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무사유의 전염과 시민의 붕괴
네 개의 나쁜 통
검찰만 그런가? 아니다.
행정부도 같다. 언론도 같다. 법원도 같다. 교육계도 같다.
모두 같은 구조다. 모두 같은 승진 시스템이다. 모두 같은 무사유 문화다.
나쁜 통은 하나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다. 그리고 서로를 닮아간다.
1. 행정부: "충성심"이 평가 기준이다
승진에는 16년이 걸린다
2025년 서울신문이 입수한 인사혁신처 자료. '행정부처별 평균 승진 소요 연수'.¹
5급에서 4급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
정부 전체 평균: 9년 3개월
특허청: 16년 4개월
기획재정부: 13년 4개월
국민권익위원회: 13년 5개월
16년. 사람 하나의 청춘이다. 20대에 입사해서 40대가 되어야 승진한다.
병무청은 5년 3개월. 질병관리청은 5년 6개월. 같은 공무원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윗자리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인사적체.
인사적체가 심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승진을 포기한 이들은 대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어버린다."²
10년을 기다려도 승진 못 하면, 사람들은 생각을 멈춘다. 어차피 안 되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자.
무사유의 또 다른 경로다.
"국가관, 충성심, 신망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승진 기준이다.
국가공무원법 제40조. 승진 기준: "근무성적평정·경력평정, 그 밖에 능력의 실증에 따름."³
여기서 "그 밖에 능력의 실증"이란 무엇인가?
인사혁신처 홈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나온다:
"기타 경력, 인품(국가관, 충성심, 신망도 등), 다자녀 양육, 포상 등 국가에 기여 여부."⁴
국가관. 충성심. 신망도.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직에 순응하는가? 상급자에게 충성하는가? 문제 제기하지 않는가?
20장에서 본 검찰의 승진 기준과 똑같다.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행정부도 검찰도 같다. 충성심이 승진 기준이다.
적극행정 vs 소극행정
최근 들어 정부는 "적극행정"을 장려한다고 한다.
적극행정 우수공무원: 포상, 성과연봉제 가점, 승진 우대. 소극행정: 신고제도, 처분기준, 감사 강화.⁵
하지만 무엇이 적극행정이고 무엇이 소극행정인가?
선례를 따르면 소극행정? 새로운 시도를 하면 적극행정?
아니다. 현실은 다르다. "상급자가 원하는 것"이 적극행정이다. "상급자가 원하지 않는 것"이 소극행정이다.
결국 판단 기준은 상급자다. 시민이 아니다. 정의가 아니다.
27년간 이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검찰처럼 BN 유형이 된다. 나쁜 통 × 무사유.
2. 언론: 오너와 광고주의 통
기사를 쓴 기자도 모르게 기사가 사라진다
언론은 어떤가? 독립적인가? 자유로운가?
한국언론진흥재단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오너는 실질적으로 언론사를 지배한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되면 오너를 지키기 위해 기사를 뒤집기도 하고 이미 내보냈던 기사를 삭제하기도 한다."⁶
"기사를 쓴 기자도 모르게 기사를 날리고 광고를 받아 챙기는 언론사도 있다."⁷
기자가 쓴 기사. 팩트를 확인하고, 취재원을 만나고, 밤새워 쓴 기사. 데스크가 "위에서 내려온 지시"로 삭제한다. 기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왜? 오너 때문이다. 광고주 때문이다.
1999년 9월 30일, 대검찰청 로비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
1999년 9월 30일 아침. 중앙일보 기자 40여 명이 대검찰청 로비에 도열했다.
홍 사장이 차에서 내리자 외쳤다. "사장님, 힘내세요."⁸
중앙일보 기자들로 구성된 '언론장악 음모 분쇄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태의 본질은 중앙일보 흠집 내기를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음모."⁹
기자들이 사장을 응원한다. 기자들이 사장을 보호한다. 이들은 누구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가?
시민인가? 진실인가? 아니다. 오너다.
광고와 기사의 거래
"국내 언론의 경우에는 심지어 오피니언국, 편집국, 광고국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현실이 이미 오래되었다. 다시 말해 광고주들의 눈치를 보며, 광고 집행에 따라 오피니언 및 뉴스 보도가 거래되는 문제가 대놓고 발생하는 것이다."¹⁰
2015년 매일경제신문 vs 한국경제신문.
