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통과 무사유가 만든 결과

제3부 '나쁜 통 × 무사유'가 만들어낸 윤석열 모델

by 한시을

16장. 아이히만의 언어와 윤석열의 언어 비교 (1)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방탄 유리 부스 안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정에 섰다.

2025년 1월 13일, 서울중앙지법.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이 최후진술을 했다.


두 재판정, 64년의 시차. 그런데 두 사람의 언어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I was just following orders)."¹

"나는 내 의무를 다했습니다. 나는 법을 준수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대인에게 어떤 악의도 없었습니다."²


윤석열은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26년간 검찰에서 주요 수사를 했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어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³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아보자.

아이히만: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법을 준수했습니다."

윤석열: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구조가 같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절차적 정당성'이다. 명령, 법, 원칙. 모두 절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절차적 언어의 패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언어를 분석하며 "관료적 언어(bureaucratic language)"라고 불렀다.⁴ 이 언어의 특징은 행위의 도덕적 의미를 절차적 정당성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이송(transport)"했다고 말했다. 학살이 아니라 이송. "특별 처리(special treatment)"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살해가 아니라 처리.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을 집행했다고 말했다.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해결책.⁵


윤석열도 같은 구조의 언어를 사용했다. 노동자 파업을 "불법 행위"라고 불렀다. 야당의 예산 삭감을 "국가 마비"라고 규정했다. 계엄 선포를 "헌정 질서 수호"라고 주장했다.⁶


핵심은 같다. 구체적 인간, 구체적 고통을 추상적 범주로 대체한다. 그리고 그 범주를 절차적 언어로 정당화한다.


"나는 단지 기계의 톱니바퀴였을 뿐"

아이히만은 자신을 "단지 기계의 톱니바퀴(merely a little cog in the machinery)"라고 불렀다.⁷ 그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집행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명령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명령을 수행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렌트는 이것을 "책임의 확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고 분석했다.⁸ 조직이 크고 복잡할수록, 개인의 책임은 희석된다. 나는 단지 작은 부품일 뿐, 전체 기계의 작동에 대한 책임은 없다.


윤석열도 비슷한 논리를 사용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⁹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조직의 논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책임은 조직에 있지, 나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


검찰총장 시절, 그는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고 말했다.¹⁰ 여기서 핵심은 "수사권"이다. 검사의 정체성을 권한으로 정의한다. 도덕적 행위자가 아니라 절차적 집행자.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같은 논리를 유지했다. 계엄을 선포하며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말했다.¹¹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든 자유를 박탈한다.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법을 중단시킨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이것은 절차적 사고의 완성이다. 형식만 갖추면 내용은 정당화된다. 명분만 있으면 실제는 문제없다.


법의 이름으로 법을 파괴하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법을 따랐습니다. 나치의 법은 합법적인 법이었습니다. 나는 그 법을 집행했을 뿐입니다."¹²


아렌트는 이것을 "법에 대한 왜곡된 존중(perverted respect for law)"이라고 불렀다.¹³ 법의 정신은 무시하고, 법의 조문만 따르며, 법의 형식으로 불법을 정당화한다.


뉘른베르크 법은 유대인을 시민에서 배제했다. 합법적으로. 최종 해결책은 공식 정책이었다. 합법적으로. 아이히만은 법적 근거를 가지고 이송 업무를 수행했다. 합법적으로.


윤석열도 같은 논리를 사용했다. 헌법 제77조에 계엄 선포권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계엄 선포는 합법이다. 요건을 충족했는가? 중요하지 않다. 목적이 합헌적인가? 고려하지 않는다. 조문에 있으니 행사할 수 있다.¹⁴


2024년 12월 3일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¹⁵


법의 이름으로 법을 파괴했다. 계엄법의 형식으로 헌법의 실질을 중단시켰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며 모든 민주주의적 권리를 박탈했다.

아이히만과 똑같은 논리다. 법의 조문은 있다. 절차는 갖췄다. 그러므로 합법이다.


