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통과 무사유가 만든 결과

제5부 AJIM 모델의 해법 – 사유의 복원과 통의 개혁

by 한시을

28장. 나쁜 통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Macro)


1945년 11월 20일. 독일 뉘른베르크 정의궁. 연합국 판사들 앞에 나치 독일의 최고위 인사 24명이 피고인으로 섰다. 히틀러의 2인자 헤르만 괴링,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군 지휘관들. 이들은 "평화에 대한 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로 기소되었다.¹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항변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상급자의 지시를 수행했다." "법과 절차를 준수했다." 아이히만과 똑같은 언어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946년 10월 1일. 12명 사형, 3명 무기징역, 4명 유기징역. 국가의 명령도, 상급자의 지시도 면책 사유가 되지 않았다.²

이것이 짐바르도가 말한 "나쁜 통의 해체"였다. 시스템이 개인을 악으로 만들었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악한 시스템" 자체를 재판정에 세운 사건이었다. 개인의 악함이 아니라 구조의 악함을 심판한 것이다.

AJIM 모델은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Macro(나쁜 통의 해체)와 Micro(사유의 교육). 이번 장에서는 Macro, 즉 구조 개혁을 다룬다. 나쁜 통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짐바르도의 답은 명확하다. "시스템을 재판정에 세워라."


짐바르도의 해법: 사과를 바꾸지 말고 상자를 바꿔라

필립 짐바르도는 『루시퍼 이펙트』 16장에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이것을 "원치 않는 영향력에 저항하기"라고 명명했다.³

핵심은 간단하다. "썩은 사과(bad apple)가 아니라 썩은 상자(bad barrel)를 바꿔라."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수뇌부는 항상 말한다. "몇몇 문제 있는 개인 때문이다." 짐바르도는 이것을 거부한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과를 담은 상자다. 더 나아가 "상자를 설계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⁴

짐바르도는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사건을 분석하며 이 논리를 입증했다.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사건. 미 국방부는 "소수의 썩은 사과"라고 발표했다. 짐바르도는 반박했다. 문제는 럼스펠드 국방장관, 조지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이 만든 "악한 시스템"이었다.⁵ 이것이 단순한 학술적 주장이 아니었다. 짐바르도는 해당 사건의 법정에서 피고인 찰스 그레이너(교도관)의 증인으로 직접 출석해 "시스템이 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증언을 했다. 나쁜 통 해체는 학문의 언어가 아니라, 법정의 언어였다.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평범한 대학생들이 6일 만에 잔인한 교도관과 무기력한 수감자로 변했다. 짐바르도는 실험을 중단하며 깨달았다. "강력한 시스템 안에서 '나는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다."⁶ 이 실험의 교훈은 단순하다. 어떤 통이든, 그 안에 들어가면 통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통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을 바꿔도 소용없다. 나쁜 사람을 내보내고 좋은 사람을 넣어도, 통이 그대로면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된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악은 반복된다. 좋은 사과를 상자에 넣어도 결국 썩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


독일의 선택: 뉘른베르크와 과거사 청산

독일은 나쁜 통을 해체하기로 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그 시작이었다.

1945년 8월 8일.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는 런던 협정을 체결하고 국제군사재판소(IMT)를 설치했다. 연합국 4개국은 판사 4명과 검사 4명을 파견했다. 영국의 제프리 로렌스가 재판장을 맡았다. 미국의 로버트 잭슨 수석 검사는 명확한 원칙을 세웠다. "편향된 증언을 피하기 위해 나치가 직접 작성한 서류에 기초하여 사건을 논의한다."⁷

재판은 1945년 11월 20일부터 1946년 10월 1일까지 진행되었다. 4개 언어(영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동시 통역이 제공되었다. 24명이 기소되었지만 실제로는 21명이 재판정에 섰다. 히틀러, 괴벨스, 힘러는 이미 자살했고, 구스타프 크루프는 고령과 건강 악화로 제외되었다.⁸

1946년 10월 1일. 판결. 12명 사형, 3명 무기징역, 4명 유기징역, 3명 무죄.⁹ 헤르만 괴링은 교수형 집행 전날 청산가리로 자살했다. 나머지 11명은 1946년 10월 16일 처형되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의의는 명확했다. 첫째, 국가의 명령도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둘째,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 셋째, 역사의 기록을 남긴다.¹⁰

