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무사유의 전염과 시민의 붕괴
세 가지 경로
아이히만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치 독일 전체가 그와 같았다. SS 장교들, 관료들, 철도 노동자들, 일반 시민들. 수백만 명이 학살에 협력했다.
왜? 모두가 악마였기 때문인가? 아니다. 무사유가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혼자가 아니다. 검찰 조직, 관료제, 군대, 교육 시스템, 미디어. 한국 사회 전체에 무사유가 퍼져 있다.
어떻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첫째, 조직 문화를 통한 전염.
둘째, 교육 시스템을 통한 전염.
셋째, 미디어를 통한 전염.
1. 조직 문화를 통한 전염
상명하복이 사유를 제거한다
20장에서 보았듯이, 검찰 조직은 27년 동안 윤석열을 만들었다. 어떻게? 상명하복 문화를 통해서.
상명하복 구조에서는 세 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 질문이 사라진다. "왜?"라고 묻는 것은 불복종으로 간주된다. 명령을 받으면 수행할 뿐이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둘째, 판단이 외주화된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상급자가 판단한다. 나는 따를 뿐이다.
셋째, 책임이 분산된다. 잘못된 결과가 나와도 "나"의 책임이 아니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반복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유 능력이 퇴화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조직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아야 조직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승진 시스템이 순응을 보상한다
조직 문화를 강화하는 것은 승진 시스템이다.
누가 승진하는가? 질문하는 자? 아니다. 순응하는 자다.
누가 배제되는가? 저항하는 자? 맞다. 조직을 비판하는 자다.
검찰만 그런가? 아니다. 대기업도 같다. 군대도 같다. 관료제도 같다.
순응하면 승진한다. 저항하면 좌천된다. 이 규칙이 명확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생각을 멈춘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 조직의 논리를 내재화한다.
그리고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무사유가 자동화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조직의 언어를 쓴다. 절차적 사고가 몸에 배인다.
저항의 배제가 무사유를 고착시킨다
임은정 검사는 무죄를 구형했다. 결과는? 4개월 정직.
박병규 검사는 임은정을 지지했다. 결과는? 검사 적격심사 탈락.
메시지는 명확하다. "생각하지 마라. 조직을 따라라."
이 메시지가 조직 전체에 퍼지면, 사람들은 학습한다. 생각하면 배제된다. 따르면 살아남는다.
그리고 배제된 자들이 떠나면? 남은 자들은 모두 순응하는 자들이다. 조직은 점점 더 균질화된다. 무사유는 점점 더 강화된다.
필립 짐바르도가 말한 "시스템의 자기 강화(self-reinforcing system)"다.¹ 나쁜 통은 저절로 더 나빠진다. 사유하는 자를 배제하고, 무사유하는 자만 남기기 때문이다.
2. 교육 시스템을 통한 전염
암기가 사고를 대체한다
한국 청소년의 주당 학습시간: 49.4시간.
OECD 평균: 33.9시간. 차이: 15.5시간.²
한국 학생들은 OECD 평균보다 15.5시간을 더 공부한다. 일주일에 이틀치 공부를 더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학생들은 더 잘 생각하는가? 더 창의적인가?
아니다.
무엇을 하는가? 암기한다. 정답을 찾는다. 문제를 푼다.
"한정된 시간 내에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암기식 교육이 뒤따른다. 학생의 생각과 의견이 아닌 정해진 정답이 중요한 시험 체제에서는 정답을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게 된다."³
이범 교육평론가는 말했다. "난중일기를 아는 사람은 많은데 읽어본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읽고 생각하게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⁴
암기는 사고를 대체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냥 외운다. 시험에 나오니까.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주입식 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
"학생의 흥미, 의욕, 능력, 이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정한 소정의 교육내용을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교수법."⁵
교사가 칠판에 적는다. 학생이 받아 적는다. 교사가 설명한다. 학생이 듣는다. 일방향이다.
질문은? 없다. 토론은? 없다. 비판은? 없다.
"주입식 교육은 당연히 창의성에 해를 준다. 그 이유는 무턱대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외워야 되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비판적, 논리적 사고와 호기심,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잘 작동하는데, 주입식 교육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⁶
학생들은 12년 동안 무엇을 배우는가?
정답을 찾는 법.
교사의 말을 받아 적는 법.
질문하지 않는 법.
생각하지 않는 법.
그리고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고, 조직의 일원이 된다. 무사유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경쟁이 협력을 파괴한다
한국 청소년 삶의 만족도: 6.36점 (10점 만점).
OECD 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낮음.⁷
한국 청소년 33.8%: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 1위: 학업 문제 (37.2%).⁸
청소년 사망 원인 1위: 자살 (2012년 통계).⁹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가? 경쟁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앞서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경쟁 구조에서는 협력이 불가능하다. 친구는 경쟁자다. 도움은 나의 손해다. 성공은 제로섬이다.
그리고 경쟁만 하면, 사유는 불가능하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성찰할 여유가 없다. 달려야 한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점수를 받아야 한다.
12년간의 경쟁. 사유는 사치다. 생존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조직에 들어간다. 무사유는 이미 체화되어 있다. 경쟁과 순응. 이것이 그들이 배운 전부다.
정답 찾기가 사고 확장을 막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창의적·융복합적 사고가 중요해짐에도 중등교육에서 토론식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맞혀 좋은 대학에 가려면 토론보다는 문제풀이가 더 효과적이다."¹⁰
정답이 있다. 하나뿐이다. 찾아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사고가 확장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 필요 없다. 비판적 질문? 시간 낭비다. 창의적 해결책? 위험하다. 정답만 찾으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12년 동안 반복되면?