"나는 적을 증오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대인에게 어떤 악의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문화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단지 내 일을 했을 뿐입니다."¹⁶


이 문장의 구조를 보자. 유대인에 대한 악의가 없었으므로,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개인적 감정이 없었으므로, 나는 죄가 없다.


하지만 수백만 명이 죽었다. 그가 조직한 이송열차로. 그가 서명한 명령서로. 그가 집행한 "최종 해결책"으로.


아렌트는 이것을 "도덕적 판단의 부재(absence of moral judgment)"라고 분석했다.¹⁷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보지 못했다.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지 못했다. 학살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다.


왜? 그는 절차만 보았기 때문이다. 이송 숫자, 열차 시간표, 수용소 수용 능력. 숫자와 절차만 있었다. 인간은 없었다.


윤석열도 비슷했다. 2022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그는 노동자들을 "조폭", "북한 핵 위협"에 비유했다.¹⁸ 왜 그들이 파업을 했는가는 묻지 않았다. 안전운임제가 없으면 과로운전을 해야 하고, 과로운전은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절차만 보았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절차가 있다. 명령에 불응하면 위법이다. 위법이면 처벌해야 한다. 왜 불응하는가? 중요하지 않다. 절차를 어겼으니 범죄다.


계엄 선포 담화에서 그는 야당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이라고 불렀다.¹⁹ 왜 야당이 예산을 삭감했는가는 묻지 않았다. 그것이 정당한 입법 활동인가는 고려하지 않았다.


적을 설정하고, 적을 악마화하며, 적을 척결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없었다. 절차만 있었다.


책임 회피의 문법

아이히만의 변론은 일관되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책임은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 있습니다. 나는 단지 집행자일 뿐입니다."²⁰


이 논리의 구조를 분석해보자.


첫째, 행위와 책임을 분리한다. 나는 행위를 했지만, 책임은 없다.

둘째, 개인과 조직을 분리한다. 나는 조직의 일부일 뿐, 조직의 결정에 책임이 없다.

셋째, 절차와 결과를 분리한다. 나는 절차를 따랐으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다.


윤석열도 같은 문법을 사용했다. 2025년 1월 최후진술: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어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²¹


이 문장의 구조:


첫째, 자신은 "법과 원칙"을 따랐다. (절차적 정당성)

둘째, 내란 혐의는 "정치적 음모"다. (책임 부인)

셋째, 자신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측 불가능성 주장)


행위는 인정하되 책임은 부인한다. 계엄은 선포했지만, 그것이 내란이 될 줄은 몰랐다. 국회를 무력화하려 했지만, 그것이 헌법 파괴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히만과 똑같다. 유대인을 이송했지만, 그들이 학살될 줄은 몰랐다. 최종 해결책을 집행했지만, 그것이 제노사이드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무사유의 언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분석하며 "생각의 무능력(inability to think)"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²²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묻는 것, 자신의 결정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것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절차를 생각했지만,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 명령을 수행했지만, 결과를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았지,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보지 못했다.


아렌트는 이것을 "진부한 언어(cliché)"와 연결시켰다.²³ 아이히만은 자신의 말을 하지 못했다. 상투어를 반복했다. "명령을 따랐다", "의무를 다했다", "법을 준수했다". 이 표현들은 그의 말이 아니라 조직의 말, 시스템의 말이었다.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법과 원칙",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호", "반국가 세력 척결". 이 표현들은 새롭지 않다. 박정희가 썼고, 전두환이 썼으며, 모든 권위주의 정권이 썼다.²⁴


자신의 생각이 없다. 조직에서 배운 말을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법과 원칙"이 무엇인가? 27년간 반복했지만, 한 번도 정의하지 않았다. 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재판정, 같은 언어

1961년 예루살렘, 2025년 서울. 64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피고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절차적 언어. 책임 회피의 문법. 도덕적 판단의 부재. 무사유의 반복.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두 사람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시스템에서 살았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관료였고, 윤석열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검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통(barrel)"은 비슷했다. 나치 독일의 관료 조직과 한국의 검찰 조직. 두 조직 모두 상명하복, 절대복종, 절차 만능주의를 특징으로 했다.


