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국 현대사라는 '나쁜 통'의 생성 과정
2025년 2월 27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 167개국 중 32위. 전년도 8.09점(22위)에서 0.34점 하락, 10계단 추락했다.¹
점수 하락폭 0.34점. 이것은 167개국 중 9번째로 큰 낙폭이었다. 한국보다 더 큰 낙폭을 기록한 나라들은? 방글라데시. 튀니지. 부정선거와 정치 불안이 만연한 나라들이었다.²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강등됐다. 2006년 조사 시작 이래 한국이 받은 가장 낮은 점수였다. 2020년부터 4년 연속 유지했던 '완전한 민주주의' 지위를 잃었다.³
EIU는 항목별 점수도 공개했다.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9.58점 ▷정부 기능 7.50점 ▷정치 참여 7.22점 ▷정치 문화 5.63점 ▷시민 자유 8.82점. 특히 정부 기능은 전년 8.57점에서 1.07점 급락했다. 정치 문화는 6.25점에서 5.63점으로 0.62점 떨어졌다.⁴
EIU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주도의 의회를 '반국가 행위'라고 비난하며 계엄령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점수가 하향 조정됐다."⁵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평가는 더 가혹했다. 2024년 3월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 국가"로 분류했다. 2025년 3월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도 또다시 "독재화 국가"로 분류했다. 2년 연속이었다.⁶
V-Dem은 한국의 민주주의 단계를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한 단계 낮췄다. 1993년부터 32년간 유지했던 '자유민주주의' 지위를 잃었다. 보고서는 "한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민주주의가 회복 중인 사례였으나, 다시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⁷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형식적 민주주의: 선거는 있다
한국에 선거는 있다. 투표는 한다. 정권은 교체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처럼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다.
2017년 대선. 박근혜가 탄핵됐다. 문재인이 당선됐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2022년 대선. 윤석열이 당선됐다. 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5년마다 선거가 열린다. 국민이 투표한다. 누가 봐도 민주주의다.
하지만 선거만 있으면 민주주의인가? 투표만 하면 민주주의인가? 아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다르다.
실질적 관료주의: 관료가 지배한다
한국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선출된 정치인이 아니다. 관료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군대. 행정부. 이들이 실질적으로 국가를 지배한다.
검찰은 무엇을 하는가? 수사한다. 기소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다. 정치인을 조사한다. 대통령도 조사한다. 전직 대통령은 거의 모두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인사들. 윤석열.⁶
검찰이 정치인을 조사한다는 것은? 관료가 선출된 권력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선출된 권력이 관료를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거꾸로다. 관료가 선출된 권력을 통제한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검찰이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만들어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정적을 탄압하기 위해 검찰을 강화했다. 검찰은 정치적 수사를 했다. 군사정권이 끝난 후에도 검찰의 권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됐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전신은 중앙정보부(KCIA)다. 박정희가 1961년 쿠데타 직후 만들었다. 국내외 정보 수집. 하지만 실제로는? 국내 정치 사찰. 야당 사찰. 민주화 운동 탄압. 이것이 KCIA의 주된 역할이었다.⁷
1999년 김대중 정부가 KCIA를 국정원으로 개편했다. 국내 정치 사찰을 금지했다. 하지만 문화는 남았다.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2013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국정원과 청와대가 문화예술인을 사찰했다.⁸
군대는 어떤가? 계엄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군대가 국가를 장악한다. 1980년 5.18. 전두환이 계엄을 선포했다. 군대가 광주를 장악했다. 민간인을 학살했다. 2024년 12.3.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이 국회를 침입했다.⁹
이것이 한국의 실질적 구조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만들어진 관료 조직이다. 검찰. 국정원. 군대. 이들이 실질적 권력이다.
법치의 왜곡: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되다
민주주의에서 법치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권력자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권력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반대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된다. 권력자가 법을 이용한다. 정적을 탄압하기 위해 법을 사용한다.
