윤석열은 BN 유형이다. 나쁜 통(검찰조직) × 무사유(절차적 언어). 이 곱셈이 그를 만들었다. 이것이 AJIM 모델이다.


아렌트–짐바르도 통합 모델(AJIM: AJ Integrated Model)의 혁신: 곱셈 공식

AJIM 모델의 핵심 혁신은 곱셈 공식이다. 악 = 구조 × 무사유. 왜 곱셈인가? 왜 덧셈이 아닌가?

덧셈이라면: 악 = 구조 + 무사유. 이렇게 되면 구조와 무사유가 독립적으로 악에 기여한다. 구조가 나쁘면 악이 증가하고, 무사유가 심하면 악이 증가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좋은 통 속의 무사유(GN)는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부적응자일 뿐이다.

곱셈이라면: 악 = 구조 × 무사유. 이렇게 되면 둘 중 하나라도 0이면 악은 발생하지 않는다. 좋은 통(G) × 무사유(N) = 부적응(GN). 나쁜 통(B) × 사유(T) = 저항(BT). 오직 나쁜 통(B) × 무사유(N)일 때만 악(BN)이 발생한다.

이 공식은 새롭다. 짐바르도에게도 없었고, 아렌트에게도 없었다. 이것이 AJIM의 기여다.


왜 처음 시도인가

그렇다면 AJIM은 정말 "처음 시도"인가? 과장 아닌가? 검증해 보자.

첫째, 짐바르도가 아렌트를 인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무사유"를 변수로 통합하지 않았다. "영웅의 평범성"을 제안했지만, 이는 "사유"의 체계적 분석이 아니었다.

둘째, 아렌트 연구자들이 짐바르도를 언급한 것도 사실이다. Morehouse(2020), Scott-Bottoms(2020) 등. 하지만 이들은 두 이론을 "병렬적으로" 다뤘을 뿐, 통합 모델을 제시하지 않았다.

셋째, 2×2 매트릭스 같은 유형론은 어디에도 없다. BN, BT, GN, GT. 이 네 가지 유형을 체계화한 연구는 없다.

넷째, "악 = 구조 × 무사유" 같은 곱셈 공식도 없다. 대부분의 연구는 "구조 또는 무사유"로 접근했다. "구조 곱하기 무사유"로 접근한 연구는 없다.

따라서 AJIM은 처음 시도가 맞다. 과장이 아니다. 물론 선행 연구들이 있었다. 아렌트와 짐바르도를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체계적 통합은 없었다. AJIM은 그 공백을 채운다.


통합의 의미

AJIM 모델이 왜 중요한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이론적 완결성. 짐바르도는 "왜 쉰들러가 등장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아렌트는 "왜 무사유가 발생하는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AJIM은 둘을 통합해 완결된 설명을 제공한다.

둘째, 실천적 유용성. 악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짐바르도는 "나쁜 통을 개혁하라"고 말한다(Macro). 아렌트는 "사유를 회복하라"고 말한다(Micro). AJIM은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쁜 통을 개혁하지 않으면, 사유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유를 회복하지 않으면, 구조 개혁만으로도 부족하다. 둘 다 해야 한다.

한국 현대사가 이를 증명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확립됐다. 투표, 선거, 삼권분립. 하지만 "나쁜 통"은 청산되지 않았다. 검찰, 경찰, 군대, 관료제. 이 시스템은 여전히 상명하복, 절차주의, 무사유를 강제했다. 그 결과 2024년, 윤석열이 탄생했다. AJIM 없이는 이를 설명할 수 없다. AJIM 없이는 이를 예방할 수 없다.


참고문헌

1. Philip Zimbardo, 『루시퍼 이펙트』, 2007, p.5

2. Philip Zimbardo, APS 18th Annual Convention 강연, 2006.5

3. Stephen Reicher & Alexander Haslam, "Rethinking the psychology of tyranny",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2006, p.55-63

4. Jacob Schiff, "The varieties of thoughtlessness and the limits of thinking",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Theory, 2013, p.99-115

5. "The Banality of Organizational Wrongdoing", Journal of Business Ethics, 2024

6. Philip Zimbardo, 『루시퍼 이펙트』, 2007, p.208-215

7. Philip Zimbardo & Zeno Franco, "The Banality of Heroism", Greater Good Magazine, 2006

8. Richard Morehouse, "Reflections on Social Psychology while reading Hannah Arendt",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logical Research and Review, 2020

9. Stephen Scott-Bottoms, "The dirty work of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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