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명절이 두려운 이유
온라인 커뮤니티 '82쿡'에는 명절이 지나고 나면 비슷한 패턴의 글들이 올라온다. 명절 동안 겪은 고충을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가 돌아온 대답에 대한 토로들이다.
"시어머니한테 명절이 힘들다고 했더니 '나도 옛날엔 며느리였어'라고 하셨어요. 그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나도 참았는데 너도 참아야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왜 저한테도 똑같이 시키시는 건가요? 시어머니가 힘드셨으면 저는 안 그렇게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며느리들은 좋아졌는데 뭐가 힘들어'라고 하세요. 저는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말이에요."
이런 글들 아래에는 공감의 댓글들이 달린다. "우리 시어머니도 똑같은 말씀 하세요", "왜 고통을 대물림하려고 하시는 걸까요",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가끔씩, "저도 나중에 시어머니 되면 며느리한테 똑같이 할까봐 무서워요"라는 걱정도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4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며느리-시어머니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세대 간 인식 차이"였다. 특히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공감 부족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며느리는 이해받기를 원하는데, 시어머니는 "나도 그랬다"며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고, 결국 며느리는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한국가족학회가 2023년에 발표한 연구는 명절 갈등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언어 패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 3,000여 건을 수집하여 며느리들이 보고하는 시어머니의 말들을 유형화했다. 그 결과,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표현이 "나도 그랬다" 류의 말이었다.
[현재의 데이터]
한국가족학회, 『세대 간 명절 갈등 연구』 (2023)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주 하는 말 (중복 응답): "나도 옛날엔 며느리였다" (73%) "나도 그렇게 살았다" (68%) "요즘은 좋아졌다" (61%) "참는 게 미덕이다" (54%) "시집살이는 원래 그런 거다" (49%)
이런 말을 들은 며느리의 반응: "공감받지 못하는 느낌" (82%) "더 억울하다" (76%) "대화를 중단하게 된다" (71%) "시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된다" (68%)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글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글쓴이는 명절 동안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했다고 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설거지를 하고. 명절이 끝나고 시어머니께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나도 옛날엔 그렇게 살았어. 참아야지"였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렇게 적었다. "저는 위로받고 싶었어요. '힘들었구나', '고생했어'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건데, 돌아온 건 '나도 그랬으니 너도 참아라'였어요. 그게 위로인가요? 왜 제가 시어머니가 겪으셨던 고통을 똑같이 겪어야 하는 건가요?"
세대 간 다른 경험
흥미로운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지적되듯이, 시어머니 세대와 며느리 세대가 경험한 "며느리 역할"이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명희 교수팀이 2024년에 발표한 연구는 세대 간 며느리 경험의 맥락 차이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1960-70년대에 며느리 생활을 한 현재 70-80대 여성 50명과, 2020년대에 며느리 생활을 하고 있는 30-40대 여성 5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두 세대가 경험한 "며느리"의 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랐음이 드러났다.
1960-70년대 (현재 시어머니 세대가 며느리였을 때):
가족 구조: 대가족 제도가 일반적.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들과 함께 한 집에서 생활
경제 구조: 농경 사회 중심. 가사노동이 생계와 직접 연결됨. 집안일이 곧 경제 활동
교육 수준: 여성 평균 교육 연한 6.2년 (초등-중등 수준)
경제활동: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37% (주로 농업, 가내 수공업)
사회 인식: "며느리는 참는 게 미덕"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 지배적
2020년대 (현재 며느리 세대):
가족 구조: 핵가족 제도. 시댁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별도 거주
경제 구조: 도시 산업 사회. 가사노동과 생계 활동이 분리됨
교육 수준: 여성 대학 진학률 74% (남성과 동일 수준)
경제활동: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53%, 맞벌이 가구 비율 46%
사회 인식: "평등한 가족 관계", "부부 중심 가족"이라는 가치관 확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맥락 차이를 지적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한 글쓴이는 이렇게 분석했다. "시어머니 세대는 대가족에서 함께 살았잖아요. 시누이들이 여럿 있었고, 다같이 음식을 준비했어요. 일은 힘들었어도 혼자는 아니었던 거죠. 근데 저는 어떤가요? 명절 음식 준비를 혼자 해요. 시누이는 결혼해서 각자 시댁 가고, 저만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같은 '며느리'라는 이름이지만,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 왜 똑같이 참으라고 하시는 걸까요?"
또 다른 글에서는 경제활동의 차이를 지적했다. "시어머니 세대는 집안일이 곧 일이었잖아요. 농사짓고, 김장하고, 된장 담그고, 그게 다 경제활동이었어요. 근데 저는 직장 다녀요. 월급 받아서 생활하는데, 명절에 하루 종일 음식 만드는 게 제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나요? 오히려 휴가 써서 와야 하는 건데."
