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통과 무사유가 만든 결과

제4부 무사유의 전염과 시민의 붕괴

by 한시을

26장. 왜 민주주의는 사유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계엄을 선포했다. 2025년 1월.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헌법 제1조를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대한민국은 정말 민주공화국인가. 투표를 하고, 선거를 치르고, 국회가 열리고, 법원이 판결한다. 형식적으로는 완벽한 민주주의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어 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에 찬성했지만, 108명은 기권했거나 반대했다. 계엄군이 국회를 포위했을 때, 일부 시민들은 응원했다.

형식은 작동했다. 하지만 실질은 무너졌다. 민주주의가 있었지만, 사유는 없었다.


아렌트의 정치 개념

1958년.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출간했다. 전체주의를 경험한 정치철학자가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아렌트의 답은 놀라웠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노동도, 작업도 아니었다. 정치적 행위였다. "인간의 본질은 정치를 하는 데에 있다."¹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는 투표나 선거가 아니었다. 타인과 관계맺고 소통하는 일체의 활동이었다. 말하고, 행위하고, 판단하는 것. 공적 영역에서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것. 이것이 정치였다.²

"폴리스(polis)는 공공적 영역이다. 오이코스(oikos)는 사적 영역이다. 모두가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 정치적 활동이 오고 갈 수 있는 담론의 장소. 이것이 민주주의의 조건이다."³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재해석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만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위할 때. 그때 인간은 인간이 된다.

반대로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가. 아렌트는 답했다. 전체주의가 온다.


전체주의는 정치의 부재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나치와 스탈린주의를 분석했다. 전체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독재자 한 명 때문이 아니었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를 막지 못한 주된 원인이다."⁴

대중은 정당이나 조합 같은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표류했다. 모래처럼 사회를 떠다녔다.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 이들이 지도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했다.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났다.⁵

왜 대중은 생각을 멈췄는가. 아렌트는 판단력의 상실을 지적했다. "20세기의 정치적 무관심, 무의지, 무사유 현상은 판단력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⁶

판단력.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이것이 사라지면 인간은 절차만 따른다. 명령만 수행한다. 아이히만이 그랬다.

민주주의는 판단하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판단 없이는 민주주의가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되었다. 헌법 제1조는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1949년 해체되었다.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 1972년 유신헌법.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8 광주학살. 1987년 6월 민주항쟁.

대한민국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획득했다. 직선제. 5년 단임제. 국회. 법원. 언론. 시민사회.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불완전했다.

2016년.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 민주주의 지수. 한국은 167개국 중 24위였다.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⁷ 2022년. V-Dem 민주주의 지수. 한국은 선거민주주의 0.83점. 자유민주주의 0.73점. 세계 평균보다 높았지만, 참여·숙의 민주주의는 0.45점에 불과했다.⁸

형식은 작동한다. 투표율은 60~70%다. 국회는 매년 법안을 처리한다. 법원은 판결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조사. "정치에 관심이 없다" 51.3%.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72.8%.⁹

아렌트가 경고한 상황이다. 시민은 있지만, 정치는 없다. 투표는 하지만, 판단은 하지 않는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관료제.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무사유의 시민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시민이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동원 가능한 군중이 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분석했다. "전체주의는 대중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이다."¹⁰ 대중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말하면 따른다. 슬로건을 외친다. 적을 증오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계엄을 선포했다. 일부 시민들은 응원했다. "북한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 판단 없이 구호만 외쳤다. 이들은 민주 시민이 아니었다. 동원된 군중이었다.

둘째, BN 유형 시민이 양산된다. AJIM 모델로 분석하면, 이들은 나쁜 통(형식적 민주주의 속 실질적 관료제) × 무사유(정치적 무관심)의 결과다. 투표는 하지만 판단하지 않는다. 법을 따르지만 정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절차는 준수하지만 도덕은 외면한다.

