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AJIM 모델의 탄생
심리학계는 100년 넘게 한 질문을 놓고 싸웠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두 진영이 팽팽했다. 성향론자(dispositionalists)와 상황론자(situationalists). 성향론자들은 말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 유전자, 성격, 양육 환경이 악을 결정한다." 상황론자들은 반박했다. "아니다. 상황이 사람을 바꾼다. 평범한 사람도 나쁜 환경에 놓이면 악해진다." 짐바르도는 상황론의 기수였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불완전했다. 그리고 그 불완전성이 윤석열 같은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향론의 논리와 한계
성향론(dispositionalism)은 직관적이다. 히틀러는 악한 사람이었다. 아이히만도 악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결함이 있었다. 유전적 결함일 수도 있다. MAO-A 유전자 같은 "전사 유전자(warrior gene)"가 공격성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다.¹ 성격적 결함일 수도 있다. 심리학의 Big 5 성격 모델에서 낮은 "친화성(agreeableness)"과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 반사회적 행동과 연관된다.²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도 성향을 형성한다.
성향론의 장점은 명확성이다. "마이클은 나쁜 사람이다. 그래서 나쁜 짓을 했다." 간단한 서사. 이해하기 쉬운 설명.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법 체계도 기본적으로 성향론에 기반한다. "그는 살인자다. 그에게 살인자라는 본성이 있다." 그래서 감옥에 보낸다.
하지만 성향론은 치명적 한계가 있다. 첫째, 예측력이 낮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행동을 한다. 같은 성격 유형도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한다. 둘째,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 초기 전쟁 기회주의자였다. 하지만 1943년 이후 영웅이 됐다. 그의 유전자가 바뀌었는가? 성격이 바뀌었는가? 아니다. 그를 둘러싼 상황과 그의 인식이 바뀌었다.
셋째, 대량 학살을 설명하지 못한다. 나치 독일에서 수십만 명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다. 그들이 모두 "악한 성향"을 타고났는가? 독일인에게 특별한 유전자가 있었는가? 아니다. 아렌트가 발견했듯,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평범"했다. 재판 전 심리 평가에서 아이히만은 정상으로 판정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다."³
상황론의 논리와 한계
상황론(situationalism)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필립 짐바르도는 2004년 논문에서 썼다. "나는 반사회적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고,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상황론적 관점을 지지한다. 이 관점은 전통적 성향론적 관점과 대조된다. 악의 내적 결정 요인을 찾는 것은 개인의 성향 안에 악을 위치시킨다."⁴
짐바르도는 명확했다. 악은 사람 안에 있지 않다. 상황 안에 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이를 증명했다. 평범한 대학생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지적이고, 중산층 출신. 심리 검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3일 만에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은 가학적이 됐고, 죄수 역할의 학생들은 무기력해졌다.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상황론의 핵심 개념은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을 무시하고 성향을 과대평가한다.⁵ "그가 화를 냈다. 그는 공격적 성격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화를 냈다. 상사가 부당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상황론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상황론의 장점은 변화 가능성이다. 성향은 고정돼 있지만, 상황은 바꿀 수 있다. 나쁜 통을 좋은 통으로 바꾸면, 사람들의 행동도 바뀐다. 이것이 짐바르도가 "루시퍼 이펙트"로 주장한 것이다. 선한 사람도 나쁜 상황에서 악해진다. 반대로 나쁜 상황을 개선하면 악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론도 치명적 한계가 있다. 왜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는가? 스탠퍼드 실험에서 12명의 교도관 중 모두가 가학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학대에 가담하지 않았다. 몇몇은 죄수들을 몰래 도왔다. 나치 독일에서도 모두가 아이히만이 된 것은 아니었다. 쉰들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상황론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짐바르도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그래서 "영웅의 평범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름 붙이기일 뿐, 설명이 아니었다. "왜" 어떤 사람은 저항하는가? 상황론으로는 답할 수 없다. 만약 상황이 전부라면,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호작용론의 시도와 실패
일부 학자들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상호작용론(interactionism). 악은 성향과 상황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Person × Situation. 2021년 한 연구는 정신질환자의 반복적 폭력을 분석하며 썼다. "성향적 요인(성격)과 상황적 요인(약물 사용, 스트레스) 모두가 폭력과 유의미하게 연관된다."⁶
이것은 진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했다. 왜냐하면 "성향"을 변수에 포함하면 성향론의 문제가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쉰들러는 특별한 성향을 가졌는가? 타고난 선함? 그렇다면 성향론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짐바르도가 그토록 비판했던 논리.