그리고 그 조직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배웠다. 절차적 언어, 책임 회피의 문법, 무사유의 상투어.

아이히만은 나치 조직에서 15년을 일했다. 윤석열은 검찰 조직에서 27년을 일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조직의 언어를 완전히 내재화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재판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언어는 우연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두 사람의 언어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라고. 어떤 변론이든 "나는 명령을 따랐다", "법을 지켰다"는 식의 변명을 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이것은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아이히만은 정말로 자신이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믿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관 안에서, 그것은 진실이었다. 명령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고, 절차를 지키는 것이 정의이며,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의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²⁵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다"고 믿는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관 안에서, 그것은 진실이다. 법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고, 절차를 지키는 것이 정의이며, 검찰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의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한다. 그리고 사고는 조직에서 형성된다.


27년간 검찰 조직에서 일하며, 윤석열은 검찰의 언어를 배웠다. 기소, 불기소, 영장, 구속, 법과 원칙. 이 언어로 세상을 보고, 이 언어로 판단하며, 이 언어로 행동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피고인이 되어서도, 그는 같은 언어를 썼다. 왜? 그것이 그가 아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비교의 의미

왜 아이히만과 윤석열을 비교하는가? 두 사람의 범죄의 규모를 동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히만은 600만 명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 윤석열의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구조는 같다. 절차적 사고, 책임 회피, 무사유의 언어. 이것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조직의 산물이다.


나치 조직이 아이히만을 만들었다면, 검찰 조직은 윤석열을 만들었다. 나치 조직의 언어가 아이히만의 언어가 되었다면, 검찰 조직의 언어는 윤석열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아이히만 한 사람을 처형해도, 나치 시스템이 남아 있으면 제2의 아이히만이 나온다. 윤석열 한 사람을 탄핵해도, 검찰 시스템이 남아 있으면 제2의 윤석열이 나온다.


언어를 바꿔야 한다. 절차적 언어에서 사유하는 언어로. 책임 회피의 문법에서 책임을 지는 문법으로. 무사유의 상투어에서 의미를 묻는 언어로.


그리고 그것은 개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아이히만과 윤석열의 언어 비교를 계속할 것이다. 상급자에 대한 태도, 피해자에 대한 인식, 현실 인식의 결여.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두 사람의 언어는 더욱 놀라운 유사성을 드러낸다.


두 재판정의 언어가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악은 괴물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 그리고 그 평범함은 언어에서 시작된다.


참고문헌

1. Adolf Eichmann, 예루살렘 재판 진술, 1961.4-8

2. Adolf Eichmann, 재판 기록,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1963, p.135

3.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최후진술, 서울중앙지법, 2025.1.13

4.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1963, p.85-87

5.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48-49

6. 윤석열, 계엄 선포 담화 및 정부 발언, 2024.12.3

7. Adolf Eichmann, 재판 진술, 1961

8.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289

9. 윤석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증언, 2013.10.21

10. 윤석열,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 임명 기자회견, 2017.5.19

11.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 긴급 대국민 담화, 2024.12.3

12. Adolf Eichmann, 재판 진술,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135-148

13.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148

14. 대한민국헌법 제77조

15.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2024.12.3, 23:00

16. Adolf Eichmann, 재판 진술, 1961

17.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287-288

18. 윤석열·원희룡, 화물연대 파업 관련 발언, 2022.12.5

19. 윤석열, 계엄 선포 담화, 2024.12.3

20. Adolf Eichmann, 재판 최종 변론, 1961

21. 윤석열, 최후진술, 2025.1.13

22.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1978, p.4-5

23.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48-49

24. 박정희, 5.16 혁명공약, 1961.5.16; 전두환, 계엄 포고문, 1980.5.17

25.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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