2024년 12월 3일. 국회의원 108명은 계엄 해제 표결에서 기권했거나 반대했다. 이들은 헌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판단하지 않았다. 정당의 지시를 따랐다. 대통령의 눈치를 봤다. 책임을 회피했다. BN 유형이었다.

셋째, 민주주의가 형식만 남는다. 아렌트는 경고했다. "현대 사회는 행정 관료제의 상대적 안락함을 위해 민주주의의 자유로부터 자주 후퇴한다."¹¹ 시민들은 정치 참여보다 안정을 선택한다. 판단보다 순응을 선택한다. 책임보다 방관을 선택한다.

결과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선거는 있지만 정치는 없다. 투표는 하지만 사유는 없다. 국회는 열리지만 토론은 없다. 법원은 판결하지만 정의는 없다.

이것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판단하는 시민

민주주의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렌트는 명확하게 답했다. 판단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판단이란 무엇인가. 아렌트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재해석했다. 판단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일반 원칙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¹²

예를 들어보자.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를 포위했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이들은 무엇을 판단했는가.

"헌법 제77조. 계엄은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해제해야 한다. 지금 계엄은 위헌이다. 나는 국회의원이다.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판단이다. 법조문을 암기한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헌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스스로 결단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했다. 이것이 판단하는 시민이다.

반대로 기권한 108명은 판단하지 않았다. "당의 지시가 없다. 대통령의 의중이 불분명하다. 나중에 책임질까 두렵다." 생각을 멈췄다. 판단을 회피했다. 무사유의 시민이었다.

아렌트는 강조했다. "판단력은 정치적 자유 실현의 주관적 조건이다."¹³ 판단 없이는 자유가 없다. 판단 없이는 민주주의가 없다.


사유의 정치적 의미

사유(thinking)는 단순히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에게 사유는 정치적 행위였다.

첫째, 사유는 현실과의 접촉이다. 아이히만은 클리셰(진부한 표현)만 사용했다. "명령 수행", "의무 이행", "조직 충성". 이 언어는 그에게 현실과의 접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¹⁴ 사유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진부한 언어를 거부하고, 구체적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사유는 타자에 대한 공감이다. 아렌트는 칸트의 "확장된 심성(enlarged mentality)"을 강조했다. 판단하려면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 관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도 고려해야 한다.¹⁵

2024년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한 사람들은 타자를 생각하지 않았다. "종북 세력을 제거한다." 누가 종북인가. 어떤 기준인가. 그들도 시민이 아닌가. 생각하지 않았다. 타자를 적으로만 봤다. 탈인간화했다.

반대로 판단하는 시민은 묻는다. "계엄으로 피해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권리는 무엇인가. 이것이 정당한가." 타자를 고려한다. 공감한다. 이것이 사유다.

셋째, 사유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아렌트는 『책임과 판단』(2003)에서 강조했다. 판단은 책임을 수반한다.¹⁶ 아이히만은 책임을 회피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판단하는 시민은 책임을 진다. "내가 이 결정을 내렸다. 결과에 책임지겠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의원 190명은 계엄 해제에 찬성했다. 이들은 책임을 졌다. "나는 헌법을 지킨다. 이것이 옳다. 결과를 받아들이겠다." 판단하고 행동했다. 책임을 졌다.

이것이 사유의 정치적 의미다.


민주주의의 실질적 조건

형식적 민주주의는 제도만 있으면 된다. 헌법, 국회, 법원, 선거, 정당.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사유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아렌트는 명확하게 정의했다. "인간의 복수성(plurality). 인간으로서 모두가 동등하면서도 개개인이 차이를 드러낸다. 이것이 정치적 존재의 근본 이유다."¹⁷

복수성은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적 영역에서 만나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적 영역의 보존. 아렌트는 강조했다. "공적 영역이란 정치적 활동이 오고 갈 수 있는 담론의 장소다."¹⁸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할 수 있는 공간. 국회, 광장, 시민단체, 언론, SNS. 이 공간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국은 어떤가. 2024년 12월 3일 이후.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였다. 촛불을 들었다. 헌법을 외쳤다. 공적 영역이 작동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어떤가. SNS는 필터 버블로 갈라져 있다. 언론은 편파적이다. 국회는 고함만 친다. 공적 영역이 약하다.