"나도 참았는데"의 논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대화 패턴이 있다. 며느리가 명절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시어머니는 "나도 옛날엔 며느리였어. 나도 참았는데"라고 답한다. 그러면 며느리는 "그럼 왜 저한테도 똑같이 시키세요? 시어머니가 힘드셨으면 저는 안 그렇게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이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다. 왜일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미경 박사가 2024년에 발표한 연구는 이 현상을 "공정성 개념의 세대 차이"로 분석한다. 이 박사는 1960년대생 여성 30명과 1980-90년대생 여성 30명을 대상으로 "공정한 며느리 역할"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두 세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공정성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시어머니 세대 (1960년대생)의 공정성: "나도 했으니 너도 해라" (평등한 고통 분담)
"내가 며느리 때 고생했으니, 네가 며느리 때도 고생하는 게 공정하다"
"세대마다 똑같이 겪어야 평등하다"
"나만 고생하고 너는 안 하면 불공평하다"
며느리 세대 (1980-90년대생)의 공정성: "힘들었으면 개선해야지" (진보적 개선)
"시어머니가 고생하셨으면, 며느리는 덜 고생하게 해주는 게 공정하다"
"세대가 지날수록 나아져야 한다"
"과거의 고통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게 공정하다"
이 박사는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두 세대는 '공정성'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정반대다. 시어머니 세대에게 공정성은 '동일한 경험의 공유'를 의미한다. 반면 며느리 세대에게 공정성은 '지속적인 개선'을 의미한다. 이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좌절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시어머니가 '나도 시집와서 30년 참았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게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30년을 참으셨으면, 며느리는 1년도 참지 않게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30년 참았으니 너도 30년 참으라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가요."
대물림되는 고통
의례 연구자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그의 저서 『Ritual』에서 의례의 세대 간 전승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그는 의례가 어떻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지갈라타스의 이론]
지갈라타스에 따르면, 의례의 세대 간 전승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건강한 의례의 전승:
의미와 가치가 함께 전달된다
"왜 이 의례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동반된다
다음 세대가 기꺼이 받아들인다
시대 변화에 맞춰 의례가 변형될 수 있다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유대가 강화된다
병든 의례의 대물림:
의미는 사라지고 고통만 전달된다
"왜"에 대한 설명 없이 "해야 한다"만 강요된다
다음 세대가 거부감을 느낀다
변화가 불가능하며 "원래 그런 것"으로 고착된다
의례가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지갈라타스는 특히 "병든 의례의 대물림"에 대해 경고한다. "고통을 대물림하는 의례는 이미 죽은 의례다. 그것은 더 이상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한다. 다음 세대는 그런 의례를 결국 거부할 것이다. 거부하지 못하면, 그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거나, 그 공동체를 떠날 것이다."
한국의 명절 제사를 이 이론으로 보면, 전형적인 "병든 의례의 대물림"에 해당한다. 시어머니 세대가 경험한 고통이, 의미에 대한 설명 없이 그대로 며느리 세대에게 전달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원래 그런 거니까", "전통이니까"뿐이다. 며느리들이 "왜 제가 이걸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며느리니까", "나도 그랬으니까"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현상을 정확히 포착한 글들이 있다. "시어머니한테 '왜 명절에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나요?'라고 물었어요. 시어머니 대답이 '원래 그런 거야'였어요. 제가 '왜 원래 그런 건가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옛날부터 그랬으니까'래요. 아무런 의미 설명 없이 그냥 '해야 한다'만 말씀하세요. 그게 전통이래요."
또 다른 글에서는 이런 토로가 있었다. "제사의 의미가 뭔지 아무도 설명 안 해줘요.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는 하는데, 그럼 왜 며느리만 부엌에 있어야 하는지, 왜 딸은 제사에 못 오는지, 이런 건 설명이 없어요. '원래 그런 거'만 반복하세요.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어요."
"요즘은 좋아졌다"는 착각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며느리들이 자주 보고하는 또 다른 시어머니의 말이 있다. "요즘은 좋아졌어. 옛날보다 훨씬 편해졌는데 뭐가 힘들어."
한국가족학회 연구에 따르면, 시어머니의 61%가 "요즘 며느리는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이라 시부모 눈치 안 봐도 된다", "전기밥솥,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이 많아 일이 수월하다", "시부모와 따로 살아서 자유롭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며느리들의 인식은 달랐다. 같은 연구에서 며느리의 82%는 "여전히 힘들다"고 답했다. "오히려 더 힘들다"는 응답도 34%나 되었다.