하지만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뉘른베르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6년 뮌헨에서 "나치와 군사주의로부터 해방을 위한 법"이 제정되었다. 연합국 점령지역 내 나치 관련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문제는 피고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¹¹

1947년 미군정은 소련의 동독 공산화를 견제하기 위해 서독에서의 과거사 청산을 형식적으로 실시했다. 이것이 독일 과거사 청산의 한계였다. 실질적으로 각종 만행을 저지른 수십만 명의 독일인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¹²

그럼에도 독일은 계속 노력했다. 1949년 서독 정부 수립 이후, 1968년 혁명의 영향으로 신좌파 지식인들이 기성세대의 잘못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 교과서가 나치 독일의 잘못을 솔직하게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¹³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완벽하지 않았다. 선택적이었고, 불완전했다.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했다. 나쁜 통을 해체하려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나치즘을 공개적으로 미화하거나 지지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를 부정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규정했다. 아우슈비츠 부정론자가 처벌받는 나라다. 이것이 80년에 걸친 탈나치화의 결과다. 나쁜 통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기억하고 경고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했다.


한국의 선택 1: 반민특위의 실패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9년 1월 5일.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독립운동가 김상덕이 위원장을 맡았다. 친일파를 처벌하고 나쁜 통을 해체할 기회였다.¹⁴

하지만 1949년 6월 6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특경대(特警隊) 200여 명이 투입되었다. 조사관과 직원들이 체포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¹⁵

반민특위는 무력화되었다. 1949년 8월 31일 활동 중지. 1949년 10월 4일 공식 해체. 처벌된 친일파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친일파는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직으로 복귀했다.¹⁶

8장에서 보았듯이, 반민특위 해체는 한국 현대사의 "나쁜 통" 형성 시점이었다. 제도적 무력화, 폭력의 국가독점, 도덕적 기준의 붕괴, 관료제의 충성 구조 고착, 대중의 무력과 침묵. 5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 경찰이 법적으로 설치된 국가기관을 물리력으로 습격했다. 그 경찰의 수뇌부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인물들이었다. 나쁜 통은 새 나라가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이식됐다.

독일은 나쁜 통을 해체하려 했다. 한국은 나쁜 통을 보존했다. 그 차이가 이후 역사를 결정했다.


한국의 선택 2: 12.12와 5.18의 미완의 청산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신군부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했다. 계엄사령관의 승인도, 대통령의 재가도 없었다.¹⁷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시민들이 저항했다. 계엄군은 발포했다. 정부 공식 발표만 160명 이상 사망.¹⁸

1993년 문민정부 출범. 1994년 5월 13일. 5.18 피해자 322명이 전두환, 노태우 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¹⁹

1995년 7월 18일. 검찰 발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공소권 없음.²⁰ 이 발표는 나쁜 통의 자기 보호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검찰이 쿠데타를 기소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기소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성공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권력을 잡은 자는 면죄된다는 나쁜 통의 작동 원리를 법적 언어로 정당화한 것이었다. 짐바르도의 언어로 말하면, 시스템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분노했다. 1995년 10월 26일. "5.18 학살자 처벌 특별법 제정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 결성. 집회, 시위, 농성이 계속되었다.

1995년 11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움직였다.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부당하다." 12월 15일. "성공한 쿠데타도 형사 처벌될 수 있다."²¹

1995년 12월 3일. 전두환 구속. 12월 19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국회 통과. 12월 21일. 전두환, 노태우 등 16명 기소.²²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 1심 선고.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개월.²³

1996년 12월 16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재판부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8은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행위"라고 판시했다.²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확정.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목적살인"의 혐의가 확정되었다.²⁵

한국도 나쁜 통을 해체할 기회를 잡았다. 사법부가 판결했다. 12.12는 반란이고, 5.18은 내란이며, 전두환과 노태우는 범죄자다. 시스템을 재판정에 세웠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민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을 뒤집었다. 이 재판은 AJIM 모델의 BT 유형 시민들이 나쁜 통에 저항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면: 나쁜 통의 복원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12.12와 5.18 관련자 전원 석방. 명분은 "국민대화합"이었다.²⁶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도 동의했다. 1997년 8월 31일. 김대중은 간담회에서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에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여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하겠다. 그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²⁷

사면의 논리는 명확했다. 정치 보복 근절. 국민 통합. 화해.