한국경제 골프대회에 비씨카드 후원. 그런데 매일경제가 비씨카드 비판 기사 쏟아냄. 한국경제는 매일경제 계열사 MBN의 약탈적 광고 영업 비판.¹¹
기사가 광고와 연동된다. 돈이 논조를 결정한다.
기자는 어디 있는가? 진실은 어디 있는가?
데스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무위키 "기자" 항목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름 큰 꿈을 품고 신문사에 입사한 기자들이라 할지라도 그 처지는 기껏 쓴 기사는 데스크(편집부)에 의해 멋대로 잘리는 등 높으신 분들에게 좌지우지되는 미생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¹²
기자가 쓴다. 데스크가 자른다. 오너가 결정한다. 광고주가 압력을 넣는다.
기자는 생각할 수 없다. 판단할 수 없다. 따를 뿐이다.
27년간 이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BN 유형이 된다.
3. 법조: 승진과 독립성의 모순
"법관 인사의 꽃"
2018년 2월 2일. 대법원이 마지막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헤럴드경제 보도: "'법관 인사의 꽃'이라고 불렸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인사가 마지막으로 단행됐다."¹³
법관 인사의 꽃? 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법원장과 대법관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권력의 정점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선 재판부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고 판결한다는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으로 고등부장 승진제가 지목되기도 했다."¹⁴
판사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¹⁵
하지만 승진이 있으면? 인사권자가 있으면? 독립이 불가능하다.
나무위키 "판사" 항목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때문에 독립성이 요구되는 법관에게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게 만들어, 법원 내 수직적인 서열구조를 만들고, 법관의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¹⁶
2020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위가 폐지되었다. 승진 대신 "지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승진 욕구는 사라졌는가? 인사권은 여전히 대법원장에게 있다. 법원장은 여전히 2년에 한 번 물갈이된다.¹⁷
구조는 남아 있다.
법원장 순환보직제
2018년 인사에서도 "법원장 순환보직제"가 유지되었다. 법원장 6명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복귀.¹⁸
법원장을 했다가 다시 일선 판사로? 왜?
정년을 채우기 위해서다. 법원장 임기가 끝나도 정년까지 남았으면, 다시 내려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법원장도 "직위"일 뿐이라는 것. 승진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권력 구조는 있다.
그리고 판사들은 학습한다. 법원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대법원장의 의중을 살펴야 한다고.
27년간 이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어떻게 되는가?
4. 교육: 평정자에게 충성하라
200점 만점
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몇 점이 필요한가?
교육공무원 승진규정 제40조. 교감 승진후보자: 200점 만점.¹⁹
구성:
경력평정 (20년치)
근무성적평정 (100점)
연수성적평정
가산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근무성적평정 100점.
누가 평정하는가?
근무성적평정점: 평정자(교감) 40점 + 확인자(교장) 20점 다면평가점: 40점²⁰
평정자는 교감이다. 확인자는 교장이다.
즉, 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현재 교감과 교장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승진은 상급자가 결정한다
법률상식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체 교원 중에서 약 2.5%의 교원만 교장이 된다는 점에서 교장은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고 업무적 능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춰야만 될 수 있는 자리이다."²¹
2.5%. 40명 중 1명.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이 경쟁의 핵심은? 평정자와 확인자의 점수.
교감이 40점을 준다. 교장이 20점을 준다. 이 60점이 승진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교감의 눈치를 본다. 교장의 의중을 살핀다.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한다.
학생을 위한 교육? 그것은 나중이다. 일단 점수를 받아야 한다.
4대 비위
법원 판결은 이렇게 말한다:
"미성년의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13년 경력의 초등학교 중견 교사가 상급자인 교장에게 사회적으로 정당시되지 않는 사유로 금품을 제공한 것이고, 이로 인해 견책의 징계처분을 받은 것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교감승진임용에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심사와 평가에 있어서는, 그러한 행위가 사회통념상 결코 가벼운 비위라고는 할 수 없다."²²
교사가 교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왜? 승진 때문이다.
13년 경력의 중견 교사. 13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하지만 승진을 위해서는 교장에게 금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스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승진 구조가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27년간 이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BN 유형이 된다.
5. 공통 패턴: 나쁜 통의 자기 재생산
순응을 보상한다
네 개의 조직. 행정부, 언론, 법조, 교육.
