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선생님
박 노 빈
2등이다
평균 92점, 이게 내 점수가 맞는가
곱슬머리에 매사 철두철미하시고 건강 미남이신 최천묵 선생님
남자반인 우리는 점수대로 자리에 앉았다
최상위와 최하위가 짝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받아 빳빳한 새 돈을
담임선생님께 시험지 값으로 드리라 했다
그런 돈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시험지를 풀었다
매월 시험 점수가 있는 성적표를 어머니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시면서 계집애처럼 예쁜 연두색 팬티 스타킹과 다홍색 비단 와이셔츠도 사주셨다 성적표가 형편 없던 5학년 때에도 밀가루 포대로 만든 듯한 태권 도복을 사주시고 곗돈을 차곡차곡 모아 받은 당신께 주는 당신의 선물, 금반지도 팔아서 조성모처럼 멋진 점퍼를 추석빔으로 사주셨다
고향에서 4학년 때 8등 한 것이 최고였다
전학 온 5학년 때는 모처럼 형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므로
일 년 내내 온 산하를 쏘다니며 멱감기, 비닐 태우기에만 몰두했다
보결 들어오신 처녀 선생님의 햄릿 이야기만이 기억에 남았다
새로 받은 사회책을 일곱 시까지 모조리 외우란다
부모님보다 무서운 네 살 위 형의 엄명이다
고시에 동기 너댓명이나 합격했다는 전설의 명문 백암초를 나와
기타만 딩딩거리는 형은 윗집 형도 떨어진 용산공고에 당당히 합격한
시골 인재
아이디어 대회에 무거운 가방을 끌 수 있는 캐리어 가방과
거꾸로 잉크병을 도해와 함께 제출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랗게 ‘에디슨의 집’이라는 낙서가 간판만큼 크게 써졌다
소풍 때는 애기능 잔디밭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새마을 체육대회’에는 선생님의 지도로
두 명이 물구나무를 서서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위를
도섭하는 여우처럼 폴짝폴짝 뛰어넘었고
삼층의 인간 탑도 쌓았다
미술 시간에 나는 새로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그리고
‘10억 불 수출’ 표어도 그렸다
여름방학 대홍수 때 절에서 크게 다치셔서 죽음을 눈앞에 두시고도
내려오는 들것에서 있는 힘을 다해 일곱 번이나 부른 형의 이름
큰집 아랫목에서 피가 모자라서 팔짱을 끼신 채 오들오들 떨며
돌아가신 어머니
세상의 전부를 잃은 6학년 여름방학이 지난 후
선생님께 배운 ‘나뭇잎배’ 노래
몇십 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엄마 곁’ 대목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던
주량이 대단하셔서 새벽까지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고
아직도 우리 친구들을 모두 이기는
애주가 선생님이시다