하지만 사면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대법원이 확정한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의 죄가 용서되었다. 160명 이상을 죽인 범죄가 "국민대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면책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구조적 영향이었다. 사면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쁜 통을 장악하고 권력을 잡으면, 결국 용서받는다."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내란은 사면된다. 반란은 국민대화합으로 끝난다. 이 메시지는 법률 조문이 아니다. 하지만 법률보다 강력하다. 법률은 문서로 기록되지만, 이 메시지는 구조 속에 새겨진다. 검찰은 알았다. 군은 알았다. 권력을 운용하는 모든 관료들이 알았다. 끝까지 버티면 사면받는다는 것을.

독일은 나치 전범들을 처형했다. 한국은 반란 수괴를 사면했다. 독일은 나쁜 통을 해체하려 했다. 한국은 나쁜 통을 복원했다.

그리고 27년 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전두환의 계보는 끊어지지 않았다. 나쁜 통은 살아남았다. 27년 동안의 사면 메시지가 축적되어, 결국 새로운 쿠데타 시도로 표출된 것이다. 윤석열은 전두환이 사면받는 것을 보며 성장한 세대다. "법과 원칙"을 외치며 검찰 내부 질서를 강화했던 그 언어는, 1997년 사면이 남긴 구조 속에서 형성됐다. 나쁜 통은 한 세대를 거쳐 또 다른 BN 유형을 만들어냈다.


나쁜 통 해체의 원칙

그렇다면 나쁜 통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독일과 한국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책임자를 명확히 처벌해야 한다. 짐바르도의 핵심 원칙이다. "상자를 설계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그랬다. 히틀러의 2인자 괴링부터 군 지휘관까지 모두 기소했다. 한국도 1996년 그렇게 했다. 전두환, 노태우를 재판정에 세웠다.

하지만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확정된 처벌이 집행되어야 한다. 사면은 나쁜 통을 복원한다. 독일이 괴링을 사면했다면 어땠을까. 뉘른베르크 재판의 의미는 사라졌을 것이다. 한국은 전두환을 사면했다. 12.12와 5.18 재판의 의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면이 전달한 메시지—"권력을 잡으면 결국 용서받는다"—가 이후 한국 정치의 구조적 전제가 됐다.

둘째,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쁜 통을 만든 구조를 바꿔야 한다.

독일은 무엇을 바꿨는가. 탈나치화(Denazification). 정치, 경제, 교육 전 분야에서 나치 잔재를 제거했다. 나치 관련자를 공직에서 배제했다. 교과서를 고쳤다. 교육 시스템을 바꿨다. 불완전했지만 시도는 했다.²⁸ 탈나치화는 단순히 나치 당원증을 빼앗는 일이 아니었다. 나치가 설계한 관료제의 언어, 위계의 논리, 복종의 문화를 제도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그 작업이 수십 년 걸렸다. 지금도 완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은 유지됐다.

한국은 무엇을 바꿨는가. 반민특위 해체 이후, 친일파는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직으로 복귀했다. 경찰, 검찰, 행정부. 나쁜 통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결국 사면되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같은 인물이 계속 나온다. 반민특위를 해체한 통에서 박정희가 나왔다. 박정희를 청산하지 않은 통에서 전두환이 나왔다. 전두환을 사면한 통에서 윤석열이 나왔다. 이 계보는 인물의 문제가 아니다. 통의 문제다.

셋째,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또 다른 의의였다. 재판 과정은 모두 기록되었다. 나치의 문서, 증언, 증거. 모두 보존되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직시해야 했다.

한국은 어떤가. 5.18 관련 수사 기록은 2003년에야 공개되었다.²⁹ 반민특위 자료는 일부만 남아 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기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독일은 아우슈비츠를 보존했다. 한국은 서대문 형무소를 보존했지만, 5.18 묘역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이 없고, 기억이 없으면 반성이 없고, 반성이 없으면 반복이 온다.

