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AJIM 모델의 탄생
1971년,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끝났다. 평범한 대학생들이 며칠 만에 가학적 교도관과 무기력한 죄수로 변했다. 짐바르도는 결론을 내렸다. "나쁜 통이 선한 사람을 악으로 바꾼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모든 교도관이 가학적이 된 것은 아니었다. 12명의 교도관 중 일부는 학대에 가담하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죄수들을 몰래 도왔다.¹ 짐바르도는 이를 인정했지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왜 같은 나쁜 통 속에서 어떤 사람은 악이 되고, 어떤 사람은 저항하는가?
짐바르도의 한계: 쉰들러 문제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했다. 오스카 쉰들러. 나치당원이자 독일 사업가. 전쟁 초기 돈을 벌기 위해 폴란드 크라쿠프에 온 기회주의자. 그가 1,200명의 유대인을 구했다. 짐바르도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됐다. 쉰들러는 나쁜 통(나치 체제) 속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도 악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 됐다. 왜?
오스카 쉰들러는 1908년 4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츠비타우(현 체코 스비타비)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독일계 가톨릭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농기계 공장을 운영했다. 쉰들러는 공학을 공부했지만 가업을 잇지 않았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사업가, 운전학교 강사, 심지어 정부 재산 판매상.²
1935년, 쉰들러는 친나치 정당인 주데텐 독일당(Sudetendeutsche Partei)에 가입했다. 1936년, 그는 독일 군사정보국 압베어(Abwehr)의 첩보원이 됐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철도와 군 이동 정보를 수집했다. 1938년 7월, 체코 방첩부대가 그를 체포했다. 간첩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몇 달 후 뮌헨 협정으로 주데텐란트가 독일에 합병되면서 석방됐다.³
1939년 2월, 쉰들러는 나치당 정식 당원이 됐다.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쉰들러는 크라쿠프로 갔다. 돈을 벌 기회를 찾았다. 그는 유대인 소유였던 법랑 공장을 인수했다. 독일 법랑 제품 공장(Deutsche Emaillewaren-Fabrik, 줄여서 Emalia)이라고 이름 붙였다. 유대인 노동자를 고용했다. 왜? 싸기 때문이었다. 나치 점령 정권이 유대인 임금을 폴란드인보다 낮게 책정했다.⁴
이 시점까지 쉰들러는 전형적인 전쟁 기회주의자였다. 나치당원이었고, 첩보원이었으며, 돈을 좋아했다. 음주와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다. 도덕적 인물이 아니었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기록은 이렇게 쓴다. "쉰들러는 나치 정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저항을 결코 발전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무력한 유대인 인구에 대한 무의미한 잔혹함을 보며 점차 혐오와 공포를 느꼈고, 이것이 기묘한 변화를 일으켰다."⁵
변화의 순간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가? 1943년 3월, 크라쿠프 게토 청산. 나치는 게토를 해체하고 유대인들을 플라쇼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쉰들러는 이 광경을 목격했다. SS 대원들이 거리에서 유대인을 쏘는 것을.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것을. 노인을 곤봉으로 때리는 것을.
역사학자들은 이 순간이 쉰들러의 전환점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유대인을 더 이상 "싼 노동력"으로 보지 않게 됐다. 그는 그들을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 기록은 쓴다. "전쟁이 계속되고 쉰들러가 노동자들과 개인적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그는 개인적 변화를 겪었다."⁶
쉰들러는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공장을 플라쇼프 수용소의 공식 하위수용소로 만들었다. 약 500명의 유대인을 수용했다. 위생적 환경, 충분한 음식. 나치 관료들에게 뇌물을 줬다. 고가의 사치품, 암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품들. 플라쇼프 사령관 아몬 괴트(Amon Göth)에게도 뇌물을 줬다. 괴트는 악명 높은 학살자였지만, 쉰들러는 그와 거래했다.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⁷
1944년 7월, 독일이 전쟁에서 지기 시작했다. SS는 동쪽 수용소들을 폐쇄하고 죄수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기 시작했다. 쉰들러의 노동자들도 위험에 처했다. 쉰들러는 괴트를 설득했다. 공장을 체코슬로바키아 브뤼넨리츠로 이전하겠다고. 노동자들을 데려가겠다고. 괴트가 허락했다.
쉰들러와 그의 직원들은 명단을 작성했다. 1,100명의 이름. 남자, 여자, 아이들. 심지어 노인과 장애인도 포함시켰다. "필수 기술자와 금속공"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다. 실수로 여성 노동자들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을 때, 쉰들러는 막대한 뇌물을 써서 그들을 되찾아왔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⁸
브뤼넨리츠 공장은 군수품 공장으로 등록됐다. 전쟁 수행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쉰들러는 의도적으로 불량품을 생산했다. 공장은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쉰들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동자들을 살리는 데만 집중했다. 1945년 5월 8일, 전쟁이 끝났다. 쉰들러는 파산했지만, 1,098명의 유대인이 살아남았다.⁹
왜 쉰들러는 저항했는가?
