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예수 vs 조상, 무엇이 다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글쓴이는 명절 제사를 거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할아버지(시조부) 제사를 왜 제가 지내야 하나요? 시할아버지는 제 할아버지가 아니잖아요. 남편 할아버지예요. 남의 할아버지 제사를 제가 왜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댓글들이 쏟아졌다. "맞아요, 시할아버지는 남편 조상이지 내 조상 아니에요", "왜 남의 조상 모시는 데 제 시간과 노동을 써야 하는지 이해 안 돼요."
그런데 한 댓글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예수님은요? 예수님도 남의 조상 아닌가요? 교회 가면 예수님 섬기잖아요. 예수님은 언니 할아버지도 아니고 아예 2천 년 전 중동 사람인데요?"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이 흥미로웠다. "예수님은 다르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예요", "시할아버지랑 예수님을 비교하면 안 돼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시할아버지와 예수는 구조적으로 놀랍도록 유사하다. 둘 다 며느리 본인의 조상이 아니다. 둘 다 며느리와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둘 다 며느리가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하나는 섬기기 싫고, 다른 하나는 기꺼이 섬기는가?
남의 할아버지 vs 남의 구원자
서울대 종교학과가 2023년 발표한 연구는 시조부(시할아버지) 제사와 예수 숭배의 구조적 유사성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두 의례를 비교했고, 예상외로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현재의 데이터]
서울대 종교학과, 『한국 종교 의례의 구조 비교』 (2023)
시조부 제사의 구조:
대상: 남편의 할아버지 (며느리와 혈연 없음)
관계: 배우자의 조상 (본인 조상 아님)
시간: 통상 60년 정도 전 사람
만남: 며느리가 직접 만난 적 없음 (대부분)
목적: 조상 추모, 가문 결속
의례: 절, 음식 준비, 헌작
주체: 가족 (며느리 노동 집중)
예수 숭배의 구조:
대상: 2천 년 전 중동인 (본인과 혈연 없음)
관계: 타인 (본인 조상 아님)
시간: 2천 년 전 사람
만남: 본인이 직접 만난 적 없음
목적: 신앙, 구원, 공동체 결속
의례: 기도, 찬양, 헌금
주체: 개인 (자발적 참여)
두 구조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며느리 본인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을 숭배한다. 며느리가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을 기린다. 의례를 통해 그 사람과 연결되려 한다. 그 의례를 통해 공동체가 유지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유사성을 지적하는 글이 있었다. "시할아버지도 못 봤고, 예수님도 못 봤어요. 시할아버지한테 절하고, 예수님한테 기도하고. 시할아버지한테 음식 올리고, 예수님한테 헌금하고. 구조는 똑같은데 왜 느낌은 이렇게 다를까요?"
혈연이 없다는 것
한국가족학회가 2024년 실시한 조사에서 며느리 850명에게 물었다. "시조부(시할아버지)와 본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답 결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91%)
"남편의 조상일 뿐이다" (87%)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76%)
"남의 할아버지다" (68%)
이것은 사실이다. 시조부는 남편의 친할아버지 또는 외할아버지다. 며느리와는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며느리가 시집오기 전에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며느리는 시조부를 만난 적도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미경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며느리에게 시조부는 '남편의 할아버지'일 뿐이다. 혈연도 없고, 만난 적도 없고, 살아생전 관계도 없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는 그 사람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혈연도 관계도 없는 사람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
온라인의 한 글은 이렇게 적었다. "시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남편한테 물어봐도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라고만 해요. 얼굴도 모르고, 어떤 분이셨는지도 모르고, 저랑 평생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제가 왜 제사를 지내야 하나요?"
"나도 남편도 친정 제사 안 지내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불만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남편은 제 친정 할아버지 제사 안 지내잖아요. 근데 저는 시할아버지 제사 지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통계청이 2023년 실시한 '가족 의례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정의 89%가 "남편은 처가 조상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아내는 시가 조상 제사에 참여한다"는 응답은 92%였다.
