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국 현대사라는 '나쁜 통'의 생성 과정
1971년 8월 14일. 스탠퍼드 대학교 조던 홀 지하실.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모의 교도소를 만들었다. 24명의 대학생이 모집됐다. 모두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한 중산층 청년들이었다. 무작위로 12명은 교도관 역할을, 12명은 수감자 역할을 맡았다.¹
실험은 2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일당 15달러. 짐바르도는 수감자들에게 현실감을 주기 위해 경찰의 협조를 받았다. 일요일 아침, 경찰이 수감자 역할 학생들의 집에 찾아갔다. 실제로 체포했다. 수갑을 채웠다. 경찰차에 태웠다. 모의 교도소로 데려왔다.²
교도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수감자들은 알몸으로 수색당했다. 소독제를 뿌려졌다. 죄수복을 입었다.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졌다. 이름이 사라졌다. 번호로 불렸다. "8612번." "819번." 개인이 아니었다. 숫자였다.³
교도관들은 어땠는가? 제복을 입었다. 선글라스를 썼다. 경찰봉을 들었다. 이름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간수." 개인성이 사라졌다. 첫날부터 교도관들은 권위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을 통제했다. 규칙을 만들었다. 점호를 시켰다. 벌을 줬다.⁴
둘째 날, 상황이 악화됐다. 일부 수감자가 반항했다. 교도관들은 더 강경해졌다. 독방에 가뒀다.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모욕했다. 셋째 날, 한 수감자가 정신적 붕괴를 보였다. 울었다. 소리쳤다. 실험을 중단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떠날 수 없었다.⁵
6일째 되는 날, 짐바르도의 동료가 실험 중단을 요구했다. 윤리적 문제가 심각했다. 짐바르도는 실험을 중단했다. 2주 계획이 6일 만에 끝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평범한 대학생들이 며칠 만에 잔혹한 교도관과 무기력한 수감자로 변했다.⁶
이것이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었다. 짐바르도는 이 실험으로 유명해졌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심리학의 고전이 됐다. 수십 년간 교과서에 실렸다. 영화가 만들어졌다. 법정에서 인용됐다.⁷
하지만
2018년 6월. 작가 벤 블럼이 폭로했다. "The Lifespan of a Lie."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조작됐다는 것이었다. 정신붕괴를 보인 수감자? 연기였다. 그는 GRE 시험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교도관들이 책을 빼앗아서 일부러 이상행동을 했다고 털어놨다. 가혹행위를 한 교도관? 그들은 짐바르도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었다. 실험 조교가 "더 고압적으로 하라"고 교정했다.⁸
짐바르도는 조작 의혹을 부인했다가, 녹취록이 발견된 후 일부 인정했다. 논란이 됐다. 심리학계가 혼란에 빠졌다. 일부에서는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⁹
그렇다면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무용한가? 그 개념들은 틀린 것인가?
아니다. 실험의 방법론에는 문제가 있었다. 조작이 있었다. 하지만 핵심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탈인간화(dehumanization). 탈개인화(deindividuation). 이 두 개념은 스탠퍼드 실험 이전부터 있었고, 실험 이후에도 수많은 연구로 검증됐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사건에서 실제로 관찰됐다.¹⁰
탈인간화: 대상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탈인간화란 무엇인가?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름을 빼앗는다. 번호를 붙인다. 옷을 벗긴다. 동일한 복장을 입힌다. 개별성을 제거한다. 인격을 부정한다.