짐바르도의 이론으로는 쉰들러를 설명할 수 없다. 쉰들러는 나쁜 통 속에 있었다. 나치 체제. 홀로코스트. 하지만 그는 악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항했다. 짐바르도는 2006년 "영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heroism)"을 제안했다. "평범한 사람의 영웅적 행동은 평생 영웅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영웅들보다 더 흔하다."¹⁰ 하지만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이름 붙이기일 뿐이다. "왜"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는가?
답은 간단하다. 사유. 쉰들러는 생각했다. 그는 크라쿠프 게토 청산을 목격하고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옳은가?" "저들은 정말 적인가?" "나는 이것에 동참해야 하는가?" 그는 나치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대인 문제", "최종 해결", "특수 처리". 그는 이 언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봤다. 학살.
쉰들러는 유대인을 "수송 대상"이나 "노동 자원"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얼굴을 봤다. 이름을 기억했다. 아이히만은 600만 명을 "통계"로 봤다. 쉰들러는 1,200명을 "사람"으로 봤다. 이것이 사유다. 이것이 쉰들러를 BT 유형(나쁜 통 × 사유)으로 만들었다.
짐바르도는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체계화하지 못했다. 그는 "상황"만 강조했다. "사유"를 변수로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쉰들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렌트의 한계: 구조를 간과하다
1963년,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했다. 그녀는 "무사유"를 발견했다. 아이히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악이 됐다. 하지만 "왜" 아이히만은 생각하지 않았는가? 아렌트는 이렇게 썼다. "그는 진부한 표현만을 사용했다. 그의 언어는 그에게 현실과의 접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¹¹
하지만 더 깊은 질문이 남는다. 왜 그의 언어는 진부했는가? 왜 그는 클리셰만 사용했는가? 개인의 결함인가? 아니다. 아렌트 자신도 이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체제다. 나치 체제가 무사유를 강제했다. 상급자의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질문하는 것은 불충이었다. 복종만이 덕목이었다. 생각하는 관료는 위험했다. 생각하지 않는 관료만이 승진했다.
아렌트는 이를 알고 있었다.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그녀는 나치와 스탈린 체제의 구조를 분석했다. 관료제, 선전, 테러.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주로 아이히만 개인의 무사유에 초점을 맞췄다. 체제와 무사유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아렌트를 오해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변호한다." "그녀는 나치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오독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경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더 두려운 진실을 말하려 했다. 평범한 사람도 조건만 맞으면 악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은 구조다. 시스템이다. 나쁜 통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이 "통"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독자들은 아렌트가 "개인의 사유 능력"만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하면 악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렌트의 의도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렌트의 서술 전략이었다. 그녀는 철학자였기 때문에 "개념"에 집중했다. "무사유"라는 개념. 하지만 "통"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덜 전개했다.
두 이론의 보완 관계
짐바르도와 아렌트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짐바르도는 "통"을 발견했지만 "사유"를 놓쳤다. 아렌트는 "사유"를 발견했지만 "통"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둘을 통합하면 완전한 설명이 나온다.
악 = 구조(통) × 무사유
이 공식이 쉰들러 문제를 해결한다. 쉰들러는 나쁜 통(나치 체제)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유했다. 따라서 그는 BT 유형이 됐다. 나쁜 통(B) × 사유(T) = 저항/영웅.
이 공식이 아이히만 문제도 해결한다. 아이히만은 왜 무사유했는가? 나쁜 통 때문이다. 나치 체제가 무사유를 강제했다. 따라서 그는 BN 유형이 됐다. 나쁜 통(B) × 무사유(N) = 악.
2×2 매트릭스의 완성
이제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
BN (나쁜 통 × 무사유): 아이히만. 나치 체제 속에서 생각을 멈춘 관료. 절차만 따르고, 명령만 수행하고, 통계만 작성했다. 600만 명을 죽였지만 단 한 번도 사유하지 않았다. 짐바르도의 교도관들도 여기 속한다. 며칠 만에 가학적이 된 대학생들. 한국의 윤석열도 여기 속한다. 검찰조직(나쁜 통) × 절차적 언어(무사유).
BT (나쁜 통 × 사유): 쉰들러. 나치 체제 속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은 사람. 유대인을 인간으로 봤다. 명령이 정당한지 질문했다. 저항했다. 1,200명을 구했다. 스탠퍼드 실험의 몇몇 교도관도 여기 속한다. 학대에 가담하지 않은 이들.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가들도 여기 속한다. 독재(나쁜 통) 속에서도 사유하며 저항한 사람들.
GN (좋은 통 × 무사유): 일상적 부적응자. 민주 사회(좋은 통) 속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수동적 동조. 무비판적 순응. 악은 아니지만 선도 아니다. 단지 흘러간다. 짐바르도가 말한 "평범한 선"도 여기 속한다. 좋은 시스템이 이들을 선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스템이 나쁘면? 이들은 즉시 BN으로 전환된다.