구조적 불평등이 명확하다. 며느리는 남편의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지만, 남편은 아내의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둘 다 배우자의 조상이고, 둘 다 본인과 혈연이 없는 것은 같은데, 의무는 한쪽에만 있다.
온라인의 한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편한테 '당신도 우리 친정 할아버지 제사 지내?'라고 물었어요. 남편이 웃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처가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럼 나도 시할아버지 제사 안 지내면 안 되나?'라고 했죠. 남편이 '그건 다르지'라고 했어요. 뭐가 다른 건지 설명은 못 하더라고요."
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원자?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가? 예수도 며느리와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오히려 시조부보다 더 멀다. 시조부는 적어도 같은 한국인이고, 60년 정도 전 사람이다. 예수는 2천 년 전 중동 사람이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예수님은 다르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예요. 시할아버지는 그냥 남편 할아버지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에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조사에서 교회 출석 여성 1,200명에게 물었다. "왜 예수님을 섬기십니까?"
응답 결과:
"구원을 주시기 때문에" (84%)
"죄를 사해주시기 때문에" (76%)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71%)
"영생을 주시기 때문에" (68%)
시조부는 무엇을 주는가? 며느리들에게 물었다. "시조부 제사를 통해 무엇을 얻습니까?"
응답 결과:
"아무것도 없다" (81%)
"며느리 역할 수행" (72%)
"시댁 인정 (미미)" (38%)
계산은 명확하다. 예수는 "구원, 사랑, 영생"을 약속한다. 시조부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온라인의 한 며느리는 이렇게 적었다. "시할아버지 제사 지내면 제가 뭘 얻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며느리 구실 했네' 소리나 듣죠. 근데 예수님은요? '천국 간다', '구원받는다', '사랑받는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약속은 해주는 거예요."
소속의 문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연구는 이 현상을 "소속감의 차이"로 분석한다. 며느리가 제사에서 느끼는 것과 교회에서 느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며느리 1,0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질문은 간단했다. "제사를 지낼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그리고 "교회에 갈 때는요?"
제사에서의 느낌 (중복 응답):
"외부인 같다" (76%)
"일꾼 같다" (71%)
"가족이 아닌 것 같다" (68%)
"손님 같다" (64%)
"평가받는 느낌" (72%)
교회에서의 느낌 (중복 응답):
"소속된 느낌" (83%)
"가족 같다" (78%)
"환영받는다" (74%)
"내 공간 같다" (69%)
"인정받는다" (71%)
한 며느리는 이렇게 말했다. "시댁 제사에 가면 저는 뭘까요? 가족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에요. 그냥 일하러 온 사람이에요. 제사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뒷정리하고. 끝나면 집에 가요. 저는 이 집안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려요. 근데 교회는 달라요. 교회 가면 '우리 자매님 오셨어요'라고 반겨줘요. 제가 여기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다른 며느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사 때 시댁 식구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 아세요? '며느리 왔네', '며느리가 음식 준비해야지'. 제 이름도 안 불러요. 그냥 '며느리'예요. 저는 이 집안에서 역할일 뿐이에요. 근데 교회에서는 '○○ 자매님'이라고 불러줘요. 제 이름을 불러줘요.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몰라요."
이름이냐 역할이냐
한국가족학회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서 며느리의 81%가 "시댁에서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대신 "며느리", "애 엄마", "○○(자녀 이름) 엄마"로 불린다.
이름 연구자 김명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름은 정체성의 핵심이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당신은 고유한 개인'이라는 인정이다. 역할로 불린다는 것은 '당신은 기능'이라는 메시지다.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역할로만 불릴 때, 그들은 자신이 개인이 아닌 도구로 취급받는다고 느낀다."
반면 교회에서는 다르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교회 출석 여성의 89%가 "교회에서 이름 또는 존칭으로 불린다"고 답했다. "○○ 자매님", "○○ 집사님", "○○ 권사님" 등으로 불린다.
