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명절이 두려운 이유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에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글들이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구실 했다'고 하셨는데 기분이 이상해요."
"명절 끝나고 받은 말이 '며느리 구실'이래요."
"며느리 구실 했다는 게 칭찬인가요, 평가인가요?"
이런 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명절 동안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설거지를 하고, 조카들을 돌본 뒤에 받은 말이 "며느리 구실 했네"라는 것. 그리고 이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명절 음식 준비에 투입되는 평균 시간은 며느리 14.2시간, 아들 0.8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평가는 성별에 따라 극명하게 달랐다.
"며느리 구실"이라는 평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질문이 있다.
"며느리 구실 했다는 말, 이게 칭찬인가요?"
한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명절 동안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명절이 끝나고 시어머니가 친척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며느리 구실 잘 했네."
글쓴이는 이렇게 적었다. "저한테 직접 하신 말씀도 아니고, 친척들한테 하시는 말을 제가 우연히 들었어요. 그런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칭찬인데 왜 이렇게 이상할까요?"
댓글들이 달렸다.
"며느리 구실 =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뜻이에요."
"칭찬이 아니라 평가예요. 합격/불합격 판정."
"감사가 아니라 평가입니다."
"아들은 뭘 해도 '효자'인데, 며느리는 뭘 해도 '구실'이에요."
같은 행위, 다른 평가
한국가족학회의 2024년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명절 가사노동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평가를 분석했는데, 성별에 따라 평가 언어가 완전히 달랐다.
[현재의 데이터]
한국가족학회, 『명절 가사노동 평가 연구』 (2024)
며느리가 명절 음식 준비 시: "며느리 구실 했다" (68%)
아들이 명절 음식 도움 시: "효자다" (84%)
며느리가 선물 구입 시: "당연하다" (52%)
아들이 선물 구입 시: "효자다", "착하다" (89%)
며느리에 대한 긍정 평가 언어: "구실", "잘했다" (역할 평가)
아들에 대한 긍정 평가 언어: "효자", "착하다" (정체성 부여) (1)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비교가 자주 등장한다.
"저는 명절 내내 일했는데 '며느리 구실'이고, 시동생은 과일 한 박스 사왔는데 '효자'래요."
"시동생은 몇 시간 있다 가도 '효자', 저는 하루 종일 일해도 '구실'."
같은 행위를 해도 평가의 언어가 다르다. 며느리의 노동은 "구실" (역할 수행)로 평가되고, 아들의 기여는 "효자" (정체성)로 인정받는다.
"구실"이라는 단어의 의미
국어사전에서 "구실"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구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역할이나 임무."
예문: "그는 회장 구실을 제대로 못 했다."
언어학자들은 "구실"이라는 단어가 대상을 기능화, 도구화한다고 지적한다.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수행하는 역할을 평가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표현이 며느리에게만 유독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며느리 구실"은 자주 보이지만, "아들 구실 했네", "남편 구실 했네"라는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커뮤니티 회원은 이렇게 적었다.
"왜 며느리에게만 '구실'이라는 단어를 쓸까요? 저는 사람인데, 왜 제 존재가 '구실'로만 평가받는 걸까요?"
보상 없는 노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명절 후 이런 글들이 올라온다.
"명절 노동 시간을 재봤어요. 하루 종일 일했는데 받은 건 '수고했어' 한마디."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인정받는 느낌이 안 들까요?"
"시댁에서는 아무도 감사합니다 안 해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며느리의 평균 명절 노동 시간은 14.2시간이다.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보상은 "며느리 구실 했네"라는 평가 한마디인 경우가 많다.
더 흥미로운 건 비교다.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있다.
시동생의 경우: 명절에 잠깐 방문, 과일이나 선물 구입 → "우리 아들 효자네", "착하다"
며느리의 경우: 명절 내내 음식 준비와 설거지 → "며느리 구실 했네"
한 커뮤니티 회원은 이렇게 계산했다.
"시동생은 몇 시간 있다가 선물 하나 사오면 '효자'. 저는 하루 종일 일해도 '구실'. 투자 대비 수익률로 치면 완전히 불공정해요."
의례 이론으로 보는 "보상"의 의미
의례 연구자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그의 저서 『Ritual』에서 의례 참여자가 기대하는 보상에 대해 말한다.
[지갈라타스의 이론]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형태의 보상을 기대한다:
사회적 인정 (Social Recognition): 공동체로부터의 감사와 존경."당신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정체성 부여 (Identity Formation): 긍정적 자아상의 형성."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관계 강화 (Relationship Bonding): 공동체와의 유대감. 소속감과 연결성."우리는 하나다"
지갈라타스는 강조한다. "의례가 참여자에게 이 세 가지 보상을 제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의례를 떠난다. 보상이 없는 의례는 더 이상 의례가 아니라 착취다."
명절 제사라는 의례에서 며느리는 이 중 무엇을 받는가?
사회적 인정 : "며느리 구실 했다" → 감사가 아니라 평가
정체성 부여 : "며느리" → 정체성이 아니라 역할
관계 강화 : 부엌에 혼자 격리 → 소속감 없음
세 가지 모두 제공되지 않는다.
칭찬과 평가의 차이
언어에는 힘이 있다.
"며느리 구실 했네"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평가다.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판정.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심사.
후자는 감사다. "당신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인정.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존중.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제가 원하는 건 평가가 아니에요. 인정이에요. '며느리 구실 했네'가 아니라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명절이었어요'를 듣고 싶어요. 근데 시댁에서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교회에서 듣는 다른 언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패턴이 있다. 교회 봉사와 명절 제사를 비교하는 글들이다.
"교회에서 주방 봉사하면 목사님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세요. 교인들이 박수쳐요.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요."
"시댁에서는 아무도 '감사합니다' 안 해요. '며느리 구실' 한마디가 끝이에요."
"교회는 '봉사자'로 인정받는데, 시댁은 '며느리 구실'만 평가받아요."
서울대 사회학과 2024년 연구에 따르면, 명절 제사 준비와 교회 주방 봉사의 노동 시간은 비슷했지만, 참여 후 만족도는 크게 달랐다.
제사 준비 후 만족도: 2.1점 (5점 만점)
교회 봉사 후 만족도: 4.3점 (5점 만점)
노동의 양은 비슷하다. 하지만 받는 언어가 다르다. 그리고 그 언어의 차이가 만족도의 차이를 만든다.
지갈라타스의 말처럼, 의례는 참여자에게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인정, 정체성 부여, 관계 강화. 이 중 하나라도 제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의례를 떠난다.
떠나는 며느리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늘도 이런 글들이 올라온다.
"며느리 구실 했대요. 기분이 나쁜 게 이상한 건가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칭찬이 '구실'이래요."
"시동생은 과일 하나로 효자, 저는 하루 종일 일해도 구실."
"더 이상 못 하겠어요. 명절 안 가고 싶어요."
그리고 가장 많이 달리는 답변 중 하나가 이것이다.
"교회 다니세요. 거기선 적어도 '구실'이 아니라 '감사합니다' 들어요."
명절 제사가 며느리에게 제공하는 것 :
사회적 인정 (X) → "구실" = 평가
정체성 부여 (X) → "며느리" = 역할
관계 강화 (X) → 부엌에 혼자
감사없는 의례.
며느리들은 안다.
그래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