넷째,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사 청산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독일은 지금도 90세가 넘은 나치 관련자를 기소한다. 불완전하지만 계속한다.³⁰

한국은 어떤가. 1996년 재판, 1997년 사면. 그리고 끝. 전두환은 사면 이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대외 활동을 했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 없는 태도를 견지했다. 2009년 "29만원" 발언. 2019년 골프. 2020년 사자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³¹

과거사 청산을 멈추면 나쁜 통은 다시 자란다. 이 네 가지 원칙은 단순하지만, 한국 현대사는 단 한 번도 이 원칙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민특위는 실패했다(원칙 1·2 실패). 쿠데타는 재판받았지만 사면됐다(원칙 1 실패). 기록은 수십 년간 봉인됐다(원칙 3 실패). 그리고 청산은 멈췄다(원칙 4 실패). 이제 2026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짐바르도의 경고, 한국의 현실

짐바르도는 『루시퍼 이펙트』에서 경고했다. "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든지 악에 빠질 수 있으며, 그 악을 통제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악은 반복된다."³²

한국 현대사는 짐바르도의 경고를 입증한다. 반민특위 해체 → 박정희 쿠데타 → 전두환 반란 → 윤석열 계엄. 75년 동안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패턴의 주인공은 매번 달랐다. 하지만 패턴 자체는 동일했다. 나쁜 통이 새로운 BN 유형을 계속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왜 반복되는가. 나쁜 통을 해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불완전하지만 나치를 청산하려 했다. 한국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았고, 쿠데타를 청산하지 않았고, 반란을 사면했다. 각 실패 지점이 다음 반복의 조건을 만들었다. 반민특위 해체가 박정희를 가능하게 했고, 박정희 청산 실패가 전두환을 가능하게 했고, 전두환 사면이 윤석열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구조의 연속이다.

2024년 12월 3일은 우연이 아니다. 구조의 필연이다. 윤석열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나쁜 통이 만든 BN 유형의 최신 버전일 뿐이다.

10장에서 보았듯이, 히틀러→아이히만 = 박정희/전두환→윤석열. 독일은 히틀러를 청산하려 했다. 한국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청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윤석열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Macro의 의미

AJIM 모델의 Macro 해법은 명확하다. 나쁜 통을 해체하라.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다.

첫째, 책임자 처벌. 상자를 설계한 권력자를 재판정에 세우고, 확정된 형을 집행하라. 사면하지 마라. 1997년의 실수를 반복하지 마라.

둘째, 시스템 개혁. 나쁜 통을 만든 구조를 바꿔라. 경찰, 검찰, 군대, 관료제. 상명하복 문화를 해체하라. 11장과 12장에서 본 검찰 조직의 검사동일체, 관료제의 탈인간화. 이것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새로 만든 구조에 대한 감독 장치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나쁜 통을 깨뜨리되, 새 통이 또 다른 나쁜 통이 되지 않도록.

셋째, 역사 기록.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기록하고 보존하라. 교과서에 쓰고, 박물관을 만들고, 증언을 남겨라. 반민특위의 실패, 쿠데타의 논리, 사면의 결과. 이 모든 것을 다음 세대가 직시할 수 있도록.

넷째, 지속적 노력. 한 번 하고 끝내지 마라. 계속 감시하고, 계속 개혁하고, 계속 기억하라.

이 네 가지 원칙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된 순간이 있다. 이 책이 집필되는 동안,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2026년 3월: 시작된 해체와 새로운 위험

2026년 3월 20일. 국회 본회의. 공소청 설치법이 재석 165명 중 찬성 164명으로 가결됐다. 이튿날인 21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이 재석 167명 중 찬성 166명으로 통과됐다.³⁴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설립된 검찰청이 78년 만에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오는 10월 2일부터 검사는 어떤 범죄 수사도 개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AJIM 모델의 언어로 읽으면, Macro 개혁의 입법화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검찰이 독점하던 수사권·기소권·형사사법 전체를 해체하고, 기소는 공소청(현 검찰청 재편),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이 각각 담당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중수청은 부패·경제·방위산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범죄 등 6대 중대범죄를 전담하며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출범한다.³⁵

11장에서 분석했던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구조, 절차 중심주의와 사유 배제, 출세 시스템이 순응을 보상하는 문화—이 구조를 만들어온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의 제도적 기반이 법률로 제거된다. 짐바르도가 말한 Macro 개혁—"썩은 상자를 바꿔라"—이 현실 입법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를 "70년 숙원사업의 완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 물어야 한다. 이것으로 나쁜 통이 해체됐는가. 짐바르도라면 즉시 반문할 것이다. 새 통이 또 다른 나쁜 통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역할만 바뀌어도, 새로운 통 속에서 동일한 권력 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 간수복을 벗기고 수사관 배지를 달아도, 감독이 없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사실은 이미 균열이 보인다.

