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강대국 사이의 줄타기 – 외교의 본능
▌한일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거나 과거사 발언이 나오면, 양국 정부는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한국은 "역사를 왜곡한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일본은 "내정간섭"이라며 맞받아친다. 그 사이에 경제협력은 중단되고, 문화교류는 위축되며, 정작 필요한 안보협력은 뒷전으로 밀린다. 감정이 앞서면서 모든 것을 잃는 전형적인 사례다.
외교는 본래 차가운 계산의 영역이다.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개인적 호불호는 접어두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외교관도 사람이고, 정치 지도자도 사람이다. 개인적 원한이나 감정적 상처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메시지 전달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현대에는 이런 감정적 반응이 순식간에 확산된다. 한 나라 지도자의 감정적 발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상대국도 즉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그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손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역사는 감정이 외교를 망친 사례들로 가득하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영토 분쟁이었지만, 실제로는 두 왕의 개인적 감정이 원인이었다.
오왕 합려는 월나라를 침공했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죽기 전에 아들 부차에게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라."
부차는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신하가 소리쳤다. "왕이시여, 아버지의 원수를 잊으셨습니까?" 부차는 대답했다. "감히 잊지 못하겠습니다."
한편 월왕 구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494년 부차에게 대패하여 신하가 된 굴욕을 평생 잊지 않았다. 그는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다.
▌[당시의 목소리] "부차는 복수에만 매달려 나라의 근본을 돌보지 않았고, 구천은 원한에 사로잡혀 20년을 인내했다. 둘 다 개인의 감정이 국정을 좌우한 경우였다." - 《사기》
두 나라는 20년 동안 서로를 향한 복수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는?
부차는 복수에 성공했다. 월나라를 정복하고 구천을 굴복시켰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 방심했다.
더 큰 문제는 시련과 극복의 관점을 잃었다는 것이다. 부차는 월나라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속국으로 남겨뒀다. 왜? 구천이 계속 굴욕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만족을 위해 국가 안보를 희생한 것이다.
구천은 더 치밀했다. 20년 동안 복수만을 위해 살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군사를 양성하고, 부차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개인적 원한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기원전 473년, 구천이 부차를 멸망시켰다. 부차는 자결했고, 오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승리가 월나라에게 진짜 도움이 되었을까?
구천은 복수에 성공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첫째, 20년이라는 시간을 잃었다. 그 시간 동안 월나라는 복수에만 매달려 다른 발전 기회를 놓쳤다.
둘째, 국력의 소모가 심했다.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셋째, 다른 적의 등장을 놓쳤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소모전을 벌이는 동안, 북쪽에서는 진나라가 강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월나라도 얼마 후 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개인적 복수에 매달리느라 진짜 위협을 놓친 것이다.
▌[현재의 시선] "감정적 외교는 단기적 만족은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당사자에게 손해다. 진정한 승자는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쪽이다." - 조지 케넌
2025년 동아시아를 보면 오나라와 월나라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한일관계가 대표적이다.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양국은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한국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일본은 "해결된 문제"라며 선을 긋는다.
그 결과는? 양쪽 모두 손해다.
한국의 손실: 경제협력 기회 상실, 안보협력 지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위험. 일본의 손실: 한반도 영향력 감소, 대중국 견제 동반자 상실, 아시아 리더십 약화
더 심각한 건 제3자의 이익이다. 한일이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동안 중국은 어부지리를 얻는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만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싸우는 동안 진나라가 강해진 것과 똑같은 패턴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감정을 억누르고 실리를 택한 나라들은 성공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가 대표적이다. 제나라는 여러 번 굴욕을 당했지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계산을 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위협하면? 초나라와 손잡았다. 초나라가 압박하면? 진나라와 협력했다. 둘 다 적대적이면? 작은 나라들과 연합했다.
제나라에게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오직 국가 이익만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 내내 살아남았고, 마지막에는 진나라에게 멸망당했지만 그때까지 500년 이상 번영을 유지했다.
현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원수지간이었지만, 감정을 접고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결과는? 양국 모두 세계 강국이 되었다.
중국과 미국: 1970년대 키신저의 비밀외교로 수교했다. 이념적으로는 정반대였지만, 소련 견제라는 공동 이익을 위해 손잡았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평화조약을 맺었다. 수차례 전쟁을 벌인 원수였지만, 현실적 이익을 위해 화해했다.
공통점은? 모두 감정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사 문제는 분명히 중요하고, 정당한 요구는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감정적 대응 대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 단계적 접근: 작은 협력부터 시작해서 신뢰를 쌓아가기
- 분리 원칙: 과거사 문제와 현안 협력을 분리해서 처리
- 다자 활용: 양자 대화가 막힐 때는 다자 틀 활용하기
- 민간 중심: 정부 간 갈등이 심할 때는 민간 교류 활성화
핵심은 장기적 관점이다. 당장의 감정적 만족보다는 10년, 20년 후의 국가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교훈은 명확하다.
개인적 감정에 휘둘린 외교는 반드시 실패한다. 설사 복수에 성공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이 더 많다.
진짜 승자는 감정을 통제하고 냉정하게 계산할 줄 아는 쪽이다. 굴욕을 당해도 참을 줄 알고, 승리해도 겸손할 줄 아는 쪽이다.
한국이 진정한 외교 강국이 되려면,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가우게. 감정은 가슴에 묻어두고, 계산은 정확하게.
그것이 2,500년 전 오나라와 월나라가 우리에게 남긴 피 값 비싼 교훈이다.
다음 회에서는 제1부의 마지막 주제를 다뤄보겠습니다.
작은 나라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가 어떻게 군사력은 부족했지만 외교력으로 패권을 유지했는지, 그리고 현재 한국이 소프트파워를 활용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회 예고] 제1부 4화: "작은 나라의 큰 목소리" - 제나라가 군사력 대신 상업과 문화, 외교로 어떻게 중원의 패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한국이 K-문화와 소프트파워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용어 해설]
와신상담(臥薪嘗膽): 원래는 월왕 구천이 장작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현재는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재기를 도모한다는 의미로 사용.
시련과 극복: 국가나 문명이 외부의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발전 또는 쇠퇴가 결정된다는 개념.
메시지 전달: 현대 정보 기술 발달로 한 국가의 외교적 메시지나 발언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는 현상. 이로 인해 외교적 실수나 감정적 반응의 파급효과가 과거보다 훨씬 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