스탠퍼드 실험에서 수감자들은 어떻게 탈인간화됐는가? 첫째, 이름 대신 번호. "8612번"은 이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다. 물건이다. 둘째, 죄수복. 모두 똑같은 옷. 개인의 취향이 사라진다. 개성이 사라진다. 셋째, 알몸 수색과 소독. 수치심. 굴욕감. 인간의 존엄성 박탈.¹¹
나치는 유대인을 어떻게 탈인간화했는가? 이름을 빼앗고 번호를 새겼다. 머리를 밀었다. 줄무늬 죄수복을 입혔다. "바퀴벌레", "돼지", "쥐"라고 불렀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해충이었다. 그래서 학살할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 없이.¹²
한국은 어떤가? "종북." "빨갱이." "적폐." "내란세력." 정치적 반대자를 이렇게 불렀다. 인간이 아니라 적이었다. 제거 대상이었다.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공존 불가능한 존재였다. 탈인간화의 언어였다.
탈개인화: 자신의 개별성을 잃는 것
탈개인화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집단의 일부가 된다. 역할에 몰입한다. 개인적 책임감이 사라진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된다.
스탠퍼드 실험에서 교도관들은 어떻게 탈개인화됐는가? 제복. 선글라스. 경찰봉. 이것들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제복을 입으면 개인이 아니다. 교도관이다. 선글라스를 쓰면 얼굴이 가려진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익명성이 생긴다. 경찰봉을 들면 권력이 생긴다. 통제력이 생긴다.¹³
교도관들은 "나는 A대학교 2학년생"이 아니었다. "나는 교도관"이었다. 역할이 정체성을 대체했다. 그래서 가혹행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교도관으로서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이 분산됐다. 익명화됐다.
한국 관료제의 탈개인화
한국 관료제는 어떤가? 검찰. 경찰. 군대. 행정부. 모두 제복 조직이다. 모두 계급 조직이다. 모두 상명하복 조직이다.
경찰은 제복을 입는다. 계급장을 단다. 경위. 경감. 경정. 계급이 이름보다 중요하다. "김철수 경위"가 아니라 "경위님"이다. 개인이 아니라 계급이다. 군대는 더하다.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계급만 중요하다. "이병 김철수"가 아니라 "이병!"이다.¹⁴
공무원은? 제복은 없다. 하지만 호칭이 있다. "과장님." "국장님." "차관님." 이름보다 직급이 먼저다. 직급이 정체성이 된다. "나는 김철수"가 아니라 "나는 과장"이다. 탈개인화됐다.
검찰은 어떤가? 평상시 제복은 없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법복을 입는다. 검은색 법복. 자주색 장식단. 1953년부터 착용됐다.¹⁵ 법복을 입으면 개인 검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검사"다. 국가를 대표한다. 법을 대표한다. 개인의 양심? 중요하지 않다. 검사로서의 의무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호칭이다. "검사님." "부장님." "검사장님." "총장님." 군대와 같다. 이름이 아니라 직급이다. 서열이다. 계급이다. 한 검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검찰에서는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직급으로 부른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도 직급으로 생각하게 된다."¹⁶
제복과 익명성의 심리학
왜 제복이 문제인가? 제복은 익명성을 만든다. 익명성은 책임감을 약화시킨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탈억제 효과(disinhibition effect)"라고 부른다. 억제가 사라진다. 평소 하지 못하던 것을 한다.¹⁷
군복을 입은 군인. 경찰복을 입은 경찰. 법복을 입은 검사. 그들은 개인이 아니다. 국가다. 법이다. 권력이다. 그래서 평소 하지 못하던 것을 한다. 명령한다. 통제한다. 폭력을 행사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서/경찰로서/검사로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12월 3일. 계엄군이 국회에 침입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개인들이 아니었다. 군인들이었다. 제복을 입었다. 계급장을 달았다. 헬멧을 썼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익명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시민을 밀칠 수 있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¹⁸
서열이 만드는 탈개인화
한국 관료제의 또 다른 특징. 서열. 기수. 연차. 나이. 이것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검찰은 사법시험 합격 기수로 서열이 정해진다. 40기는 41기보다 선임이다. 1년 차이. 하지만 절대적이다. 40기가 41기에게 반말한다. 41기는 40기에게 존댓말한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다. 기수가 서열이다.¹⁹
군대는 더 극단적이다. 입대 날짜로 서열이 정해진다. 하루 차이도 선임과 후임을 가른다. 같은 날 입대해도 군번이 앞서면 선임이다. 개인의 능력? 경험? 지식?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서열만 중요하다.