당초 중수청 설치법 정부안에는 중수청이 수사를 개시할 때 공소청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한 조항이 있었다. 중수청 수사에 대한 외부 감독 장치였다. 그런데 최종 법안에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³⁶ 중수청은 이제 자신의 수사 개시를 어디에도 보고할 의무가 없다. 6대 범죄의 구체적 죄목도 앞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중수청의 수사 범위가 대폭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중수청에 대한 외부 통제와 감독이 취약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력 공백도 심각하다. 지난해 말 대검찰청이 검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910명 중 중수청 근무를 희망한 인원은 7명(0.8%)에 불과했다.³⁷ 수십 년간 검찰 수사의 핵심을 담당했던 경험 인력 없이 새 기관이 출범한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과의 연동도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당분간 수사기록을 종이로 주고받아야 할 수도 있다. 새 상자를 만들었지만, 그 상자를 채울 사람들이 없는 상황이다.

AJIM 모델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읽으면 다음과 같다. 나쁜 통의 구조적 해체는 시작됐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통 자체가 감독 없이 강력한 권한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로 출범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나쁜 통의 씨앗이다. 짐바르도는 아부그라이브 사례에서 이미 보여줬다. 통을 교체해도, 그 통을 설계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가 없으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검사동일체가 사라져도, 중수청 수사관 집단이 새로운 형태의 상명하복 문화를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Macro 개혁이 완결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이유다.

나쁜 통 해체의 원칙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된다. 첫째 원칙—책임자 처벌—은 윤석열 탄핵과 사법 처리가 진행 중이다. 1997년처럼 사면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원칙—시스템 개혁—은 2026년 3월 입법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새 시스템에 대한 외부 통제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셋째 원칙—역사 기록—은 국정조사, 진실위원회, 교과서 수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원칙—지속적 노력—은 이제 막 첫 발을 디뎠을 뿐이다.

하지만 Macro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일도 불완전했다. 수십만 명의 나치 관련자가 처벌받지 않고 살았다. 새 법률이 통과됐다고 해서 무사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수청 수사관들이 사유하지 않으면, 검찰의 무사유 문화가 새 간판 아래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나쁜 통이 새 용기에 담겨서 계속 작동하는 것이다. 왜 같은 나쁜 통 속에서도 영웅이 나오는가. 쉰들러는 왜 BT 유형이 되었는가. 함석헌, 장준하, 김대중, 노무현은 왜 나쁜 통 속에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았는가.

Micro가 필요하다. 사유의 교육. 다음 장에서 다룰 주제다.

하지만 Macro 없이 Micro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나쁜 통 속에서 사유하는 개인은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사회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 반민특위가 해체되면 아무리 사유해도 소용없다. 전두환이 사면되면 아무리 저항해도 의미가 없다.

Macro + Micro. 둘 다 필요하다. 나쁜 통을 해체하고(Macro), 동시에 시민이 사유하도록 교육해야 한다(Micro). 짐바르도의 시스템 개혁과 아렌트의 사유 교육. AJIM 모델의 핵심이다.

2026년 3월, 한국은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78년 만에 검찰청 해체가 입법화됐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가 진행 중이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1997년 사면이 없었다면, 이 역사의 고리는 더 일찍 끊겼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고리를 끊을 기회가 왔다. 다만 새 통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중수청에 대한 외부 통제 장치—공소청 통보 의무, 국회 감시 강화, 시민 감시 기구—는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새 상자를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상자가 다시 썩지 않도록 계속 감시하는 것이 Macro 개혁의 진정한 의미다.

짐바르도는 말했다. "썩은 상자도 좀 더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다."³³ 하지만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동시에, 새로 만든 상자가 다시 썩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의 일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1949년 반민특위는 실패했다. 1997년 사면은 나쁜 통을 복원했다. 2024년 12월, 나쁜 통의 마지막 표현이 계엄을 선포했다. 2026년 3월, 그 통을 입법으로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역사가 반복을 멈출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법률이 아니다. 이 사회의 시민들이다.

나쁜 통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Macro의 진정한 첫 걸음이다. 그리고 새 통이 다시 썩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는 것. 그것이 Macro가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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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서울경제, 「중수청법 결국 본회의 통과…수사권한 집중 견제장치 마련해야」, 202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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