뇌가 재구성된다. "정답 찾기" 모드로만 작동한다. "왜?"라고 묻지 않는다. "맞나?"만 묻는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시민이 되면? 정치인의 말을 듣고 "왜?"라고 묻지 않는다. "맞나?"만 묻는다. 누가 정답인지 찾는다.
사유하는 시민이 아니라, 정답을 찾는 수험생이 된다.
3. 미디어를 통한 전염
알고리즘이 사고를 대체한다
2020년대, 사람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는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클릭한 것. 내가 동의하는 것.
결과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본다. 다른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 의견은 차단된다.
필립 짐바르도는 디지털 시대의 위험을 경고했다. "알고리즘은 생각을 외주화한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생각할지 알고리즘이 결정한다."¹¹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을 본다. 알고리즘이 선택한 것을 믿는다.
사유는 외주화된다. 플랫폼에게.
익명성이 책임을 제거한다
SNS의 특징은 무엇인가? 익명성이다.
실명이 아니어도 된다. 아이디만 있으면 된다. 누구인지 몰라도 된다.
익명성이 주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증명되었다. 간수들에게 선글라스를 씌우자 폭력이 증가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까.¹²
SNS도 같다. 익명으로 댓글을 단다. 비난한다. 공격한다. 결과는? 책임 없음.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학습한다. 익명으로는 무엇을 해도 된다.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탈인간화가 디지털로 전환된다. 화면 너머의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아이디"다. "계정"이다. "대상"이다.
속도가 숙고를 파괴한다
SNS의 또 다른 특징은 속도다.
실시간이다. 즉각 반응해야 한다. 빠르게 공유해야 한다. 순식간에 퍼진다.
숙고할 시간이 없다. 팩트를 확인할 여유가 없다. 비판적으로 검토할 틈이 없다.
보자마자 반응한다. 읽자마자 공유한다. 듣자마자 믿는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사유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¹³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멈출 수 없다. 피드는 계속 흐른다. 알림은 계속 온다. 콘텐츠는 계속 업데이트된다.
멈추면 뒤처진다. 생각하면 느려진다. 따라가야 한다.
사유는 불가능해진다.
디지털 군중심리
한 명이 글을 올린다. 열 명이 공유한다. 백 명이 댓글을 단다. 천 명이 동의한다.
군중심리가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속도는 더 빠르고, 규모는 더 크고, 영향은 더 광범위하다.
그리고 군중 속에서는 개인이 사라진다. "나"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이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다들"의 의견이다.
르봉(Gustave Le Bon)은 1895년에 이미 경고했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사유 능력을 잃는다."¹⁴
2020년대의 SNS는 르봉의 경고를 실현하고 있다. 디지털 군중 속에서, 수백만 명이 사유 능력을 잃는다.
무사유의 대중화
조직 문화가 무사유를 만든다. 27년간.
교육 시스템이 무사유를 훈련시킨다. 12년간.
미디어가 무사유를 강화한다. 매일.
그리고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무사유의 대중화.
아이히만은 특별하지 않았다. 나치 독일 전체가 무사유했다.
윤석열도 특별하지 않다. 한국 사회 전체가 무사유하고 있다.
전염의 속도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의 속도다.
조직 문화는 천천히 전염된다. 27년이 걸린다.
교육 시스템도 천천히 전염된다. 12년이 걸린다.
하지만 미디어는? 즉각 전염된다. 하루면 충분하다.
가짜뉴스가 올라온다. 몇 시간 만에 수만 명이 본다. 몇 명이 팩트체크를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수십만 명이 믿었다.
무사유는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빠르게. 광범위하게. 통제 불가능하게.
악의 평범성의 대중화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한 사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악의 평범성이 대중화되고 있다.
조직은 무사유를 생산한다.
교육은 무사유를 훈련시킨다.
미디어는 무사유를 증폭시킨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 BN 유형이 된다. 나쁜 통 × 무사유.
윤석열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그를 만든 시스템이 문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매일. 곳곳에서.
멈춰야 한다
무사유의 전염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상명하복을 해체해야 한다. 질문을 장려해야 한다. 저항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암기에서 사고로. 정답 찾기에서 질문하기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해야 한다. 알고리즘을 의심해야 한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각성이다. "나"는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질문하고 있는가? "나"는 판단하고 있는가?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사유다."¹⁵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마라. 교육이 강요하는 정답을 찾지 마라.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만 보지 마라.
멈춰라. 생각하라. 질문하라.
그것만이 무사유의 전염을 막는 길이다.
참고문헌
1. Philip Zimbardo, 『The Lucifer Effect』, 2007, p.445
2.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 학습시간 통계, 2011
3. 한국대학신문, "암기식·주입식 교육으로 생각의 사고 확장 어려워", 2017.4.3
4. 이범 교육평론가, 한국대학신문 인터뷰, 2017.4.3
5. 나무위키, "주입식 교육"
6. 나무위키, "주입식 교육"
7. OECD, 학생 삶의 만족도 조사, 2015
8.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 자살 충동 통계, 2018
9. 통계청, 청소년 사망 원인 통계, 2012
10. 한국대학신문, 2017.4.3
11. Philip Zimbardo, 디지털 시대 관련 강연 (개념적 인용)
12. Philip Zimbardo, 『The Lucifer Effect』, 2007, p.210-213
13.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1978, p.4
14. Gustave Le Bon, 『The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 1895
15.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1978,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