문제는 "성향"을 변수로 쓴다는 것이다. 성향은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타고난 것. 바꿀 수 없는 것. 하지만 쉰들러는 변했다. 스탠퍼드 실험의 일부 교도관은 저항했다. 이것을 "성향"으로 설명하면 순환논리에 빠진다. "그는 저항했다. 왜? 저항하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AJIM 모델의 혁신: 사유를 변수로
AJIM 모델은 다른 접근을 한다. "성향" 대신 "사유(Thinking)"를 변수로 사용한다. 이것이 핵심 혁신이다.
악 = 구조(통, Barrel) × 무사유(Non-thinking)
이 공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사유"는 "성향"과 다르다. 첫째, 사유는 고정되지 않는다. 쉰들러는 1939년에는 사유하지 않았다. 유대인을 "싼 노동력"으로만 봤다. 하지만 1943년 크라쿠프 게토 청산을 목격한 후 사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옳은가?" "저들은 정말 적인가?" 사유는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
둘째, 사유는 관찰 가능하다. 성향은 추상적이다.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유는 언어로 드러난다. 아이히만의 언어를 보라. "명령 수행", "의무 이행", "효율적 업무 처리". 클리셰와 관료적 용어. 이것이 무사유의 증거다. 반대로 쉰들러의 행동을 보라. 유대인을 "사람"으로 봤다. 이름을 기억했다. 이것이 사유의 증거다.
셋째, 사유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나쁜 통은 무사유를 강제한다. 나치 체제는 질문을 금지했다. "왜?"라고 묻는 것은 불충이었다. 복종만이 덕목이었다. 이 시스템이 무사유를 생산했다. 반대로 좋은 통은 사유를 장려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질문을 허용한다. 비판을 보호한다. 이 시스템이 사유를 촉진한다.
왜 곱셈인가?
AJIM 모델의 핵심은 곱셈이다. 왜 덧셈이 아닌가?
만약 덧셈이라면: 악 = 통 + 무사유. 이렇게 되면 통이 나쁘면 악이 증가하고, 무사유가 심하면 악이 증가한다. 독립적으로.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좋은 통 속의 무사유(GN)는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부적응자일 뿐이다. 일상적 무사유. 뉴스를 보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하고,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사람. 나쁘지 않다. 단지 평범할 뿐이다.
곱셈이어야 한다: 악 = 통 × 무사유. 이렇게 되면 둘 중 하나라도 0(또는 양호)이면 악은 발생하지 않는다.
좋은 통(G) × 무사유(N) = GN (부적응자, 악 아님)
나쁜 통(B) × 사유(T) = BT (저항/영웅, 악 아님)
나쁜 통(B) × 무사유(N) = BN (악)
오직 나쁜 통과 무사유가 동시에 존재할 때만 악이 발생한다. 이것이 곱셈의 논리다.
공식의 검증: 아이히만
아이히만으로 검증해 보자.
통: 나치 체제(B). 상명하복, 질문 금지, 복종 보상
사유: 무(N).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 절차적 언어, 클리셰
결과: B × N = BN (악)
아이히만은 600만 명을 죽였다. 하지만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심리 평가에서 정상이었다. 그는 나쁜 통 × 무사유의 산물이었다. 공식이 맞다.
공식의 검증: 쉰들러
쉰들러로 검증해 보자.
통: 나치 체제(B). 같은 시스템
사유: 유(T). 유대인을 인간으로 봄, 명령의 정당성 질문, 저항
결과: B × T = BT (영웅)
쉰들러는 1,200명을 구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전쟁 기회주의자였고, 나치당원이었고, 첩보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유했다. 나쁜 통 × 사유 = 저항. 공식이 맞다.
공식의 검증: 윤석열
윤석열로 검증해 보자.
통: 검찰조직(B). 상명하복, 절차주의, 효율 중심
사유: 무(N). "법과 원칙", 절차적 언어, 피해자 부재
결과: B × N = BN (악)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민주주의 파괴. 하지만 윤석열은 특별히 악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는 검찰조직이라는 나쁜 통 속에서 75년간 무사유를 강제받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공식이 맞다.
악은 조건의 산물이다
AJIM 모델의 핵심 주장: 악은 성향이 아니라 조건의 산물이다. 두 가지 조건의 곱. 나쁜 통 × 무사유.
이것은 성향론을 완전히 거부한다. 아이히만은 "악한 성향"을 타고나지 않았다. 윤석열도 "악한 성향"을 타고나지 않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쁜 통 속에 놓였고, 사유를 멈췄다. 그래서 악이 됐다.
이것은 순진한 상황론도 거부한다. 상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쁜 통 속에서도 사유하면 저항할 수 있다. 쉰들러가 증명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증명했다. 스탠퍼드 실험의 크리스티나 마슬락이 증명했다.
2×2 매트릭스의 완성
이제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이 매트릭스는 모든 것을 설명한다.
