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나쁜 통 × 무사유'가 만들어낸 윤석열 모델
"법과 원칙."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2020년 8월, 신임 검사 임관식.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담화. 2025년 1월 1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최후진술.
윤석열은 검사 시절부터 대통령, 그리고 피고인이 되기까지 한 문장을 반복했다. "법과 원칙."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27년 검찰 경력자는 이 네 글자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는가? 그리고 이 반복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절차적 언어의 특징
검찰의 언어에는 패턴이 있다. '법과 원칙', '수사권', '기소', '구속', '불기소'. 이 단어들은 모두 절차를 가리킨다. 법의 정신이 아니라 법의 절차, 정의의 본질이 아니라 수사의 형식.
윤석열의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왜'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만 물었다. 왜 이 사람을 수사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수사할 것인가. 왜 이것이 정의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법에 부합하는가.
2013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¹
이 문장의 구조를 보자. '사람'과 '조직'을 대립시킨다. 그리고 조직을 선택한다. 조직이란 무엇인가? 규칙, 절차, 명령 체계. 즉 그는 사람(인간, 개인, 도덕적 판단)보다 규칙(절차, 시스템, 형식)을 선택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2017년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 임명 당시 그는 말했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²
여기서도 핵심은 '수사권'이다. 검사의 정체성을 '권한'으로 정의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사권을 가진 사람. 도덕적 행위자가 아니라 절차적 집행자.
"법과 원칙"의 반복
2020년 8월, 신임 검사 임관식.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³
이 문장의 논리를 분석해보자.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한다. 전자는 '진짜', 후자는 '허울'.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와 허울을 가르는가?
그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진짜이고, 없으면 허울이다. 왜? 설명 없음. 이것이 절차적 언어의 특징이다. 정의하지 않고 구분한다. 설명하지 않고 규정한다.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재건', '소명'. 큰 단어들이 나열된다. 그런데 구체적 내용은 없다. 무엇을 재건할 것인가? 어떤 책임을 다할 것인가? 설명 없음.
이것이 절차적 언어의 두 번째 특징이다. 추상적 개념을 나열하되, 구체적 내용을 채우지 않는다. '법과 원칙'처럼.
화물연대 파업 - 절차적 언어의 적용
2022년 11월, 화물연대가 두 번째 파업을 시작했다.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파업이었다.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노동 3권의 행사였다.
윤석열 정부의 반응은 명확했다.
11월 2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한다. 코로나19나 이태원 참사와 똑같은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해 단계별로 조치하게 돼 있다."⁵
12월 5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조직적인 집단의 힘을 가지고 대화와 정상적 거래가 아닌 위력과 협박을 사용하면 그게 바로 폭력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줄여 조폭이라 하는 것입니다."⁶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 "북한 핵 위협과도 같다."⁷
이 발언들을 분석해보자.
이상민: 파업 = 재난 = 코로나19 = 이태원 참사
원희룡: 파업 = 위력과 협박 = 폭력 = 조폭
윤석열: 파업 = 북한 핵 위협
논리적 비약이 아니다. 이것은 의도적 등치(equation)다. 헌법상 권리를 범죄로, 노동자를 조폭으로, 국민을 적으로 규정한다.
왜 이런 언어가 가능한가? 절차적 사고 때문이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법 위반 여부만 판단한다. 왜 위반했는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절차상 위법이면 범죄다.
화물연대 파업도 마찬가지로 판단되었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절차가 있다. 명령에 불응하면 위법이다. 왜 불응하는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절차상 위법이면 범죄다.
그리고 범죄면 '처단'해야 한다.
"처단"이라는 단어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계엄사령부는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이 포고령을 위반하는 자는 계엄법 제14조에 의거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9조에 의해 처단한다."⁸
"처단."
이 단어는 포고령에서 두 번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계엄령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단어다.⁹
'처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전적 의미는 '죄인을 처벌하여 다스림'이다. 그런데 법률 용어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처벌', '형벌', '징역'이라고 쓰지 '처단'이라고 쓰지 않는다.
왜 계엄령에서는 '처단'을 쓰는가? 이 단어는 법적 절차가 아니라 군사적 집행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재판 없이, 변론 없이, 즉결로 처리한다는 뜻.