둘째, 시민교육의 개혁. 아렌트는 지적했다. 판단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다.¹⁹ 비판적 사고, 토론, 논증, 공감. 이것을 배워야 한다.

한국 교육은 어떤가. 21장에서 보았듯이, 암기 중심이다. 정답 찾기다. 경쟁이다. 질문하지 않는다. 토론하지 않는다. 판단력을 훈련하지 않는다.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셋째, 사유하는 관료제. 아렌트는 경고했다. "행정 관료제는 민주주의의 자유를 위협한다."²⁰ 관료는 절차만 따른다. 책임을 회피한다. 상급자의 명령만 수행한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11장에서 보았듯이,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작동한다. 개별 검사는 판단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의 지시를 따른다. 이것이 윤석열을 만들었다. 관료제 개혁이 필요하다. 개별 공무원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GT 유형 시민의 탄생

AJIM 모델로 돌아가 보자.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어떤 시민이 필요한가.

BN 유형이 아니다. 나쁜 통(관료제) × 무사유 = 아이히만, 윤석열, 동원 가능한 군중.

GN 유형도 아니다. 좋은 통(민주주의) × 무사유 = 수동적 시민, 기회주의자.

BT 유형은 영웅이다. 나쁜 통 × 사유 = 쉰들러, 저항자, 민주화 운동가. 하지만 영웅에게만 의존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GT 유형 시민이다. 좋은 통(민주 제도) × 사유(판단하는 시민) = 참적응자, 책임지는 시민,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

GT 유형 시민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판단한다. 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상황을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스스로 생각한다.

둘째, 책임진다. 결정을 내리면 결과를 받아들인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셋째, 참여한다. 투표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토론하고, 의견을 표현하고, 행동한다.

넷째, 공감한다. 타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확장된 심성으로 생각한다.

다섯째, 저항한다. 부당함에 순응하지 않는다. 시민불복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렌트는 『시민 불복종』(1969)에서 강조했다. 부당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다.²¹

2024년 12월 3일 밤.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 이들이 GT 유형이었다. 판단하고, 책임지고, 참여하고, 공감하고, 저항했다. 민주주의를 지켰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의 사유

한국에도 GT 유형 시민의 전통이 있었다. 1975년 3월 8일. 동아일보 1면 하단. 한 정치인이 광고를 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입니다."²³

김대중이었다. 유신독재 시기. 언론이 탄압받고 있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저항했다. 시민들의 지원이 필요했다. 김대중은 국민에게 호소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왜 행동이 필요한가. 김대중은 1975년 4월 19일 씨알의소리 창간5주년 강연에서 말했다.²⁴

"생각하는 국민, 행동하는 국민만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폭동을 선동하는 것도 아니고 불법행위를 선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적으로 합법적으로 하세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 무슨 법에 걸립니까?"

김대중이 말한 "행동하는 양심"은 무엇인가. 아렌트의 "사유하는 시민"과 같은 의미였다. 독재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촛불을 들어야 한다. 서명을 해야 한다. 격려를 해야 한다. 구호를 해야 한다.

김대중은 강조했다. "우리 모두가 나설 때 우리의 목적은 달성됩니다."²⁵

이것이 바로 GT 유형 시민이다. 좋은 통(민주화 운동) × 사유(판단과 행동) = 독재를 무너뜨리는 힘.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은 평생의 철학이 되었다. 2009년 6월 11일. 생전 마지막 공식 연설.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²⁶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이 연설은 노무현 사망 직후였다. 김대중은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초를 겪을 때, 500만 명 문상객 중 50만 명만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나섰다면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²⁷

행동하지 않는 양심. 침묵하는 양심. 방관하는 양심. 이것이 악을 키운다. 아렌트가 말한 무사유와 같다. 생각은 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김대중은 결론 내렸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²⁸


