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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말의 전쟁 01화

말의 전쟁

프롤로그

by 한시을

프롤로그: 2,500년 전 그들도 우리와 같았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럭프가 재집권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개월 후, 중국은 한국 대통령에게 전승절 기념식 초청장을 보냈다. 아직 한미정상회담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거절하면 중국이 화낼 것이고, 참석하면 미국이 화낼 것이다. 전형적인 강대국 사이 중간국의 딜레마. 하지만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만 특별한 건 아니다.


기원전 656년, 초나라 성왕도 똑같은 초청장을 보낸 적이 있다. 받은 나라는 노나라. 지금의 한국처럼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체


외교부 청사 브리핑룸에서 오늘도 대변인이 말한다. "우리는 모든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겠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묻는다. "그럼 전승절엔 가시나요, 안 가시나요?"


대답은 언제나 "신중히 검토하겠다"이다.


2,500년 전 노나라 외교관도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는 한자로, 지금은 한글로 말할 뿐.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 한국은 달라졌다. 70년 전에는 원조받는 나라였고, 30년 전에는 제조업 신흥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BTS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고, K-뷰티가 파리 화장품점을 점령한다.


분명 뭔가 변했는데, 외교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다. 아직도 F-16 몇 대 들여오는 이야기만 하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얼마인지만 따진다.


이게 맞나?


전환기를 알아보는 법


역사학자들은 이런 시대를 어떻게 설명할까?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성장은 계속되는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질 때, 새로운 응전 방식을 찾아낸 문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는 최근작 《넥서스》에서 "정보 네트워크가 사회 질서를 혁명적으로 바꾼다"고 분석했다. 문자, 인쇄술, 라디오가 그랬듯이, 새로운 정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연결 방식이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두 거장의 관점을 결합하면 춘추전국시대가 보인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주나라 봉건제라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서, 550년 동안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무력이 아니었다. 정보 네트워크의 혁명이었다. 공자가 예(禮)와 인(仁)을 설파한 것도, 손자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정리한 것도, 합종연횡이라는 외교술이 등장한 것도 모두 이 시기다.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사상의 경쟁이 바로 당시의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였다.


그 끝에 진나라가 모든 걸 무력으로 통일했다. 하드파워의 완전승리. 하지만 15년 만에 멸망했다. 그 다음 한나라는 200년을 지속했다. 무엇으로? 유가 사상이라는 소프트파워로.


토인비와 하라리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패턴이다. 전환기에는 하드파워로 일시적 통일을 이뤄도, 결국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와 소프트파워가 다음 시대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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