윤석열의 포고령도 똑같았다.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9조에 의해 처단한다."
절차적 언어의 극단이다. 법의 이름으로 법을 중단시킨다. 원칙의 이름으로 원칙을 파괴한다.
도덕적 판단의 부재
2025년 1월 13일, 서울중앙지법. 윤석열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았다.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26년간 검찰에서 주요 수사를 했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어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¹⁰
계엄을 선포한 사람이, 국회를 무력화하려 한 사람이, 자신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거짓말인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에게 '법과 원칙'은 절차적 정당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77조에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이 명시되어 있다. 절차상 정당하다. 그러므로 "법과 원칙에 따랐다."
실질적 정당성? 도덕적 정당성? 그는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27년간 검찰이라는 통 속에서, 그는 절차적 사고만 훈련받았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분석하며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히만도 재판정에서 똑같이 말했다. "나는 법을 따랐습니다.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¹¹
아이히만에게 법은 나치의 법이었고, 명령은 히틀러의 명령이었다. 그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판단하지 않았다. 절차상 정당한가만 확인했다.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법은 검찰의 법, 권력의 법이었고, 원칙은 절차의 원칙, 형식의 원칙이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는 판단하지 않았다. 절차상 가능한가만 확인했다.
검찰 문법의 구조
검찰의 언어는 구조적이다. 27년간 이 언어를 사용하면, 그것은 사고방식이 된다.
첫째, 이분법. 합법/불법, 유죄/무죄, 기소/불기소. 회색지대는 없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 나눈다.
윤석열의 언어도 이분법이었다. 자유민주주의/독재, 법과 원칙/범죄, 국가/반국가 세력. 중간은 없다. 편을 나눈다.
둘째, 적대적 구도. 검사 vs 피의자. 수사하는 자 vs 수사받는 자. 권력을 가진 자 vs 권력에 복종하는 자.
윤석열의 언어도 적대적이었다. 대통령 vs 야당, 정부 vs 노동자, 국가 vs 종북 세력. 대화가 아니라 대결.
셋째, 권위주의. 검찰의 결정은 최종적이다. 기소하면 유죄 추정, 불기소하면 무혐의 확정. 설명할 필요 없다. 판단했으면 끝이다.
윤석열의 언어도 권위주의적이었다. "법과 원칙에 따라."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원칙인가? 내가 정한다. 왜? 나는 27년 경력 검사이고 검찰총장이었으며 대통령이다.
넷째, 탈인간화. 피의자는 사건번호가 된다. '2023형제12345호'. 인간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case.
윤석열의 언어도 탈인간화되어 있었다. 노동자를 '조폭', 야당을 '범죄자 집단', 정치적 반대자를 '종북 세력'. 인간이 아니라 '처단'해야 할 대상.
무사유의 언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언어를 분석하며 "진부한 언어(cliché)"라고 불렀다.¹² 상투어, 관용구, 반복되는 표현. 자신의 말이 아니라 조직의 말, 시스템의 말.
윤석열의 언어도 진부했다. "법과 원칙",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호", "반국가 세력 척결". 이 표현들은 박정희가 썼고, 전두환이 썼으며, 모든 권위주의 정권이 썼다.
새로운 말이 없다. 자신의 생각이 없다. 조직에서 배운 말, 시스템이 제공한 표현을 반복할 뿐이다.
아렌트는 이것을 "생각의 무능력(inability to think)"이라고 불렀다.¹³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말을 만들지 못한다. 상투어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상투어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법과 원칙"이 무엇인가? 윤석열은 정의하지 않았다. 27년간 반복했지만,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이 "법과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의미를 묻지 않고,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반복했다.
27년 후, 그 반복은 습관이 되었다. 습관은 정체성이 되었다. 정체성은 행동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그는 계엄을 선포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언어가 현실이 될 때
검찰의 언어는 추상적이다. '법과 원칙', '수사권', '공소권'. 이 단어들은 구체적 인간, 구체적 상황과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언어가 권력을 만나면 현실이 된다.