GT (좋은 통 × 사유): 참적응자. 민주 사회(좋은 통) 속에서 사유하는 시민. 판단하고, 질문하고, 저항하고, 참여한다. 세월호 승무원 중 끝까지 승객을 구한 사람들. 재난 자원봉사자들. 비판적 지식인들. 이들이 민주주의의 토대다.
핵심 통찰
이 매트릭스의 핵심 통찰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째, 악은 성향이 아니라 조건의 산물이다. 아이히만도, 쉰들러도, 스탠퍼드 대학생들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차이는 통과 사유의 조합이었다.
둘째, 같은 통 속에서도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사유가 있으면 저항이 가능하다. 짐바르도는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AJIM은 설명한다.
셋째, 무사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아렌트는 이를 암시했지만 명확히 하지 않았다. AJIM은 명확히 한다.
한국 현대사의 BT 유형들
한국 현대사에도 BT 유형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해인사 폭격 명령. 미군 조종사 김영환(Kim Young-hwan, 가명)은 명령을 받았다. "해인사를 폭격하라. 북한군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800년 된 문화재다. 파괴하면 안 된다." 그는 명령을 거부했다. 상관에게 보고했다. "해인사에 적군이 없습니다." 해인사는 살아남았다. 그는 BT 유형이었다. 나쁜 통(전쟁) × 사유(문화재 가치 판단).¹²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 중 일부는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시민들에게 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처벌받았다. 좌천됐다. 하지만 그들은 BT 유형이었다. 나쁜 통(군사독재) × 사유(시민을 인간으로 봄).
2014년 4월 세월호. 승무원 중 일부는 끝까지 학생들을 구했다. 박지영 승무원. 단원고 학생들을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시켰다. 본인은 희생됐다. 그녀는 GT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나쁜 통(과적, 불법 증축) 속에서 사유하며 저항했다는 점에서 BT 요소도 있었다.
짐바르도의 늦은 깨달음
2007년, 짐바르도는 『루시퍼 이펙트』 16장에서 영웅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저항한 사람들을 언급했다. 크리스티나 마슬락. 그의 여자친구이자 심리학자. 그녀가 실험을 보고 소리쳤다. "당신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그녀의 저항이 실험을 중단시켰다. 짐바르도는 썼다. "그녀는 영웅이었다. 나쁜 통 속에서도 저항했다."¹³
하지만 짐바르도는 여전히 "왜" 그녀가 저항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영웅 훈련"을 제안했다.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자. 하지만 이것은 해법이지 설명이 아니다. "왜" 어떤 사람은 훈련 없이도 저항하는가? 사유다. 마슬락은 생각했다. "이것은 실험이 아니다. 이것은 학대다." 그녀는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을 봤다. 이것이 사유다.
아렌트의 놓친 연결고리
아렌트는 1971년 에세이 「사유와 도덕적 고려」에서 무사유를 더 전개했다. "악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생각은 위험하다. 생각은 기존의 모든 확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전체주의 체제는 생각을 금지한다."¹⁴
아렌트는 체제와 무사유의 관계를 보았다. 하지만 이를 "통(barrel)"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하지 않았다. 만약 아렌트가 짐바르도의 실험을 알았다면? 만약 그녀가 2×2 매트릭스를 만들었다면? 아마 AJIM 모델과 비슷한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1975년 사망했다.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는 2007년 출간됐다. 두 사람은 시간적으로 만나지 못했다.
AJIM의 기여
AJIM 모델은 두 거장의 구멍을 메운다. 짐바르도의 쉰들러 문제를 해결한다. 아렌트의 구조 부족을 보완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제공한다. 2×2 매트릭스. 악 = 구조 × 무사유. BN, BT, GN, GT.
이것이 윤석열을 설명한다. 그는 BN 유형이다. 검찰조직(나쁜 통) × 절차적 언어(무사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설명한다. 1949년 반민특위 해체 이후 형성된 나쁜 통이 75년간 작동하며 BN 유형을 대량 생산했다. 이것이 해법을 제시한다. 나쁜 통을 개혁하고(Macro), 사유를 회복하라(Micro). 둘 다 필요하다.
참고문헌
1. Philip Zimbardo, 『루시퍼 이펙트』, 2007, p.208-215
2. Britannica, "Oskar Schindler", 2011
3.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Oskar Schindler", Encyclopedia
4. Facing History & Ourselves, "The Life of Oskar Schindler"
5. Yad Vashem, "Oskar and Emilie Schindler", Righteous Among the Nations
6.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Oskar Schindler", Encyclopedia
7. Wikipedia, "Oskar Schindler", 2024
8. Facing History & Ourselves, "The Life of Oskar Schindler"
9. Britannica, "Oskar Schindler", 2011
10. Philip Zimbardo & Zeno Franco, "The Banality of Heroism", Greater Good Magazine, 2006
11.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48
12. 문화재청,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 기록
13. Philip Zimbardo, 『루시퍼 이펙트』, 2007, p.166-171
14. 한나 아렌트, 『사유와 도덕적 고려』, 1971,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