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강대국 사이의 줄타기 – 외교의 본능
▌한국 외교에서 자주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발표다. 쿼드 참여 문제든, 대만해협 사태든, 중국 행사 초청이든 항상 같은 답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의 명확한 입장을 기대하고, 중국은 "지역 평화"를 강조하며 우려를 표한다. 정부는 양쪽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답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의 단골 메뉴가 있다. "전략적 모호성".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하면서 모든 쪽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미국에게는 "동맹의 중요성을 안다"라고 하고, 중국에게는 "경제 협력을 중시한다"라고 한다. 러시아에게는 "평화적 해결을 바란다"라고 하고, 일본에게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한다"라고 한다.
모든 말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 말도 아니다.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이 과거에는 통했다. 냉전 시대에는 양 진영이 확실히 나뉘어 있어서 중간 지대가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압박과 대응의 시대가 되면서, 중간 지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만 특별한 건 아니다.
기원전 632년, 송나라는 야심 찬 실험을 시작했다.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 유지하기".
당시 중원에는 세 개의 강대국이 있었다. 북쪽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 동쪽의 제나라. 이들은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송나라는 이 세 강대국 한복판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나라였다.
송양공은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 편도 들지 않겠다. 모든 나라와 평화롭게 지내겠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다. 진나라가 동맹을 제안하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고, 초나라가 협력을 요청하면 "신중히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제나라에게는 "전통적 우호 관계를 중시한다"라고 말했다.
▌[당시의 목소리] "송나라는 의를 중시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난세에 중립은 고립을 의미할 뿐이다." - 《춘추좌전》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송나라의 중립 정책은 점진적으로 무너졌다.
첫 번째 위기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직접 충돌했을 때였다. 두 나라 모두 송나라에 "우리 편에 서라"라고 요구했다. 송나라는 "양쪽 다 소중한 관계"라며 또다시 애매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진나라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적"이라고 경고했고, 초나라는 "중립은 배신"이라고 성토했다. 송나라가 모든 쪽을 만족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쪽을 실망시켰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다른 중소국들이 송나라를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 때 함께하지 않는 나라와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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