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왜 하필 이 둘인가?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스마트폰 배터리가 5%만 남았을 때의 그 절망감 말이에요. 갑자기 온 세상이 멈춘 것 같고, 어디서든 충전기를 찾아 헤매게 되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휴대폰 없이도 잘 살았는데 말이죠.
이처럼 변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참 재미있습니다. 어떤 건 쉽게 받아들이고, 어떤 건 끝까지 거부하거든요.
찻집에서 만난 두 거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더라고요.
다윈이 창밖을 바라보며 감탄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군요. 저기 보세요, 전기자동차들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어요. 제가 살던 시절 런던 거리의 말발굽 소리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부처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정말 빨라졌지요."
"바로 그겁니다!" 다윈이 흥미진진하게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적응의 힘이에요. 인류는 항상 환경 변화에 맞춰 새로운 해법을 찾아왔거든요."
다윈이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추위가 문제였을 때는 불을 발견했고, 배고픔이 문제였을 때는 농업을 시작했어요. 거리가 멀어서 소통이 어려울 때는 전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잖아요."
[다윈의 관찰] 환경이 변하면 생물은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한다. 적응하거나 멸종하거나. 인류는 지금까지 놀라운 적응력으로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석기시대에서 정보화시대까지, 각 단계마다 에너지 활용 방식을 혁신해왔다.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나무가 부족하니까 석탄을 썼고, 석탄이 문제가 되니까 석유를 찾았어요. 이제 석유가 문제가 되니까 태양광과 풍력을 개발하고 있고요."
다윈이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작년에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1조 8천억 달러를 넘었다고 하던데요. 중국은 태양광 패널 생산량이 전 세계의 80%를 차지하고, 덴마크는 전력의 50% 이상을 풍력으로 공급해요. 이게 바로 적응 중인 모습 아닙니까?"
[현재의 목소리] 2024년 기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30%를 넘어섰다. 태양광 발전 비용은 지난 10년간 90% 가까이 하락했으며, 많은 지역에서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졌다. 이는 인류사상 가장 빠른 에너지 전환 속도다.
부처님이 잠시 침묵했다가 차분히 물었습니다.
"다윈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정말 놀라운 적응력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무엇인지요?"
"왜 적응할수록 문제는 더 커질까요?"
다윈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부처님이 구체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19세기에 석탄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무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고 기뻐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요? 런던에 킬러 스모그가 덮쳤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죠."
"그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었어요."
"20세기에 석유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석탄보다 깨끗하고 효율적이라고 했죠. 결과는?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그리고 중동 전쟁까지 이어졌어요."
부처님이 찻잔을 들며 계속했습니다.
"이제 태양광과 풍력이 해답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태양광 패널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희토류는 얼마나 되고, 폐패널 처리는 어떻게 할 건가요?"
[부처의 통찰] 문제는 적응의 능력이 아니라 적응의 방향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이런 방향으로만 적응하면 근본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욕망의 크기가 그대로인 한, 어떤 기술로 바꿔도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적응은 정말 문제를 해결한 걸까요, 아니면 문제의 형태만 바꾼 걸까요?
다윈이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그렇다고 해서 기술 발전을 멈출 수는 없잖아요.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원해요. 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물론입니다. 저도 뒤로 가자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이 촛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다만 '더 나은 삶'이 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정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게 더 행복한 삶일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예를 들어 볼까요.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평균 4시간이라고 해요. 그 4시간 동안 정말 행복한가요? 아니면 그냥 습관적으로, 불안해서 보는 건 아닐까요?"
다윈이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전력의 4%를 소비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 데이터의 대부분은 광고를 더 정교하게 보내거나,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데 쓰여요. 정말 필요한 일일까요?"
[현재의 목소리]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연간 약 200TWh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아르헨티나 한 나라가 쓰는 전력량과 비슷하다. 그 중 상당 부분이 광고 타겟팅, SNS 알고리즘, 암호화폐 채굴 등에 사용된다.
찻집 안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어요.
다윈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흥미로운 관점이군요. 저는 늘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적응할 것인가'만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적응해야 하는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왜 이런 욕망이 생겼는가'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현실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부처님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둘의 관점을 합쳐야 진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기술적 적응과 철학적 성찰이 함께 말이죠."
다윈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똑똑한 적응과 지혜로운 적응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부처님이 잠시 멈췄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필요한 건 변화를 읽는 새로운 눈이 아닐까요? 기술의 눈과 지혜의 눈을 동시에 가진 눈 말이에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인류의 에너지 적응은 성공적이었을까요? 아니면 문제의 형태만 바뀌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적응해야 할까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세요. 다음 회에서는 다윈이라는 인물을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9세기 진보의 예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다음 회 예고] 제1장 3회차: "다윈: 19세기 진보의 예언자" - 갈라파고스 섬에서 핀치새를 관찰하며 진화론을 발견한 다윈의 사고방식을 통해, 현대 에너지 기술 발전의 논리와 한계를 탐구합니다. 비글호의 항해부터 『종의 기원』 출간까지, 다윈이 보여준 과학적 사고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통찰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