이것이 탈개인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몇 기인가", "나는 언제 입대했는가"가 중요하다. 개인성이 사라진다. 숫자가 된다. 서열이 된다.
익명성이 만드는 무책임
관료제의 가장 큰 문제. 익명성. 누가 책임지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문서는 조직 이름으로 나간다.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개인 이름이 없다. 결재 도장은 있지만 누가 실제로 결정했는지 알 수 없다. 기안자가 있지만 책임은 조직이 진다. 개인은 숨는다.
무슨 일이 잘못됐을 때? "조직의 결정이었습니다." "상부의 지시였습니다." "절차를 따랐습니다." 개인이 없다. 책임자가 없다. 이것이 아렌트가 말한 "관료제의 무책임(the irresponsibility of bureaucracy)"이다.²⁰
반민특위 해체. 누가 결정했는가? 이승만? 경찰? 검찰? 관료들? 모두가 관여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5.16 쿠데타. 누가 책임지는가? 박정희? 군부? 관료들? 12.12 쿠데타. 전두환? 군부? 아무도 재판받지 않았다. 사면됐다. 용서받았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누가 책임지는가? 윤석열? 김용현? 계엄군? 경찰? 검찰? 모두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조직의 결정이었다고. 개인이 아니라고. 익명성 뒤에 숨을 것이다.
수감자의 탈인간화
스탠퍼드 실험에서 수감자들은 어떻게 변했는가? 처음에는 저항했다. 규칙에 불복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순응했다. 복종했다. 무기력해졌다. 왜?
번호로 불렸다. 개인성을 빼앗겼다. 같은 옷을 입었다. 독립성을 빼앗겼다. 통제당했다. 자율성을 빼앗겼다. 며칠 만에 "나는 학생"이 아니라 "나는 8612번 수감자"가 됐다. 탈인간화된 존재가 됐다.²¹
한국에서 이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군대. 신병은 "이병 김철수"가 아니라 "이병!"이다. 번호와 다를 바 없다. 검찰. 피의자는 이름이 아니라 "피의자 1", "피의자 2"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아니라 숫자다.
행정기관. 민원인은 번호표를 받는다. "123번 고객님." 이름이 아니다. 번호다. 병원. 환자는 "301호 환자"다. 이름보다 병실 번호가 중요하다. 모두 탈인간화다.
절차가 인간을 지우다
관료제는 절차를 중요시한다. 이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절차는 자의성을 막는다. 공정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절차가 인간을 지울 때다.
"규정상 안 됩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 말들 뒤에서 개인은 사라진다. 공무원도 개인이 아니다. "규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민원인도 개인이 아니다. "규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다.
검찰에서 피의자를 조사할 때. 검사는 조서를 작성한다. 질문을 한다. 답변을 적는다. 피의자는 인간인가? 아니다. "조사 대상"이다. 검사도 인간인가? 아니다. "조사 주체"다. 둘 다 절차 속의 부품이다. 인간성이 없다.
2024년 12월 3일의 탈인간화
윤석열은 계엄 선포문에서 뭐라고 말했는가? "국회를 마비시킨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 반국가 세력. 이것은 탈인간화의 언어다. 야당 의원들은 인간이 아니다. 세력이다. 적이다. 제거 대상이다.²²
계엄군은 국회의원을 어떻게 대했는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너." "거기 서." 개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방해물로 대했다. 제거 대상으로 대했다. 탈인간화했다.
왜 이것이 가능했는가? 계엄군은 제복을 입었다. 헬멧을 썼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익명이었다. 개인이 아니라 군인이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탈개인화됐다.
국회의원들도 탈인간화됐다. "반국가 세력." "내란세력." "종북." 인간이 아니었다. 적이었다. 그래서 끌어낼 수 있었다. 밀칠 수 있었다. 체포할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 없이.