모두 다르다. 업무가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구조는 같다.
첫째, 순응을 보상한다.
행정부: 충성심이 승진 기준.
언론: 오너에게 충성하는 기자가 데스크가 된다.
법조: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는 판사가 법원장이 된다.
교육: 평정자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교사가 교감이 된다.
둘째, 저항을 배제한다.
20장에서 본 임은정 검사, 박병규 검사. 조직을 비판하면 적격심사 탈락.
언론도 같다. 기자가 데스크 방침에 반대하면? 좌천된다.
법원도 같다. 판사가 대법원장 방침에 반대하면? 승진 못 한다.
교육도 같다. 교사가 교장 방침에 반대하면? 평정 점수가 낮아진다.
셋째, 무사유를 학습시킨다.
27년간 이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사람은 변한다.
처음에는 정의로운 생각이 있었다. 비판적 질문이 있었다. 개혁의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생각을 멈춘다. 질문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만 한다.
왜? 생각하면 손해다. 질문하면 배제된다. 순응해야 승진한다.
그리고 이들이 승진하면? 다음 세대에게 같은 것을 요구한다.
"나도 그렇게 했어. 너도 그렇게 해."
나쁜 통은 자기를 재생산한다.
시스템의 다윈주의
필립 짐바르도가 말한 "시스템의 자기 강화(self-reinforcing system)".²³
나쁜 통은 저절로 더 나빠진다.
왜? 사유하는 자를 배제하고, 무사유하는 자만 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사유하는 자가 승진하면, 시스템은 더욱 강화된다.
검찰 27년. 행정부 27년. 언론 27년. 법원 27년. 교육 27년.
모두 같은 구조다. 모두 BN 유형을 양산한다.
개인을 바꾸는가, 시스템을 바꾸는가
윤석열을 처벌하면 끝나는가? 아니다.
검찰 조직은 남아 있다. 상명하복 문화는 남아 있다. 승진 시스템은 남아 있다.
그리고 다음 윤석열이 나온다.
행정부에서. 언론에서. 법원에서. 교육계에서.
모두 같은 통에서 나온다. 모두 같은 무사유를 학습한다.
제2의 윤석열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27년차가 되어가고 있다.
검찰에서. 행정부에서. 언론사에서. 법원에서. 학교에서.
27년간 "충성심"을 배우고 있다. 27년간 "순응"을 학습하고 있다. 27년간 "무사유"를 내재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다시 반복된다. 같은 언어. 같은 사고. 같은 행동.
나쁜 통을 바꿔야 한다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통을 해체해야 한다.
행정부의 승진 기준에서 "충성심"을 삭제해야 한다.
언론의 오너 지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
법원의 인사권을 분산해야 한다.
교육의 평정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유를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질문하는 자를 보호해야 한다. 비판하는 자를 승진시켜야 한다. 저항하는 자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가?
나쁜 통 속에서, 무사유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가?
여기에 답이 있다. 시민의 각성. 시민의 사유. 시민의 저항.
통을 바꾸는 것은 통 안의 사람들이 아니다. 통 밖의 사람들이다.
참고문헌
1.서울신문, "승진 절벽에 신음하는 공무원…부처 따라 10년 이상", 2025.10.3
2. 나무위키, "인사적체"
3. 국가공무원법 제40조
4. 인사혁신처, 승진제도 안내
5. 나라살림연구소, "지자체 업무방식 및 조직문화 개선 추진 동향"
6. 한국언론진흥재단, "오너가 있는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언론사의 차이"
7. 한국언론진흥재단, 같은 글
8. 한국언론진흥재단, 1999.9.30 사건 기록
9. 한국언론진흥재단, 같은 기록
10.나무위키, "사설(신문)"
11. 한국언론진흥재단, 2015년 매경-한경 충돌 사례
12. 나무위키, "기자"
13. 헤럴드경제, "대법원, 마지막 '판사 승진' 실시", 2018.2.2
14. 헤럴드경제, 같은 기사
15.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16. 나무위키, "판사"
17. 나무위키, "대한민국 법원/인사"
18. 헤럴드경제, 2018.2.2
19.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공무원의 승진평정제도 안내"
2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공무원 승진규정과 자격연수"
21.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장·교감 임용의 결격사유"
22.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같은 글
23. Philip Zimbardo, 『The Lucifer Effect』, 2007, p.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