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말의 전쟁 02화

말의 전쟁

제1부. 강대국 사이의 줄타기 – 외교의 본능

by 한시을

1화 정중한 거절의 기술: 강대국 초청을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


▌2025년 6월, 중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에게 전승절 기념식 초청장을 보냈다. 아직 한미정상회담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청와대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라고 답했지만, 모든 언론은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초청이 아니라는 것을.


선택지 없는 선택


외교부 청사 7층 브리핑룸. 매주 반복되는 장면이다.


"전승절 참석 여부는 언제 결정하시나요?"


대변인은 늘 같은 답을 한다. "관련국과 긴밀히 협의하여 신중히 결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계속 묻는다. 왜냐하면 이 질문 뒤에 진짜 질문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참석하면 미국이 화낼 것이고, 불참하면 중국이 화낼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한쪽의 미움을 사게 된다. 전형적인 강대국 사이 중간국의 딜레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만 특별한 건 아니다.


2,600년 전의 똑같은 초청장


기원전 656년 봄, 초나라 성왕이 제후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함께 사냥을 하자"는 명목이었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냥이 아니라 힘자랑이라는 것을.


당시 초나라는 남방의 최강국이었다. 중원의 패자 자리를 놓고 제나라, 진나라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 초나라가 주변 제후들을 불러 모아 "사냥"을 한다는 것은 명백한 정치적 메시지였다.


"누가 진짜 보스인지 보여주겠다."


그 초청장을 받은 나라 중 하나가 노나라였다. 지금으로 치면 산둥성 일대의 작은 나라. 군사력으로는 초나라의 상대가 안 되는 약소국이었다.


[당시의 목소리] "초왕이 제후들을 소집하여 사냥을 하려 한다. 이는 무력을 과시하여 중원의 패권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 《춘추좌전》


노나라 환공과 신하들은 머리가 아팠다. 2025년 한국 정부와 똑같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가면 굴욕이고, 안 가면 보복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한시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창작 시스템 디자이너. "Write Different", "Write Creative, Write Convergent"

19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말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