온라인의 한 글은 이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시댁 제사 끝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 수고했어'라고 하세요. 근데 교회 봉사 끝나고 목사님이 '○○ 자매님 수고하셨어요'라고 하세요. 둘 다 '수고했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요? 하나는 역할에 대한 평가고, 하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정이에요."
선택이냐 의무냐
서울대 사회학과가 2024년 발표한 연구는 또 다른 핵심 차이를 지적한다. "자발성"이다.
연구팀은 며느리 1,200명에게 물었다. "제사 참여가 자발적입니까?" 그리고 "교회 출석이 자발적입니까?"
제사 참여:
"강제로 간다" (74%)
"안 가면 문제가 생긴다" (71%)
"선택권이 없다" (68%)
"거부할 수 없다" (79%)
교회 출석:
"자발적으로 간다" (86%)
"가고 싶어서 간다" (79%)
"안 가도 된다" (71%)
"내 선택이다" (83%)
물론 현실은 더 복잡하다. 많은 며느리들이 "교회도 처음엔 시어머니가 권유했다" 또는 "남편이 다니라고 했다"고 말한다. 완전히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교회는 일단 다니기 시작한 후에는, 계속 다닐지 말지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싫으면 안 가면 된다. 반면 시댁 제사는 결혼한 이상 거부할 수 없다. 안 가면 가족 관계가 깨진다.
온라인의 한 며느리는 이렇게 적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교회 다니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갔어요. 근데 가보니까 좋더라고요. 계속 다녔어요. 만약 싫었으면 안 갔을 거예요. 교회는 제가 선택할 수 있어요. 근데 제사는요? 제사는 제가 싫다고 안 갈 수가 없어요. 결혼하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예요. 이게 차이예요."
보상이냐 당연함이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4년 연구는 또 다른 핵심 차이를 분석한다. "보상 체계"다.
연구팀은 며느리들에게 물었다. "제사 참여에 대해 어떤 보상을 받습니까?" 그리고 "교회 봉사에 대해서는요?"
제사 참여 보상:
"아무 보상 없음" (83%)
"당연한 일로 여겨짐" (78%)
"감사 인사도 없음" (71%)
"인정받지 못함" (76%)
교회 봉사 보상:
"감사 인사를 받음" (82%)
"인정과 칭찬" (76%)
"공동체의 환영" (73%)
"영적 보상 약속 (천국, 복)" (79%)
한 며느리는 이렇게 말했다. "명절 제사 준비하면서 하루 종일 일했어요. 끝나고 시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당연한 거니까요. '며느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근데 교회에서 봉사하면 달라요. '자매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자매님 덕분에 예배가 은혜로웠어요'라고 말해줘요. 똑같이 일했는데 한쪽은 당연하고, 한쪽은 감사예요."
또 다른 며느리는 이렇게 적었다. "시댁 제사 가면 보상이 뭔지 아세요? '며느리 구실 했네'예요. 이게 보상이에요. 하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천국에서 상이 있다'고 해요. 물론 그게 정말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한 일이 의미 있다고 인정해주는 거예요."
관계의 지속성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그의 저서 『Ritual』에서 의례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관계의 지속성"을 꼽는다. 의례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지속되느냐는 것이다.
[지갈라타스의 이론]
지갈라타스에 따르면, 의례가 성공적이려면 그 의례를 통해 형성된 관계가 영속적이어야 한다. "일시적 관계를 위한 의례는 힘이 약하다. 영원한 관계를 위한 의례가 강력하다."
시조부 제사는 어떤가? 한국 전통에서 제사는 4대까지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지내고, 그 이상은 지내지 않는다. 시조부(할아버지)는 2대이므로 제사를 지내지만, 며느리가 죽고 나면 그 며느리의 자녀들에게는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죽으면, 그 손자들에게는 고조할아버지가 된다. 4대가 지나면 제사가 끝난다.
연세대 사회학과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고조부 이상의 이름을 모른다"고 답했다. 4대가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며느리는 이렇게 적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해요. 지금 제가 시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는데, 결국 100년 후면 아무도 시할아버지를 기억 안 할 거예요. 제사도 안 지내고요. 그럼 이게 무슨 의미예요?"