이 간극은 어디서 오는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 비교 기준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어머니의 비교 기준: 1970년대 대가족 시절 vs 2020년대 핵가족
"옛날엔 시부모님, 시누이들과 같이 살았는데 지금은 따로 살잖아"
"옛날엔 손으로 다 했는데 지금은 기계가 있잖아"
"옛날엔 명절에 친척이 20명씩 왔는데 지금은 몇 명 안 오잖아"
며느리의 비교 기준: 남편의 노동 vs 자신의 노동
"남편은 거실에서 TV 보는데 저는 부엌에서 일해요"
"남편은 명절에 쉬는데 저는 일하는 날이에요"
"같은 부부인데 왜 역할이 이렇게 다른가요"
온라인의 한 글은 이 차이를 명확하게 포착했다. "시어머니는 '대가족에서 함께 살던 시절'과 비교하세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하시죠. 근데 저는 '평등한 부부 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해요. 제 남편과 비교하는 거예요. 같은 며느리인데 저는 왜 하루 종일 일하고 남편은 왜 쉬는지,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우리는 서로 다른 걸 보고 있는 거예요."
또 다른 글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시어머니가 '예전엔 더 힘들었다'고 하세요. 대가족이라 더 많은 사람 음식 해야 했고, 기계도 없어서 다 손으로 했다고. 그건 맞아요. 근데 저는 그런 비교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비교하는 건 '남편은 왜 안 하는데'예요. 같은 2020년대를 살면서, 왜 명절에 저만 일하고 남편은 쉬는지, 그게 공평한지를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는 질문 자체가 다른 거죠."
공감의 부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4년에 실시한 대규모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며느리 1,200명을 대상으로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물었다. 1위는 "명절 고충에 대한 공감"으로 78%가 선택했다. 이는 "실질적 도움"(64%), "간섭하지 않기"(51%)보다 높은 수치였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물리적 도움이 아니라 감정적 공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공감과는 거리가 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말:
"나도 그랬다" → 공감이 아니라 비교
"참아야지" → 해결책이 아니라 강요
"요즘은 좋아졌다" → 고충을 부정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공감의 부재를 토로하는 글들이 반복적으로 올라온다. 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어머니한테 공감받고 싶어요. 거창한 거 아니에요. 그냥 '힘들었구나', '고생했어' 이 한마디만 들어도 힘이 날 것 같아요. 근데 시어머니한테 명절이 힘들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이 항상 똑같아요. '나도 그랬어', '참아라', '요즘은 좋아진 거야'. 제 얘기를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자기 얘기만 하세요."
또 다른 글에서는 더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명절이 끝나고 시어머니한테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했어요. 시어머니 반응이 뭐였는지 아세요? '힘들긴. 요즘은 식기세척기도 있잖아. 나 때는 그것도 없었어.' 제가 힘들다고 하는데, 시어머니는 '너보다 내가 더 힘들었어'로 받아치는 거예요. 제 힘든 마음을 이해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더 힘들었다고 경쟁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아예 말을 안 해요.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하니까."
악순환의 고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끔 이런 고민이 올라온다. "저도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한테 똑같이 할까봐 무서워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한국가족학회 연구에 따르면, "나도 참았는데" 류의 말은 오히려 세대 간 단절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말을 들은 며느리들의 반응:
대화를 중단하게 된다 (71%)
시어머니와 심리적 거리를 두게 된다 (68%)
명절 방문을 꺼리게 된다 (64%)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59%)
온라인의 한 글은 이런 악순환을 잘 보여준다. "시어머니한테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뭘 말씀드려도 '나도 그랬어'만 반복하시니까. 그래서 이제는 아예 얘기 안 해요. 명절에 힘들어도 그냥 참아요.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니까요. 명절도 최소한만 가고, 가서도 대화 안 하고, 빨리 집에 오려고만 해요. 시어머니랑 정서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에요."
지갈라타스의 경고처럼, 고통을 대물림하는 의례는 결국 붕괴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
시어머니 → 며느리: "나도 참았으니 너도 참아라"
며느리 → 좌절과 거부감 형성
며느리 → 제사 중단 또는 최소화
며느리 → 대안 공동체 찾기 (예: 교회)
온라인에는 이런 결말을 보여주는 글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나도 30년 참았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세요. 근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30년은커녕 1년도 참기 싫어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제사 안 하기로요. 교회 다니면 명절에 안 가도 되잖아요. 시어머니는 제가 신앙심이 생겨서 교회 간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진짜 이유는 달라요. 그냥 시댁 제사가 싫어서예요."
고통의 대물림은 결국 의례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며느리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제사가 아닌 교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