국가보안법. 1948년 제정됐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방했다.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처벌한다.¹⁰
이것이 어떻게 악용됐는가? 박정희 시대.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모두 조작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체포했다. 고문했다. 사형시켰다.¹¹
전두환 시대. 부림사건. 1981년. 부산의 대학생과 교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토론을 했다는 이유로. 모두 고문을 당했다. 2014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33년 후였다.¹²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계속 악용됐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다. "국가보안법은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권을 침해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¹³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2012년 박정근 사건. 한 청년이 트위터에 북한 계정을 리트윗 했다. 조롱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집행유예.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하지만 그동안 그가 겪은 고통은?¹⁴
국제사회도 비판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모두 한국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듣지 않았다.¹⁵
이것이 법치의 왜곡이다. 법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법이 권력자를 보호한다. 법이 정적을 탄압하는 도구가 된다.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 권력자는 법을 이용한다. 시민은 법에 의해 억압당한다.
통제와 감시의 일상화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은 CCTV가 있는가? 서울에만 14만 4,513대다. 1제곱마일(2.6㎢)당 618.45대다. 2023년 조사 기준이다. 세계 2위다. 1위는? 중국 도시들이다.¹⁶
2021년에는 얼마나 있었는가? 서울에 7만 7,564대. 1제곱마일당 332대. 2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급증했다. 인구 1,000명당으로 계산하면? 14.47대다. 세계 8위다.¹⁷
왜 이렇게 많은 CCTV가 필요한가? 범죄 예방?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다르다. 영국 소비자 보안업체 컴페리테크(Comparitech). "각 도시의 공공 CCTV 카메라의 수와 범죄 또는 안전 사이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¹⁸
한국의 범죄율은 낮다. CCTV가 많지 않아도 범죄율이 낮다. 그런데 왜 CCTV를 계속 늘리는가? 안전 때문이 아니다. 통제 때문이다. 감시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는 어땠는가? CCTV는 없었다. 하지만 감시는 있었다. 동네마다 통반장. 반공청년단. 시민을 감시했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신고했다. 밀고를 장려했다. 상금을 줬다.¹⁹
전두환 시대는? 더 심했다. 안기부(안전기획부, 국정원의 전신).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 경찰 대공분실. 이들이 시민을 사찰했다. 전화를 도청했다. 편지를 검열했다. 미행했다.²⁰
민주화 이후에는? 기술이 발전했다. 도청이 디지털화됐다. 미행이 CCTV로 대체됐다. 편지 검열이 인터넷 감시로 바뀌었다. 더 정교해졌다. 더 광범위해졌다.
2020년 코로나19. 정부는 확진자 동선을 공개했다. CCTV 영상. 신용카드 사용 내역. 휴대전화 위치 정보. 모두 공개됐다. 확진자의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났다. 방역이라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였다.²¹
한국은 디지털 감시 국가가 됐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신용카드 사용 기록. CCTV 영상. 인터넷 검색 기록. 모두 추적 가능하다. 정부가 원하면 시민의 모든 행적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정상인가? 민주주의 국가가 시민을 이렇게 감시하는 것이?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 국가안보라는 명목. 공공복리라는 명목. 하지만 실제로는? 통제다. 감시다.
계엄: 한국형 전체주의의 마지막 조각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왜? "국회를 마비시킨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 야당이 반국가 세력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적이라고 했다.²²
계엄이란 무엇인가? 군대가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다. 입법·사법·행정의 권한이 군대로 넘어간다. 민주주의가 정지된다. 군부 독재가 시작된다.
윤석열의 계엄은 실패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시민이 국회를 지켰다.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다. 하지만 이 사건이 보여준 것은?
한국에는 계엄이라는 제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가 국회를 침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6시간 만에 정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EIU는 이것을 "한국 정치 시스템의 제도적 약점"이라고 표현했다. 헌법에 계엄선포권이 명시돼 있다는 것.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 이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이다.²³
형식적 민주주의 + 실질적 관료제 = 한국형 전체주의
한국은 이중적이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다. 선거가 있다. 투표를 한다. 정권이 교체된다. 국회가 있다. 법원이 있다. 언론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료제가 지배한다. 검찰이 정치인을 조사한다. 국정원이 시민을 사찰한다. 군대가 계엄을 선포한다. 법이 정적을 탄압하는 도구가 된다. CCTV가 시민을 감시한다.