깨어있는 시민: 노무현의 계승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을 계승한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찬성 193표, 반대 2표. 탄핵 사유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권력형 부정부패", "국민경제 파탄"이었다.²⁹

하지만 시민들은 판단했다. "이것은 정당한가." 탄핵 당일부터 광화문에 모였다. 촛불을 들었다. "탄핵 무효"를 외쳤다. 3월 13일. 주최 측 추산 10만 명, 경찰 추산 5만 명이 모였다.³⁰

시민들은 왜 모였는가. 법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았다. 국회의원이 뽑지 않았다."³¹ 절차적으로는 합법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당했다.

시민들은 사유했다. 판단했다. 행동했다. 김대중이 말한 "행동하는 양심"이 작동한 것이다.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152석. 과반 획득. 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9석으로 전락했다.²⁶ 5월 14일. 헌법재판소 탄핵 기각.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GT 유형 시민이 작동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 경험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2007년 6월. 제8회 노사모 총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²⁷

깨어 있는 시민. 아렌트가 말한 "사유하는 시민"의 한국적 표현이었다. 판단하고, 참여하고, 책임지는 시민. 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정의를 생각하는 시민. 절차가 아니라 실질을 따지는 시민.

이 문장은 2009년 노무현 사망 후 봉하마을 묘비에 새겨졌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²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계엄. 20년 만에 다시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촛불을 들었다. 헌법을 외쳤다.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찬성 204표.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빨랐다. 2004년은 탄핵 후 촛불이 켜졌다. 2024년은 계엄 당일 촛불이 켜졌다. 2004년은 총선까지 한 달이 걸렸다. 2024년은 이틀 만에 탄핵이 발의되었다.

시민이 더 빨리 판단했다. 더 빨리 행동했다. 더 빨리 조직되었다. GT 유형 시민이 진화한 것이다.

노무현의 예언은 맞았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제도가 아니었다. 법도 아니었다. 국회도 아니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다. 사유하는 시민이었다. 판단하는 시민이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독자적 철학을 발전시켜왔다.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 (1970년대). 노무현의 "깨어있는 시민" (2000년대). 2024년 광화문 촛불 (현재).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하나의 핵심을 공유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민. 부당함에 저항하는 시민. 행동하는 시민.

아렌트의 이론이 한국에서 증명되었다. 1975년, 2004년, 2024년. 세 번의 실험. 같은 결과. 사유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한국 민주주의의 갈림길

대한민국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길이다. 투표는 하지만 사유는 하지 않는다. 법은 있지만 정의는 없다. 관료제는 작동하지만 시민은 무기력하다. 이 길의 끝은 무엇인가. 아렌트가 경고한 대로, 전체주의다. BN 유형 시민이 양산되고, 동원 가능한 군중이 만들어지고,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길이다. 시민이 판단하고 책임진다.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토론한다. GT 유형 시민이 늘어난다. 이 길의 끝은 무엇인가. 아렌트가 꿈꾼 대로, 사유하는 공동체다.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회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선택은 시민에게 달려 있다.

아렌트는 마지막 저작 『정신의 삶』(1978)을 미완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명확했다.

"생각하지 않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는 없다."²²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다. 사유하는 시민이다. 판단하는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이 아렌트가 평생 강조한 진리였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다.

윤석열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사유를 회복해야 한다. 판단하는 시민을 키워야 한다. GT 유형 시민을 양산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산다. 그래야 악의 평범성이 반복되지 않는다.

사유하는 시민. 이것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조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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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임미원,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대한 기초적 고찰", 『법철학연구』 17(3), 2014,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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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오마이뉴스, "[영상]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 시작은 동아일보 지키기", 2023.11.12

26. 통일뉴스, "DJ 마지막 연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2009.8.18

27. 통일뉴스, "DJ 마지막 연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200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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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무위키, "노무현", https://namu.wiki/w/노무현 (2026년 검색)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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