검사 시절, "법과 원칙"은 수사 방침이었다. 검찰총장 시절, "법과 원칙"은 조직 문화였다. 대통령이 되자, "법과 원칙"은 국가 운영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법과 원칙"은 계엄령이 되었다.
추상적 언어가 구체적 폭력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표현이 국회 난입, 정치인 체포 시도, 언론 통제로 실현되었다.
언어는 중요하다. 특히 권력자의 언어는. 왜냐하면 권력자의 언어는 명령이 되고, 명령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현실을 바꾸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27년간 사용한 언어 - 절차적, 이분법적, 적대적, 권위주의적, 탈인간화된 언어 - 는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 문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는 통치 문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문법의 끝은 계엄이었다.
문법을 바꿔야 한다
윤석열 개인의 언어 습관을 비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그의 언어는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조직적 산물이다.
검찰 조직 전체가 이런 언어를 쓴다. "법과 원칙", "수사권", "엄정 수사", "공소권 행사". 이 표현들은 검찰 보도자료, 검찰 연설, 검찰 문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¹⁴
왜? 검찰 조직이 군사문화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군대의 언어 - 명령, 복종, 적, 섬멸 - 가 검찰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검찰 조직의 문화, 검찰 조직의 교육, 검찰 조직의 승진 체계. 이것들이 절차적 언어, 적대적 언어, 권위주의적 언어를 양산한다.
윤석열 한 사람을 제거해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이 같은 언어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다시 권력이 되어 현실을 폭력으로 바꿀 것이다.
사유하는 언어로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는 것(thinking)"이 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¹⁵ 상투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묻는 것. 주어진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것.
"법과 원칙"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다면, 윤석열은 다른 답을 얻었을 것이다.
법은 절차가 아니라 정의다. 원칙은 형식이 아니라 가치다.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것은 절차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27년간 한 번도. 그리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직이 준 언어를 그대로 썼다.
이것이 무사유의 언어다. 생각 없는 반복, 의미 없는 되풀이, 판단 없는 집행.
그리고 그 언어의 끝에는 계엄이 있었다.
언어를 바꿔야 한다. 절차적 언어에서 사유하는 언어로. 적대적 언어에서 대화하는 언어로. 권위주의적 언어에서 민주적 언어로.
그리고 그것은 검찰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다. 관료 조직, 군대, 기업, 학교. 어디서나 절차적 언어, 권위주의적 언어가 지배한다.
"법과 원칙."
"명령 복종."
"규정 준수."
"절차 이행."
이 언어들은 사유를 막는다. 질문을 차단한다.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유 없는 사회에서는, 윤석열 같은 사람이 계속 나올 것이다.
언어를 바꾸는 것. 그것이 무사유를 막는 첫걸음이다.
참고문헌
1. 윤석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증언, 2013.10.21
2. 윤석열,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 임명 기자회견, 2017.5.19
3. 윤석열, 신임 검사 임관식 축사, 2020.8
4.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사, 2022.5.10
5. 이상민, 화물연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브리핑, 2022.11.28
6. 원희룡, 건설노조 공사중단 현장 방문 발언, 2022.12.5
7.윤석열, 관계장관회의 발언, 2022.12.5
8.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2024.12.3, 23:00
9. 뉴스타파, "역대 계엄 포고문 비교 분석", 2024.12.4
10.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최후진술, 서울중앙지법, 2025.1.13
11.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1963, p.135-148
12.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p.48-49
13.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1978, p.4-5
14. 뉴스타파, "검사 윤석열의 법과 원칙, 그리고 이중잣대", 2020
15. Hannah Arendt, 『Thinking and Moral Considerations』, 1971
16.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2019.7.25
17.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자료, 2024.5.10
18. 국회 속기록, 제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020-2022
19. 한국노동연구원, "화물연대 파업과 정부 대응 분석", 2023
20. 국제노동기구(ILO), "한국 정부 협약 위반 사례", 2023
21. Philip Zimbardo, 『The Lucifer Effect』, 2007
22.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내란 사건 공판기록, 2025
23. 계엄법, 법률 제14839호
24. 대한민국헌법 제77조 (계엄)
25.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4조 (업무개시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