이것이 한국형 전체주의다. 노골적인 독재가 아니다. 선거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만들어진 구조가 살아있다. 군사문화. 상명하복. 감시. 통제.
V-Dem이 한국을 "독재화 국가"로 분류한 이유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강등한 이유다. 형식은 민주주의다. 하지만 실질은?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회복력 vs 전체주의의 관성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다. 12.3 계엄이 실패한 이유는? 시민들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지켰기 때문이다.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다.
EIU도 인정했다. "한국의 국회와 일반 대중은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존중을 보여줬다." 하지만 동시에 경고했다. "이 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²⁴
한국 민주주의는 37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민주화 선언. 대통령 직선제. 그때부터 시작됐다. 37년. 짧다. 취약하다.
반면 박정희-전두환 시스템은? 63년이다. 1961년 5.16 쿠데타부터. 박정희 18년. 전두환 8년. 노태우 5년. 군사정권 31년. 민주화 이후에도 시스템은 남았다. 검찰. 국정원. 군대. 국가보안법. CCTV. 63년간 축적된 통제 시스템이다.
37년 민주주의 vs 63년 전체주의 시스템. 어느 쪽이 더 강한가? 어느 쪽이 더 뿌리 깊은가?
2년 연속 독재화: 우연이 아니다
V-Dem이 한국을 2년 연속 독재화 국가로 분류했다. 2023년. 2024년. 우연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뭔가가 바뀌었다.
언론자유지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63위. 2021년 42위로 상승. 하지만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023년 47위. 2024년 62위. 2025년 68위. 계속 하락했다.²⁵
민주주의 지수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상승했다. 2021년 8.16점. 최고점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2023년 8.09점. 2024년 7.75점. 급락했다.²⁶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박정희-전두환 시스템을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권력 강화. 국정원 권한 확대. 언론 통제. 야당 탄압.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모두 연결돼 있다.
통(시스템)의 문제다
윤석열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윤석열은 박정희-전두환 시스템의 산물이다. 27년 검사 생활. 검찰 문화 체화. 상명하복. 절차주의. 무사유. 탈인간화. 탈개인화. 모두 시스템이 만든 것이다.
윤석열이 사라지면 끝나는가? 아니다. 시스템이 남아있는 한 또 다른 윤석열이 나온다. 검찰이 남아있다. 국정원이 남아있다. 계엄권이 남아있다. 국가보안법이 남아있다. CCTV가 계속 늘어난다.
이것이 한국형 전체주의의 조건이다. 형식적 민주주의. 실질적 관료제. 왜곡된 법치. 일상화된 감시.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유산이다. 63년간 쌓인 구조다.
변화는 가능한가
가능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계엄권을 폐지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검찰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군대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선출된 정치인? 그들은 검찰의 칼날 아래 있다. 시민? 시민은 CCTV와 디지털 감시 아래 있다. 관료? 그들이 바로 시스템의 수혜자다.
12.3 계엄이 보여준 것은? 시민의 힘이다. 시민들이 국회를 지켰다. 계엄을 막았다. 하지만 시민의 힘만으로 충분한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가?
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시스템 개혁(Macro). 박정희-전두환 시스템 해체. 둘째, 시민의 사유(Micro). 판단하는 시민. 저항하는 시민. 이 둘이 결합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계속 독재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인가? EIU의 7.75점. V-Dem의 "독재화 국가" 분류. 이것은 경고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다.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이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 관료가 시민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감시가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37년 민주주의가 63년 전체주의 시스템을 이길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한국이 직면한 질문이다. 대답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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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3 계엄에 국격 하락, 민주주의 지수도 역대 '최악'」,《한국기자협회》, 2025.3.3
4.「민주주의 보고서 2025」,《국회도서관 국가전략정보포털》, 202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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