박정희-전두환이 만든 구조
이 모든 것의 기원은? 박정희와 전두환이다. 그들이 한국 관료제를 군대식으로 만들었다. 제복. 계급. 서열. 상명하복. 절차. 익명성. 탈개인화. 탈인간화.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이후, 모든 관료 조직이 군대화됐다. 검찰도 군대식이 됐다. 경찰도 군대식이 됐다. 행정부도 군대식이 됐다. 명령과 복종. 이것이 전부였다. 개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직이 중요했다.
전두환이 이것을 강화했다. 1980년대 한국은 거대한 군대였다. 상명하복. 탈개인화. 탈인간화. 이것이 일상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 문화는 남았다. 법은 바뀌었지만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윤석열은 이 구조의 산물이다. 27년간 검찰 조직에서 이 문화를 체화했다. 제복은 입지 않았지만 서열을 체화했다. 익명성을 체화했다. 탈개인화를 체화했다. 그래서 2024년 계엄을 선포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을 "반국가 세력"으로 탈인간화할 수 있었다.
짐바르도의 경고
짐바르도는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재판에서 증언했다. 미군 병사가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사건이었다. 짐바르도는 말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제복을 입고, 권력을 주고, 익명성을 부여하면,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른다."²³
스탠퍼드 실험이 조작됐든 아니든, 이 통찰은 옳았다. 아부 그라이브는 실제 사건이었다. 조작이 아니었다. 평범한 미군 병사들이 포로를 학대했다. 나체로 만들었다. 개처럼 취급했다. 성적으로 모욕했다. 탈인간화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계엄군은 평범한 군인들이었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복을 입고, 명령을 받고, 익명성 뒤에 숨으면, 국회를 침입할 수 있었다. 의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 탈개인화됐다. 탈인간화됐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스탠퍼드 실험의 진짜 교훈은 무엇인가?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제복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제복이 주는 익명성을 인식해야 한다. 서열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서열이 만드는 탈개인화를 경계해야 한다. 절차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절차가 인간을 지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조직의 결정"이라는 말로 숨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익명성을 걷어내는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 군대식 문화를 해체해야 한다. 상명하복을 해체해야 한다. 탈개인화를 막아야 한다. 탈인간화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윤석열이 나온다. 또 다른 계엄이 선포된다. 또 다른 탈인간화의 폭력이 일어난다.
제복을 입은 권력. 번호로 불리는 시민. 익명성 뒤에 숨는 관료. 이것이 한국 관료제의 현실이다. 이것이 탈개인화와 탈인간화의 구조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반복적으로 위협받는다.
참고문헌
1.「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2.「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나무위키》
3.「[WIKI 인사이드] 인간 심리에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리크스한국》, 2021.11.19
4.「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5.「모의 죄수·간수 실험, 갑자기 중단된 이유는?」, 《이코노미사이언스》, 2018.2.20
6.「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7.「'마시멜로와 감옥실험' 스탠퍼드 심리학 실험은 틀렸다」, 《뉴스톱》, 2018.7.11
8.「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조작됐다?」, 《코메디닷컴》, 2018.6.15
9.「'마시멜로와 감옥실험' 스탠퍼드 심리학 실험은 틀렸다」, 《뉴스톱》, 2018.7.11
10.「[WIKI 인사이드] 인간 심리에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리크스한국》, 2021.11.19
11.「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12.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13.「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14.「경찰공무원/제복」, 《나무위키》
15.「법복」, 《나무위키》
16.「검찰 문화, 상사의 술주정마저 상명하복?」, 《시사인》, 2016.7.18
17. 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2007
18.「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 《위키백과》
19.「검찰 문화, 상사의 술주정마저 상명하복?」, 《시사인》, 2016.7.18
20.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21.「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백과》
22.「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024.12.3
23.「[WIKI 인사이드] 인간 심리에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위키리크스한국》, 2021.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