반면 예수는 다르다. 예수와의 관계는 "영원"을 약속한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죽어도 천국에서 예수를 만난다. 관계가 끊나지 않는다.
온라인의 한 글이 이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시할아버지는 4대 후면 잊혀져요. 근데 예수님은 영원해요. 저도 죽고, 제 자식도 죽고, 제 손주도 죽어도 예수님은 계속 계세요. 천국에서 만난다고 하잖아요. 어느 쪽이 더 안정적인 관계예요? 당연히 예수님이죠."
투자 대 수익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4년 연구는 며느리들이 제사와 교회를 "투자 대비 수익"으로 계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며느리 1,000명에게 물었다. "제사와 교회에 각각 얼마나 투자하고, 무엇을 얻습니까?"
제사 투자:
시간: 명절당 평균 9시간
노동: 음식 준비, 설거지, 뒷정리
감정: 스트레스, 피로, 긴장
금전: 명절 비용 분담 (평균 25만원)
제사 수익:
"아무것도 없다" (78%)
"며느리 역할 완수" (71%)
"시댁의 미미한 인정" (32%)
교회 투자:
시간: 주당 평균 4시간 (예배 + 봉사)
노동: 자발적 봉사
감정: 위로, 평안, 소속감
금전: 헌금 (평균 월 12만원)
교회 수익:
"정서적 위로" (81%)
"공동체 소속감" (78%)
"영적 보상 약속 (천국)" (74%)
"사회적 관계 형성" (69%)
계산은 명확하다. 제사는 "고투자 저수익", 교회는 "적정투자 고수익"으로 인식된다.
온라인의 한 글은 이렇게 정리했다. "명절 제사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일해요. 받는 건 '며느리 구실 했네' 한마디. 근데 교회는요? 일요일 몇 시간 가면 '자매님 은혜로웠어요', '자매님 기도해줄게요', '우리 다음 주에 또 만나요'. 투자 대비 수익률이 너무 달라요."
구조는 같지만 대우가 다르다
시조부(시할아버지)와 예수는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둘 다 며느리 본인의 조상이 아니다. 시조부는 남편의 할아버지고, 예수는 2천 년 전 중동인이다. 둘 다 며느리와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둘 다 며느리가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이다. 둘 다 의례를 통해 숭배되고, 그 의례를 통해 공동체가 유지된다.
하지만 며느리가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시조부 제사에서 며느리는:
외부인으로 대우받는다
역할로 불린다 (며느리, 애 엄마)
선택권이 없다 (의무)
보상받지 못한다 (당연한 일)
관계가 유한하다 (4대 후 소멸)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투자 대비 수익이 낮다
예수 숭배에서 며느리는:
공동체 일원으로 환영받는다
이름으로 불린다 (○○ 자매님)
선택권이 있다 (자발적)
보상받는다 (감사, 인정, 영적 약속)
관계가 영원하다 (천국 약속)
소속감을 느낀다
투자 대비 수익이 높다
온라인의 한 며느리가 이렇게 정리했다. "시할아버지님과 예수님, 구조는 똑같아요. 둘 다 제 조상이 아니에요. 둘 다 못 본 분들이에요. 근데 하나는 저를 일꾼으로 대하고, 하나는 저를 가족으로 대해요. 하나는 저한테 의무를 주고, 하나는 저한테 선택을 줘요. 하나는 제가 뭘 해도 당연하고, 하나는 제가 뭘 해도 감사해요. 구조가 같다고 결과가 같은 건 아니에요."
며느리들은 계산한다. 구조적으로 동일한 두 대상 중에서, 어느 쪽이 자신을 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는지. 어느 쪽이 자신을 개인으로 인정하는지. 어느 쪽이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는지. 어느 쪽이 자신의 노동을 감사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선택한다. 시조부를 떠나 예수로.
그것이 제사를 거부하고 교회로 향하는 여성들의 합리적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