GN (좋은 통 × 무사유): 평범한 시민. 민주 사회에서 무비판적으로 살아간다. 뉴스를 보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하고, 수동적으로 동조한다. 악하지 않다. 하지만 선하지도 않다. 단지 흘러간다. 문제는 이들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나쁘게 바뀌면? 이들은 즉시 BN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GT (좋은 통 × 사유): 이상적 민주 시민. 민주 사회에서 사유한다. 판단하고, 질문하고, 비판하고, 참여한다. 세월호 승무원 중 끝까지 학생을 구한 박지영. 재난 자원봉사자들. 비판적 지식인들. 이들이 민주주의의 토대다. 이들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BT (나쁜 통 × 사유): 영웅과 저항자. 독재 속에서도 사유한다. 오스카 쉰들러. 1980년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 2014년 세월호에서 끝까지 승객을 구한 승무원들. 검찰 조직의 내부 고발자들. 이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쁜 통 속에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다.
BN (나쁜 통 × 무사유): 악의 화신. 아이히만. 윤석열. 스탠퍼드 실험의 가학적 교도관들. 세월호 선장. 이들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쁜 통 속에서 사유를 멈춘 사람들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들이 자신을 선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명령을 따랐다." "나는 법을 준수했다." "나는 의무를 다했다."
AJIM의 예측력
AJIM 모델은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한다. 어떤 조건에서 악이 발생하는가?
예측 1: 나쁜 통을 청산하지 않으면, 악은 반복된다. 한국은 1949년 반민특위 해체 이후 나쁜 통을 청산하지 못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2024년 윤석열. 같은 패턴. 왜? 통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예측 2: 사유 교육 없이는 민주주의는 형식에 불과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확립됐다. 투표, 선거, 삼권분립. 하지만 시민들이 사유하지 않으면? GN 유형만 양산된다. 그리고 위기가 오면 이들은 BN으로 전환된다.
예측 3: 나쁜 통 ×무사유 = 필연적 악. 검찰조직이 개혁되지 않고, 사유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윤석열이 나타날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연기론과의 정합성
AJIM 모델은 불교 철학의 연기론(緣起論)과 정합적이다. 연기론의 핵심: "모든 결과는 원인과 조건에서 나온다." 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악은 관계와 조건의 산물이다.
아이히만의 악은 어디서 왔는가? 나치 체제(조건)와 무사유(원인)의 결합에서. 윤석열의 악은 어디서 왔는가? 검찰조직(조건)과 무사유(원인)의 결합에서. 악은 본질이 아니라 조건의 산물이다. 조건이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이것이 희망이다. 성향론은 절망적이다. 나쁜 사람은 고칠 수 없다. 하지만 AJIM은 희망적이다. 나쁜 통을 개혁하고, 사유를 회복하면, 악은 사라진다.
AJIM의 보편성
AJIM 모델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보편적이다. 모든 사회,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
나치 독일: 나쁜 통(전체주의) × 무사유 = 홀로코스트
스탠리 밀그램 실험: 나쁜 통(권위) × 무사유 = 복종
스탠퍼드 감옥 실험: 나쁜 통(교도소) × 무사유 = 학대
아부 그라이브: 나쁜 통(전쟁) × 무사유 = 포로 학대
한국 검찰: 나쁜 통(상명하복) × 무사유 = 윤석열
같은 공식. 다른 사례. AJIM은 보편 법칙이다.
결론: 악은 평범하다, 하지만 필연적이지 않다
아렌트는 말했다. "악은 평범하다." 짐바르도는 말했다. "나쁜 통이 선한 사람을 악으로 바꾼다." 둘 다 옳다. 하지만 불완전하다.
AJIM은 말한다. "악은 나쁜 통과 무사유의 곱이다." 둘 중 하나라도 제거하면 악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쁜 통을 개혁하거나(Macro), 사유를 회복하거나(Micro). 둘 다 하면 더 좋다.
윤석열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다. 그는 1949년부터 형성된 나쁜 통 × 75년간 강제된 무사유의 산물이다. 그를 제거해도 시스템이 그대로면, 또 다른 윤석열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통을 개혁하고 사유를 회복하면, 악의 고리는 끊어진다.
이것이 AJIM 모델의 메시지다. 악은 평범하다. 하지만 필연적이지 않다. 우리에게 선택이 있다.
1. Caspi et al., "Role of Genotype in the Cycle of Violence", Science, 2002
2. Miller & Lynam, "Structural Models of Personality and Their Relation to Antisocial Behavior", Criminology, 2001
3.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p.25
4. Philip Zimbardo, "A situationist perspective on the psychology of evil", 2004
5. Ross, "The Intuitive Psychologist and His Shortcoming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977
6. Harris & Teasdale, "The Prediction of Repeated Violenc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